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로 번지는 웃음소리”…양평빙송어축제에서 찾는 겨울 농촌의 여유
요즘 겨울이면 스키장 대신 얼음판 위 농촌 축제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그저 춥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가족과 친구가 함께 몸을 움직이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보는 체험의 일상이 됐다. 사소한 일정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겨울을 기억하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곱다니길 봉상2리 일원, 물 맑기로 이름난 양평 수미마을의 겨울이 다시 사람들을 부른다. 2025년 12월 6일부터 2026년 3월 1일까지 이어지는 양평빙송어축제는 얼음 위로 내려앉은 차가운 공기와 농촌의 온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계절 행사다. 얼음 아래로 은빛 빙어와 송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그 위로 아이들의 웃음과 부모의 부르는 소리가 멀리 퍼지며 한겨울 농촌의 하루가 한 장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축제의 중심에는 물고기를 가까이에서 만나는 얼음판 체험이 자리 잡았다. 빙어 뜰채 체험장에 서면 아이들은 작은 얼음 구멍 주변에 모여 뜰채를 힘껏 휘두르며 물속을 들여다본다. 투명한 얼음 밑에서 반짝이던 빙어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순간,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얼굴엔 금세 열기가 오른다. 송어 맨손잡기 체험장은 조금 더 과감한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참가자들은 물 속으로 팔을 담그고 커다란 송어를 붙잡으려 애쓰며 물보라와 환호성을 함께 터뜨린다. 얼음판 한쪽에 자리한 빙송어 낚시 구역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사람들은 작은 의자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운 채 말없이 수면을 바라보고, 찬 공기와 고요 속에서 기다림의 긴장감과 여유를 동시에 느낀다.
이런 변화는 마을의 오랜 준비에서 비롯됐다. 양평 수미마을은 농촌관광 등급 평가에서 체험과 숙박, 음식 전 부문 1위를 기록하며 으뜸촌으로 선정된 농촌체험 휴양마을이다. 2013년 대한민국 농촌마을대상 대통령상 수상 이후 사계절 내내 다양한 녹색농촌체험을 선보여왔고, 이번 축제에서도 그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여행객들은 물고기를 잡고 얼음 위를 걷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을의 일상과 자연, 먹거리를 함께 누리며 진짜 겨울 농촌을 맛보게 된다.
축제장 곳곳에 마련된 부대 체험은 농촌 마을의 정서를 한층 풍성하게 만든다. 손수 만드는 피자 체험장에서는 아이들이 반죽을 밀고 소스를 바른 뒤 각자 좋아하는 재료를 올리며 자신만의 조합을 완성한다. 오븐에서 막 나온 피자를 들고 “내가 만든 거야”라고 자랑하는 순간, 작은 성취감이 입 안의 따뜻함과 함께 번져간다. 곁에 자리한 찐빵 체험장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냄새만으로도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찜통 주변에 둘러선 이들은 손에 쥔 뜨거운 찐빵을 조금씩 떼어 먹으며 금세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고, 의외의 온기가 낯선 이들 사이에 스며든다.
실내 체험장은 차분한 손작업의 즐거움을 전한다. 다육이 만들기에 참여한 사람들은 작은 화분에 흙을 채우고 다육 식물을 심으며 마치 한겨울에 작은 정원을 꾸미듯 시간을 보낸다. 옆에서는 과일청 만들기 체험이 이어진다. 제철 과일을 썰어 설탕과 함께 병에 담고 나면, “봄이 올 때쯤 이 맛이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축제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뒤에도 식탁 위 유리병과 책상 모서리 화분이 그날의 공기와 웃음을 조용히 떠올리게 해준다.
보다 역동적인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넓은 들판에서 펼쳐지는 ATV 체험이 기다린다. 참가자들은 헬멧을 쓰고 ATV에 올라 마을 주변을 달리며 얼어붙은 땅 위를 가른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바퀴 아래에서 전해지는 진동이 온몸에 퍼질 때 묵은 체력이 깨우는 듯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느릿한 농촌 풍경과 빠른 속도의 조합은 도시에서는 쉽게 누리기 어려운 감각적 대비를 선사한다.
축제 한편을 차지한 플리마켓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겨울 풍경이 이어진다. 수공예품과 생활 소품, 작은 기념품들이 놓인 부스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물건 하나하나에 담긴 사연과 손길이 자연스럽게 눈길을 끈다. 두툼한 장갑을 낀 채 머그컵을 쥐고, 겨울 먹거리 부스에서 고른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은 발걸음을 늦춘다. 군것질 같았던 한 끼가 어느새 여행의 기억을 깊이 새겨 주는 장면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양평빙송어축제의 바탕에는 지역 농업과 농촌 문화에 대한 애정이 자리한다. 영농조합법인 수미마을과 양평빙송어축제 추진위원회가 함께 축제를 준비했고, 마을 주민들은 체험 진행과 먹거리 운영, 안내 등 다양한 역할로 참여한다. 방문객은 단지 ‘손님’이 아니라 잠시 마을의 겨울을 함께 살아보는 ‘이웃’에 가까워진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송어를 잡는 법을 알려주고, 따뜻한 음식 한 숟가락을 권하는 사이에 농촌의 삶과 표정이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농촌 축제를 찾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이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물하고 싶은 부모도 있고,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한 겨울 풍경을 느끼고 싶은 이도 있다. 누군가는 그저 SNS 속 얼음판 사진에 끌려 가볍게 방문했다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 장면을 안고 돌아가기도 한다. 댓글과 후기에는 “추운 줄 모르고 놀았다”, “손이 시려도 또 잡고 싶었다”는 말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따뜻했다”는 소감이 종종 이어진다. 날씨보다 먼저 떠올리는 것은 결국 사람과 공기,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다.
2025년 12월부터 2026년 3월 초까지 이어지는 양평빙송어축제는 얼음과 물, 사람과 마을이 한데 엮이는 긴 겨울의 기록이 될 전망이다. 수미마을의 얼음판 위를 빙어와 송어를 따라 천천히 거닐다 보면,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묵직한 위로와 쉼을 건네는 농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깐 다녀온 여행 같지만, 그 짧은 시간에 스며든 촉감과 냄새, 웃음소리는 오랫동안 마음 한쪽에서 겨울을 다시 불러낼 것이다. 작고 사소한 겨울 나들이 선택이지만, 우리가 계절을 기억하는 방식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