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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드셋 써도 맨얼굴처럼" 구글, XR 영상통화 새 기술 공개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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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현실 기기가 얼굴을 가리던 시대에서, 착용 여부를 의식하지 않는 영상 소통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하고 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기반 XR 플랫폼에서 얼굴 복원형 영상 통화 기술과 AI 연동 기능을 공개하며 XR을 일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끌어올리려는 전략을 내놨다. 단순 엔터테인먼트용 헤드셋을 넘어, 원격 협업과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현장까지 겨냥한 XR 플랫폼 경쟁이 본격화되는 분기점으로 평가된다.  

 

구글은 8일 현지 시간 온라인 쇼케이스 안드로이드 쇼 XR 에디션을 열고 구글 XR 플랫폼 안드로이드 XR의 신규 기능을 대거 공개했다. 핵심은 XR 헤드셋을 착용한 상태에서도 실제 맨얼굴과 유사한 영상을 영상 통화 화면에 띄워주는 라이크니스 기능이다. 사용자의 표정과 입 모양, 머리 움직임, 손짓을 실시간으로 포착해 디지털 이미지로 재구성함으로써, 상대방 화면에는 헤드셋이 가린 얼굴 대신 자연스러운 얼굴 영상이 전달된다. 일반 스마트폰 영상 통화와 비슷한 경험을 제공해, 헤드셋 착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기술적으로 라이크니스는 얼굴 인식과 포즈 추정, 제스처 인식에 특화된 컴퓨터 비전과 생성형 AI를 결합한 형태로 해석할 수 있다. 카메라와 센서로 수집한 미세 표정 변화와 근육 움직임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3차원 형태의 얼굴 모델을 업데이트하고, 이를 고해상도 디지털 아바타로 렌더링하는 구조다. 특히 눈가와 입 주변 움직임을 세밀하게 추적해 기존 VR 아바타가 표현하지 못하던 감정과 미묘한 반응을 담아낸 점이 차별점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기존 XR 아바타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이 구현될 경우 비언어적 신호 전달력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구글은 영상 통화 외에도 안드로이드 XR에 PC 커넥트와 여행 모드 기능을 추가해 활용성을 넓혔다. PC 커넥트는 PC에서 실행 중인 게임 화면을 XR 헤드셋으로 스트리밍해 대화면 몰입감을 제공하는 동시에, 구글 인공지능 제미나이와 연동해 실시간 플레이 팁을 제공하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 이용자는 헤드셋을 쓴 상태로 제미나이에게 특정 보스 공략법이나 장비 세팅 조언을 자연어로 요청할 수 있다. 화면 상단이나 측면에 가이드를 띄운 채 게임을 이어갈 수 있어, 튜토리얼 검색과 플레이를 오가던 기존 경험을 XR 환경 안에서 통합하는 셈이다.  

 

여행 모드는 항공기 좌석처럼 좁은 환경에서도 XR 헤드셋을 개인 영화관 및 업무 공간으로 전환하는 기능이다. 헤드 트래킹과 영상 보정 알고리즘을 통해 움직임이 많은 환경에서 발생하는 화면 흔들림을 줄여 안정적인 시청 경험을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장거리 이동 중 영화 시청, 문서 작업, 원격 회의 참여를 XR 기기 하나로 처리하려는 수요를 겨냥한 기능으로, 모바일 기기에서 노트북과 태블릿이 분담하던 역할 일부를 XR이 흡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구글은 XR 플랫폼 고도화와 함께 내년 출시를 목표로 한 신규 XR 기기 로드맵도 제시했다. 삼성전자, 젠틀몬스터, 워비파커와 공동 개발 중인 AI 기반 안경과, 엑스리얼과 협력한 유선 XR 안경 등 두 종류의 웨어러블 XR 기기를 공개했다. 전자는 패션 아이웨어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일상 착용성을 높인 스마트 안경 형태, 후자는 작업 및 콘텐츠 소비에 초점을 맞춘 고시야각 디스플레이 기기라는 구분이다.  

 

AI 안경은 내장 스피커와 마이크, 카메라를 기본 탑재해 사용자가 제미나이와 직접 대화하거나 주위 장면을 촬영하며 정보를 얻도록 설계됐다. 기기 내부 렌즈에 디스플레이를 배치해 길 안내, 실시간 번역 자막, 일정 알림 등 필요한 정보를 눈앞에 겹쳐 보여주는 증강현실형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구글 입장에서는 검색과 번역, 지도 등 기존 서비스 자산을 안경형 폼팩터에 집약해, 스마트폰 이후 차세대 인터페이스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유선 XR 안경 프로젝트 아우라는 70도 수준의 시야각과 광학 투명 기술을 표방한다. 사용자는 실제 환경 위에 디지털 창을 여러 개 띄워, 문서 편집과 동영상 시청, 메신저 등 다양한 작업을 동시에 배치할 수 있다. 구글은 프로젝트 아우라를 넓고 개인적인 캔버스를 제공하는 기기로 정의하면서, 주변 환경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도 생산성과 엔터테인먼트를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방에서 요리 레시피를 공중에 띄워두고 따라 하거나, 수리 중인 가전제품 위에 단계별 시각 안내를 덧씌우는 등, 실제 생활 동선 속에 정보를 겹쳐 쓰는 활용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시장 측면에서 구글의 행보는 애플 비전 프로, 메타 퀘스트 등과 맞선 XR 운영체제 경쟁 구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 애플이 자체 생태계에 묶인 비전OS 전략, 메타가 소셜과 게임 중심 오픈 생태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구글은 안드로이드 기반 XR 플랫폼과 파트너 하드웨어 다변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의 협력으로 갤럭시 XR 기기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처럼 다양한 제조사 기기를 하나의 XR 플랫폼으로 묶어내는 구도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XR 기기의 상용화와 확산 과정에서는 개인정보 보호와 카메라 사용 윤리, 콘텐츠 규제 등 복합적인 제도 이슈가 뒤따를 전망이다. AI 안경과 프로젝트 아우라가 주변 환경을 상시 촬영하거나 분석하는 구조에 가까운 만큼, 행인 촬영과 위치 정보 수집, 시선 추적 데이터 처리 등에 대한 규제 논의가 불가피하다. 미국과 유럽에서 진행 중인 AI 관련 법제와 데이터 보호 규제도 향후 XR 기기의 기능 설계와 서비스 방식에 직접적인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구글의 라이크니스와 AI 연동 XR 기능이 재택근무, 원격 회의, 원격 교육, 의료 상담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영역에서 실사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얼굴을 가리는 장비 특유의 이질감을 줄이고, 시야를 가리지 않는 투명형 디스플레이를 도입하면, 장시간 착용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반면 가격, 배터리 수명, 무게와 착용감 등 하드웨어 과제가 여전히 상용화 속도를 결정짓는 변수로 꼽힌다.  

 

XR 업계에서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XR을 통해 스마트폰과 유사한 개방형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에 주목하고 있다. 콘텐츠 확보와 개발자 지원, 규제 대응, 하드웨어 파트너십이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하면 또 하나의 실험에 그칠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기술과 사용자 경험, 산업 구조와 제도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맞추느냐가 XR 대중화의 성패를 가를 조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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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안드로이드xr#프로젝트아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