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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가족 갈등도 분석한다…심리상담 플랫폼, 비대면 중재 실험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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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심리상담 플랫폼이 가족 갈등과 같은 고강도 정서 문제까지 다루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대화형 AI가 축적된 갈등 사례와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상황을 구조화해주고, 전문 상담사가 후속 개입을 담당하는 이원화 모델이다. 정신건강 관리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인간 상담사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대기 수요를 AI가 전처리와 사후 관리로 분산하는 구조가 정착될지 업계 관심이 쏠려 있다. 업계는 이 같은 시도가 디지털 정신건강 서비스 경쟁의 새로운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몇 스타트업이 가족·부부·직장 내 갈등을 다루는 특화형 심리상담 플랫폼을 선보이고 있다. 핵심은 2단계 구조다. 1단계에서 대화형 AI가 사용자의 사연을 받아 정서 상태와 갈등 구조를 파악하고, 2단계에서 임상·상담심리 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개입하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모바일 앱을 통해 장문의 사연과 감정 상태를 입력하고, AI는 갈등 당사자, 갈등의 유형, 위험 신호 등을 자동 분류해 상담사가 참고할 수 있는 요약 리포트로 변환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어 처리 기술과 정서 분석 알고리즘이 활용된다. 사용자의 문장을 단어·문장 단위로 분해해 분노, 불안, 죄책감, 우울 등 정서 스펙트럼을 추정하고, 학습된 가족치료 이론과 애착 이론 프레임에 맞춰 관계 구조를 도식화한다. 예를 들어 경제적 의존과 과잉 지원이 반복되는 가족 관계에서는 공생 관계와 경계 붕괴 패턴을 자동 탐지하는 식이다. 플랫폼들은 기존 심리검사보다 훨씬 빠르게 갈등의 핵심 축을 정리해 상담 초반 시간을 줄이고, 상담사가 진단보다 개입 전략 설계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게 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번 기술은 텍스트 기반 챗봇 수준에 머물렀던 기존 디지털 상담 서비스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에는 사용자가 사연을 털어놓으면 AI가 정형화된 공감 문구를 되풀이하는 수준이어서, 복잡한 가족 시스템 문제를 다루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근 플랫폼들은 임상 사례 데이터와 공인 심리척도 데이터를 함께 학습시키고, 상담사가 직접 태깅한 익명화 세션 기록을 학습 데이터로 활용해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 특정 위험 신호가 감지될 경우에는 AI가 스스로 상담 배정을 상향 조정해 더 숙련된 전문가에게 라우팅하는 기능도 탑재됐다.

 

시장 측면에서 디지털 심리상담 플랫폼의 성장 잠재력은 상당하다는 분석이 많다. 가족 갈등, 이혼, 경제적 의존 등 구조적인 갈등은 오프라인 상담의 진입 장벽이 높아, 실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비율이 낮은 편이다. 반면 모바일 앱 기반 서비스는 익명성과 시간 유연성이 커서 초기 진입 허들을 낮출 수 있다는 평가다. 사용자는 집에서 스마트폰만으로 사연을 전송하고, AI로부터 1차 정서 피드백과 자기 보호 전략을 안내받은 뒤 필요시 전문가와 실시간 화상 상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정신건강 디지털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지행동치료 기반 디지털 치료제와 감정 추적 앱이 보험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일부 플랫폼은 AI가 사연의 심각도를 점수화해 자살 위험 등 고위험 사례를 조기 탐지하는 기능을 제공하고, 영국 등에서는 공공 의료 시스템과 연계된 온라인 상담 대기열 관리에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텍스트 기반 정서 분석과 매칭 알고리즘 단계에 머물러 있어, 임상 근거와 규제 승인 측면에서는 격차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규제와 윤리 문제도 핵심 변수다. 한국에서 심리상담 플랫폼이 의료 영역으로 분류되는 경우, 의료법과 정신건강복지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다양한 규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특히 AI가 자살 위험,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중대한 위험 신호를 탐지했을 때 어떤 기준과 절차로 신고·연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연합이 추진 중인 인공지능법에서는 정신건강 관련 AI를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데이터 품질, 투명성, 인간 감독 의무를 강조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유사한 규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가족 갈등처럼 복합적인 정서 문제를 AI가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단계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만 갈등의 구조를 객관화하고, 사용자가 자신의 감정 패턴을 인식하도록 돕는 보조 도구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상담 현장에서는 이미 세션 전 AI 설문으로 기본 정보를 수집하고, 세션 후에 디지털 앱을 통해 과제를 제시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확대되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들은 디지털 정신건강 서비스가 확산될수록 인간 상담사의 전문성과 AI의 효율성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산업계는 AI 기반 심리상담 플랫폼이 실제 치료와 갈등 중재 현장에서 신뢰를 얻고 제도권 안으로 편입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기술과 윤리, 산업과 제도 간 균형이 새로운 디지털 정신건강 산업 성장의 조건이 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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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플랫폼#ai중재#디지털헬스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