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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투자 MOU 3500억달러 구체화”…김정관, 투자처 주도권 놓고 한미 이견 표출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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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처 선정권과 ‘상업적 합리성’의 해석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긴장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정관 한국 산업통상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주도한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가 14일 체결되고 전문이 공개된 가운데, 투자처 선정 방식과 조건을 두고 양국 정부가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특히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투자 문제에서는 이견이 적나라하게 노출됐다.

 

이번에 체결된 한미 투자 MOU의 전문에 따르면, 투자처 선정권을 가진 미국 측 투자위원회가 ‘상업적으로 합리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만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천하도록 명시했다. 부칙에서는 ‘상업적 합리성’의 개념을 “투자 기간 내 원리금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는 현금 흐름이 예상되는 투자”로 규정했다. 이 조항은 일본과 미국이 체결했던 기존 MOU에는 없던 내용으로, 한국 정부가 안정적 투자 대상을 요구하며 추가된 부분이다.

그러나 한미 간 투자처 선정 과정의 주도권은 미국이 여전히 쥐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천억달러(지분·현금) 투자처 선정은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위원장인 미 투자위원회가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한국 측 위원장인 김정관 장관이 협의를 이끌 협의위원회와 ‘협의’를 거치도록 했지만, 미국이 다양한 장치로 결정권을 유지하는 구조다.

 

MOU에는 한국 정부가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특정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재량권이 포함됐다. 다만 투자 거부 시에는 다른 투자에서 발생한 수익을 미국과 추가 배분하는 조항과, 전반적 투자 미이행 시 미국이 다시 대(對)한국 관세를 높일 권리가 명시돼 있다. 이런 협상 구조는 일본 MOU와도 유사하다. 실제로 한미와 미일 모두 투자 대상으로 지정된 프로젝트에 대해 45일 이내 달러화 납입 규정이 적용된다.

 

문제는 ‘상업적 합리성’ 해석을 두고 양국이 민감하게 맞설 수 있단 점이다. 구체적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1호 투자사업으로 떠올랐으나, 김정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기자회견에서 “상업적 합리성 기준에서 현재 알래스카 프로젝트는 타당성 조사가 안 나온 상황”이라며 “현재로서는 상업적 합리성이 없어 참가 안 한다”고 못 박았다. 이에 앞서 러트닉 장관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천연가스, 에너지 기반 시설, 인공지능 등에 2천억달러 추가 투자를 지시할 것”이라며 사업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전문가 역시 투자위원회 위원장을 미국 상무장관이 맡고, 미 측 인사가 위원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다. 오현석 계명대 교수는 “한국이 실질적 거부권이 없어 분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정관 장관은 “현금 투자 약정액을 미국 요구 3천500억달러에서 2천억달러로 43% 줄이고, 연간 200억달러 납입 한도도 명문화해 부담을 크게 낮췄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비교해도 투자 규모와 실행 조건에서 몇몇 개선점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율 관세라는 미국의 압박 덕에 당초 공정한 협상은 애초에 쉽지 않았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구체적 투자처 선정에서 또다시 한미간 신경전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날 양국 정부는 알래스카 LNG를 둘러싸고 극명한 견해차를 보였으며, 실질 자금 집행 및 협의 절차에서 양측 긴장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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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한미투자mou#알래스카l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