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금품은 수사대상 아니다”…민중기 특검, 법원 판례와도 엇갈린 해석 논란
정교유착 의혹을 둘러싼 특검 수사 범위와 법원 판례 해석이 충돌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을 맡은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더불어민주당 인사 금품수수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 대상에서 배제한 데 대해, 과거 특검 사건에서 인정된 ‘합리적 관련성’ 기준과 어긋난다는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민중기 특검팀은 8일 브리핑에서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진술한 여야 정치인 금품수수 의혹과 관련해 “인적·물적·시간상으로 볼 때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건희 여사와 윤석열 전 대통령, 명태균씨, 전성배씨 등 특검법에 명시된 인물과 무관하고, 시점도 문재인 정부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사 대상을 벗어난다고 판단했다는 취지다. 특검팀은 당시 기존 법리와 판례를 종합해 내린 결론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대법원과 하급심 법원이 특검의 ‘인지 사건’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 온 점을 감안하면 특검팀이 수사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 수사 범위에 관한 핵심 판례는 2002년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 사건에서 처음 나왔다.
당시 대법원은 특검법에 적시된 본죄와 새로 드러난 사건 사이 ‘합리적 관련성’을 기준으로 제시했다. 다만 해당 개념을 엄격히 정의하기보다 입법 취지, 이미 확보된 증거, 전반적인 수사 내용 등을 종합해 개별 사건마다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후 법원은 이 기준을 토대로 특검의 별건 수사 허용 여부를 결정해 왔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 당시 이영선 전 청와대 행정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전 행정관은 비선 진료 묵인 혐의와 함께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 부분은 특검법상 수사 범위를 벗어난 별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같은 해 국정농단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특검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청문회 불출석 혐의도 수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청문회 불출석이 국정농단 은폐 시도와 맞물려 있어 본류 수사와 ‘합리적 관련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23년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특검에서도 법원은 넓은 해석을 유지했다. 당시 군무원 양모씨는 성추행 가해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참석한 사람들의 인적 사항과 심문 내용을 누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자신에 대한 수사는 특검법상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법은 혐의 내용과 행적, 증거, 특검법 개별 조항과 입법 취지를 고려할 때 이 사건 역시 특검 수사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김건희 특검법 역시 비슷한 구조다. 김건희 특검법 제2조 16호는 수사 대상을 “1∼15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범죄행위 및 특검 수사를 방해하는 일체의 행위”로 규정했다. 통상 특검법은 이런 ‘인지 사건’ 조항을 두고 있고, 법원은 관련 사건을 폭넓게 인정해 왔다.
지난 9월 발효된 개정 김건희 특검법은 인지 사건 범위를 범인은닉죄, 증거인멸죄, 위증죄, 허위감정통역죄, 장물죄 등으로 좁히면서 ‘영장으로 확보한 증거물을 공통으로 하는 범죄’를 명시해 수사 한계를 구체화했다. 그러나 특검팀이 윤영호 전 본부장의 진술을 확보한 시점은 8월 말로, 개정 특검법 시행 이전이다. 이 때문에 과거 판례에 근거해 다소 더 적극적으로 수사 범위를 해석했다면 여야를 향한 편파 시비와 직무유기 논란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특검팀은 내부적으로도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외에, 윤 전 본부장 진술의 신빙성이 충분치 않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사 과정에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럴 수도 있다”는 식의 추정형 어조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팀은 이 같은 진술 만으로 즉각 강제수사에 착수하기 어렵다고 봤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진술의 신뢰도와 별개로, 정치권 파장이 큰 사안을 4개월 가까이 사실상 방치한 행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특검팀은 8월 말 윤 전 본부장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석 달이 지난 지난달 초에야 내사 사건번호를 부여해 기록을 만들었다. 특검 내부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뒤늦게 형식적 조치를 취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특검팀은 윤 전 본부장이 자신의 재판에서 여야 금품수수 의혹을 언급하며 편파 수사 논란이 확산하자, 9일에서야 해당 사건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이첩했다. 진술 확보 시점으로부터 4개월 만이다. 특검이 스스로 수사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신속히 이첩도 하지 않아 사실상 사안을 덮으려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윤 전 본부장은 특검에서 여권 인사 2명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상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과 민주당 출신 전직 의원 1명으로 알려졌다. 윤 전 본부장은 전 장관이 국회의원이던 2018년 9월 통일교 천정궁을 방문해 한학자 총재에게 인사했고, 당시 현금 4000만원과 까르띠에·불가리 명품 시계 2개를 받아 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또 민주당 전직 A 의원에게도 금품이 전달됐다는 식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재수 장관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그는 9일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저를 향해 제기된 금품수수 의혹은 전부 허위이며 단 하나도 사실이 아니다”라며 “저는 의정활동은 물론 개인적 영역 어디에서도 통일교를 포함한 어떤 금품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근거 없는 진술을 사실처럼 꾸며 유포하는 행위는 명백한 허위 조작이며, 제 명예와 공직의 신뢰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중대한 범죄적 행위”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경찰 수사 결과와 별개로 특검의 수사 범위 설정과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국회 차원의 점검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특검 수사 종료 이후 특검법 집행 과정을 점검하고, 인지 사건 조항 운영 실태와 판례 기준을 반영한 입법 보완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