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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한 줄로 20년의 월급을 산다”…연금복권 720이 부르는 소소한 희망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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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월급날이 한 번 더 생기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허황된 꿈이라 여겨졌지만, 지금은 매주 목요일 저녁 연금복권 추첨 방송 앞에 앉는 일상의 한 장면이 됐다. 번호 여섯 자리를 바라보는 짧은 순간에 사람들은 조용히 20년 뒤까지의 삶을 그려 본다.

 

12월 11일 동행복권이 발표한 연금복권 720 293회차 1등 당첨번호는 3조 6 5 0 3 2 1번이다. 이 번호를 가진 주인공에게는 매달 700만원씩 20년 동안 연금 형식으로 당첨금이 지급된다. 세금 22%를 제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매달 546만원이다. 한 번에 거액을 받는 대신, 또 하나의 월급처럼 꾸준히 들어오는 구조라서 ‘생활형 당첨’에 더 가깝다.

연금복권 720 293회 당첨 번호
연금복권 720 293회 당첨 번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546만원이 매달 들어오면 지금 회사는 바로 관둔다”, “일단 대출부터 다 갚고, 차분히 계획 세우고 싶다” 같은 상상 섞인 댓글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20년의 금액을 계산해 보며 “노후 걱정의 절반쯤은 사라질 것 같다”고 적었다. 그러다 보니 소액으로도 오랫동안 삶을 받쳐 주는 연금식 당첨 구조에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번 회차 2등 번호는 각조 6 5 0 3 2 1번이다. 1등과 숫자 여섯 자리는 같지만 조만 다른 경우다. 2등에 당첨되면 월 100만원을 10년 동안 연금 형식으로 받는다.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은 월 78만원이다. 보너스 번호인 각조 5 1 0 2 3 8번도 같은 조건으로 월 78만원이 10년 동안 지급된다. 적지 않은 금액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이 정도면 집세 걱정은 덜겠다”, “부모님 용돈으로 드리기 좋겠다”고 말하며 실감나는 계산을 이어 간다.

 

일시불 당첨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연금복권은 등수별로 다양한 ‘생활비형’ 당첨 구간을 가지고 있다. 3등은 1등 번호를 기준으로 뒷 5자리가 같은 5 0 3 2 1번이 대상이며 100만원을 한 번에 받는다. 4등은 뒷 4자리 0 3 2 1번으로 10만원, 5등은 3 2 1번으로 5만원이다. 6등은 2 1번, 7등은 1번만 맞아도 당첨된다. 각각 5000원과 1000원을 받을 수 있다. 당첨 구조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대박’보다 ‘소소한 위로’를 지향하는 설계가 느껴진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연금복권 720플러스의 1등 당첨 확률은 1/5,000,000로, 로또 6/45의 1등 당첨 확률인 1/8,145,060보다 약 1.6배 높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가 “한 번에 인생을 바꾸는 돈”보다 “생활을 오래 지탱해 주는 돈”을 원하는 사람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바라본다. 즉, 과감한 ‘인생 역전’보다 안정적인 ‘삶의 보완’을 꿈꾸는 시대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연금복권을 ‘두 번째 월급 청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매주 정해진 시간에 추첨 방송을 보거나,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 번호를 확인하는 루틴이 작은 의식처럼 자리 잡았다. 한 30대 직장인은 “복권에 당첨될 거라 믿지는 않지만, 당첨금을 어떻게 쓸지 상상하는 몇 분이 내겐 일종의 휴식”이라고 털어놓았다.

 

연금복권의 수령 방식도 이런 ‘생활친화적’ 이미지를 더한다. 5만원 이하는 동네 복권판매점에서, 5만원을 넘는 당첨금은 농협은행 전국 지점에서 받을 수 있다. 연금식 당첨금의 경우 동행복권에서 당첨 여부를 확인한 뒤 순차적으로 지급된다. 당첨금 수령 기한은 개시일로부터 1년까지며, 등수별 중복 당첨금은 모두 받을 수 있다. 여러 줄을 구매해 3등과 4등을 동시에 맞힌 경우, 각각의 당첨금을 합산해 수령하는 식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7등만 돼도 다음 회차 살 돈은 나온다”, “5만원만 당첨돼도 오늘 저녁은 외식”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다. 당첨을 ‘한 번의 반전’이 아니라 ‘작은 보너스’로 바라보는 태도다. 그만큼 사람들의 바람도 절제돼 있다. 누군가는 아이 학원비, 누군가는 부모님 병원비, 또 다른 누군가는 월세와 대출 상환을 먼저 떠올린다. 거창한 꿈보다 당장 눈앞의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묻어난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생활 밀착형 행복 추구’라고 부른다. 큰 성공이나 거대한 부를 좇기보다, 지금 삶의 구멍을 조금씩 메우고 싶은 욕망이 복권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한 심리전문가는 “연금복권의 본질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작은 안전장치 욕구”라며 “사람들은 당첨금을 통해 화려한 소비를 하기보다 불안을 줄이는 상상을 한다”고 해석했다.

 

연금복권 720플러스는 가까운 인쇄복권 판매점이나 동행복권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는 해당 회차를 바로 사거나 예약 구매도 가능해 일상 속에서 가볍게 접근하는 사람이 많다. 당첨 번호는 매주 목요일 오후 7시 5분, 지상파 방송을 통해 생방송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집에서 저녁을 먹다 TV 화면에 뜬 숫자를 함께 읽는 가족도, 휴대전화로 조용히 결과만 확인하는 1인 가구도 같은 기대를 나눈다.

 

언제나 그렇듯, 더 많은 사람들에게는 당첨보다 꽝이 익숙한 결과로 남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한 번 더 번호를 고르고, 한 주 더 기다린다. 손에 쥔 종이 한 장이 당장 내 인생을 바꾸진 못해도, 피곤한 하루 끝에서 미래를 다시 상상해 보게 해 주기 때문이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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