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워너브러더스 인수…콘텐츠 패권 재편 주목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가 미국 전통 미디어 그룹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를 전격 인수하기로 하면서 콘텐츠 산업 지형이 재편될 전망이다. 가입자 성장 둔화와 제작비 급등에 직면한 OTT 시장에서 대형 IP와 스튜디오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어, 이번 거래가 향후 플랫폼과 콘텐츠 공급망 구조 변화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 인수가 글로벌 스트리밍 경쟁의 2막을 여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5일 현지시각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약 720억 달러, 한화로 약 106조원 규모에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인수에 합의하고 우선 협상 지위를 확보했다. 거래는 각국 규제당국 심사를 거쳐 내년 3분기 마무리되는 일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2년 역사를 지닌 할리우드 대표 스튜디오와 세계 최대 OTT 플랫폼이 결합하는 초대형 빅딜이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2022년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가 합병해 탄생한 미디어 그룹으로, 영화와 TV 스튜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HBO 맥스, 뉴스 채널 CNN 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DC 코믹스 기반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 왕좌의 게임, 해리포터 등 글로벌 대중문화 핵심 지식재산권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전통 스튜디오 가운데서도 IP 경쟁력이 높은 회사로 평가돼 왔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이번 인수를 통해 오리지널 제작 중심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IP까지 확보하는 방향으로 콘텐츠 전략을 확장하게 된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방대한 오리지널 시리즈와 영화 제작, 국가별 로컬 콘텐츠 투자로 가입자를 늘려 왔으나, 마블과 스타워즈를 보유한 디즈니플러스, 파라마운트플러스, 피콕 등 경쟁 서비스들이 자사 IP를 자사 플랫폼으로 회수하면서 라이선스 수급이 점차 어려워지는 구조에 직면했다. 특히 이번 인수는 단순 라이선스 계약이 아니라 제작 스튜디오와 배급망 전체를 손에 넣는 통합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넷플릭스의 데이터 기반 추천 알고리즘과 글로벌 콘텐츠 운영 인프라에 워너브러더스의 대형 IP와 제작 역량이 결합하는 구조다. 넷플릭스는 시청 패턴 분석과 A B 테스트 기반 편성 최적화 기술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대규모 프랜차이즈 시리즈의 기획과 스핀오프, 리부트 전략에 접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DC 코믹스와 같은 유니버스형 IP는 세계 각 지역 시청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캐릭터별 인기도와 선호 장르를 정밀 분석해, 지역별 맞춤형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게임 연계 콘텐츠로 확장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시장 관점에서 이번 거래는 글로벌 OTT 시장이 확장 국면에서 수익성과 규모의 경제를 중시하는 통합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가입자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광고 기반 요금제 도입, 계정 공유 제한, 가격 인상 등 수익 개선 전략이 병행되고 있다. 여기에 대형 IP를 안정적으로 확보한 플랫폼 소수만이 장기 생존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면서, 콘텐츠 제작사와 플랫폼의 수직 결합이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도 파급력이 크다. 디즈니는 이미 픽사, 마블, 루카스필름, 21세기폭스를 잇따라 인수하며 자체 IP 생태계를 구축했고, 컴캐스트와 파라마운트 글로벌 역시 각각 유니버설,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와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를 묶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를 품게 되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대부분이 특정 스트리밍 플랫폼과 일대일로 결합하는 그림이 완성된다. 반면 중견 제작사나 독립 스튜디오의 협상력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
규제 측면에서는 반독점 심사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 규제 당국은 최근 대형 IT 및 미디어 기업의 인수합병에 대해 시장 지배력 강화, 콘텐츠 편중, 제작사와 소비자 선택권 축소 등을 문제 삼으며 까다로운 심사를 진행해 왔다. 넷플릭스의 경우 그동안 대형 스튜디오 인수 전력이 없었던 만큼 직접적인 선례는 부족하지만, 워너브러더스가 보유한 방대한 영화와 시리즈 라이브러리를 감안할 때 시장점유율과 콘텐츠 독점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수 있다.
국내를 포함한 글로벌 콘텐츠 공급망에도 여파가 예상된다. 워너브러더스 산하 제작사와 협업해 온 한국과 아시아 제작사들은 향후 판권 유통 구조와 창구 전략 조정이 불가피하다. 넷플릭스가 워너브러더스의 극장 배급, 케이블 채널, 타 플랫폼 라이선스를 어떻게 재편하느냐에 따라, 극장 윈도우 기간과 국내 유료방송 채널 편성, 다른 OTT와의 공조 구조에도 변동이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이 단기적으로는 대형 IP 제작과 글로벌 유통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집중과 선택지 축소를 초래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 미디어 산업 연구자는 대형 IP 중심의 경쟁이 심해질수록 중소 제작사의 신작 발굴 여지가 줄고, 알고리즘이 검증된 흥행 공식 위주의 기획을 강화할 수 있어 콘텐츠 다양성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며, 규제 당국과 업계가 균형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와 IT 플랫폼이 결합한 초대형 거래가 실제로 성사될 경우, OTT 중심의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산업계는 이번 인수가 규제 관문을 통과해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