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여아 사생활 침해 우려”…멜버른 초교 성중립 화장실 추진에 학부모 반발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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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의 한 초등학교가 2~4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성중립(all-gender) 화장실을 새로 조성하는 공사를 진행하자, 일부 학부모가 여아의 사생활과 안전 침해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부모 40여 명은 학교와 교육 당국에 설계 변경과 정부 차원의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 등에 따르면, 멜버른 캔버웰 지역의 캔버웰 초등학교는 2024~2025년 예산에서 970만 호주달러를 지원받아 본관과 화장실 개보수에 착수했다. 공사는 2024년 7월부터 진행 중이며, 이 과정에서 초등 2~4학년(약 6세 이상) 학생들이 이용할 공간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출처=픽사베이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출처=픽사베이 ※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한 참고 이미지입니다.

반대 측 학부모들은 새 화장실이 남녀 구분 없이 함께 사용하는 구조로 설계되면서, 특히 여아들의 안전과 사생활, 존엄성이 침해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성중립 화장실 설치 자체’보다는 “아이들이 원할 경우 기존의 남녀 구분 화장실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핵심 쟁점으로 제기했다.  

 

학부모 그룹을 대표하는 크리스티나 우즈는 약 3년 전부터 이 계획에 반대해 왔으며, 항의의 뜻으로 학부모회장과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즈는 학교가 “학부모들에게 정확한 내용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고, 초등 저학년이 이용할 구역에서 단일 성(남·여 구분) 화장실을 제외한 채 공사를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에 따르면, 2~4학년을 중심으로 손글씨 청원이 돌았고, 청원 결과 다수의 아동이 남녀가 구분된 단일 성 화장실 이용을 선호한다는 의견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학부모는 “아이들 자신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교 측과 교육 당국은 정책 취지가 차별 해소와 포용성 강화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캔버웰 초등학교는 새 화장실이 “더 안전하고 포용적인 시설을 위한 조치이며, 차별금지법을 준수하려는 설계”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성별 이분법에 따른 시설 이용에서 소외되기 쉬운 학생들을 고려한 조치라는 취지다.  

 

빅토리아주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의 선택권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부는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 내에 마련된 단일 성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해당 단일 성 화장실이 약 50m 떨어진 고학년 구역에 있어, 저학년 학생들이 수업 중간에 이동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거리와 동선 부담이 크다는 것이 학부모들의 반박이다.  

 

학부모들은 “성중립 화장실을 원하는 학생도, 기존 남녀 화장실을 원하는 학생도 모두 존중해야 한다”며 혼용형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 학생 보호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저학년 여학생의 사생활 보호와 안전 확보를 위한 별도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벤 캐럴 빅토리아주 교육장관은 학교 자율권을 우선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캐럴 장관은 “결정권은 교장에게 있다”며 캔버웰 초등학교와 학교운영위원회의 판단을 존중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교육부는 새 건물과 화장실 설계가 이미 학교운영위원회의 승인 아래 진행됐고, 2024년 7월 착공에 들어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학교가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내부에서만 결정했다”며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빅토리아주 교육 당국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설계 재검토와 학부모-학교-교육부 간 공개 설명회를 요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갈등은 학생 인권과 성소수자 포용, 사생활 보호와 안전, 학교 결정권과 학부모 참여권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라는 오래된 쟁점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지역사회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빅토리아주 교육 당국이 추가 가이드라인을 내놓을지 주목되고 있다. 학교와 학부모 간 협의가 어떤 방향으로 정리될지, 논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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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웰초등학교#성중립화장실#빅토리아주교육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