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합자사 미배당 소송승소”…일양약품, 180억 회수로 재무안정
중국 제약 시장에서 공동투자 방식으로 진출한 국내 기업의 이익 배당 분쟁이 법원 최종 판결로 정리되면서, 향후 국내 제약사의 중국 합자 구조 재점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양약품이 중국 합자법인 통화일양을 상대로 제기한 미배당이익금 청구 소송에서 중국 지린성 고급법원의 최종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3년 넘게 회수가 지연됐던 180억 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을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중국 내 합자 모델 리스크를 드러낸 사례이자, 향후 현지 독자법인과 기술수출 등으로 전략을 전환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일양약품은 10일 중국 지린성 고급법원이 통화일양 측이 보유한 약 180억 원 규모의 미배당이익금을 일양약품과 관계자에게 지급하라고 최종 판결했다고 밝혔다. 소송 대상 금액은 통화일양이 2020년과 2021년 사업연도에 발생시킨 이익 가운데 중국 측 주주 이사들의 반대로 배당이 이뤄지지 않으며 누적된 미지급 이익금이다. 중국 1심과 2심 법원 모두 통화일양 중국 측 주주의 배당 반대 사유가 합리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이번 고급법원 판결로 판시 내용이 확정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통화일양 중국 주주 측 이사들이 이익 배당을 거부한 행위를 한국 주주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는 권리남용으로 규정했다. 합자계약과 회사 정관에 명시된 이익 배당 절차와 주주 권리 구조를 근거로, 2020년과 2021년에 발생한 미배당이익금을 일양약품 측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일양약품은 이번 판결을 통해 3년 이상 회계장부상 이익잉여금에만 머물던 금액을 실제 현금으로 회수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소송의 배경에는 중국 합자법인 구조의 이해 상충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통화일양은 중국 현지 파트너와 일양약품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합자법인으로, 중국 내 의약품 생산과 판매를 담당해왔다. 그러나 영업 이익이 발생한 이후 이익 배당을 둘러싸고 중국 측 주주가 합자계약과 정관 내용과 배치되는 결정을 반복하면서, 일양약품은 배당 청구 소송과 별개로 2023년 통화일양 해산과 청산을 이사회에서 결의했다. 합자 구조 자체를 정리하고 새로운 방식의 중국 사업 모델을 모색하겠다는 판단이다.
일양약품 관계자는 3년 이상 묶여 있던 미배당 이익금을 전액 회수하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제약사는 임상 개발과 생산설비 투자, 글로벌 허가 절차 대응 등으로 대규모 자금 소요가 상시 발생하는 산업 특성을 지닌다. 대형 프로젝트가 장기화되는 만큼 이익의 안정적 회수와 재투자 가능 여부가 기업 가치와 연구개발 지속성을 좌우한다. 이번에 회수되는 180억 원 규모 자금은 일양약품의 재무 건전성 지표 개선과 함께, 파이프라인 임상 확대나 생산설비 고도화에 활용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이번 판결은 중국 내에서 이뤄진 법적 판단이라는 점에서, 중국 합자법인을 운영 중인 다른 국내 제약사에도 참고 선례가 될 수 있다. 중국 법원이 한국 측 외국인 주주의 이익 침해를 권리남용으로 명시하고 이익 배당 지급을 명령한 것은, 향후 합자계약 작성과 수정 과정에서 주주 간 권리 보호 조항을 강화하는 근거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동시에 중국 사업을 준비 중인 제약사 입장에서는 합자 구조 대신 독자법인 설립, 기술수출, 라이선스 아웃 등 다양한 진출 수단을 비교 평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해외 제약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한동안 중국은 인구 규모와 제네릭 중심 의약품 수요, 바이오의약품 성장 잠재력으로 인해 국내 제약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공략해 온 해외 시장이었다. 다만 최근 몇 년 사이 규제 환경 변화, 현지 파트너와의 이해관계 충돌, 로컬 제약사의 기술력 강화 등으로 인해 단순 합자 생산 모델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합자 구조를 유지하더라도 이익 배당과 거버넌스 조항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하거나, 아예 기술이전 계약과 로열티 수취 중심의 수익 구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일양약품은 이번 배당금 회수로 중국 시장 전략을 재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통화일양 해산과 청산 절차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중국 시장 내에서 신약과 개량신약 중심의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고, 현지 파트너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특히 면역항암제, 위식도질환 치료제, 감염성 질환 치료제 등 글로벌 수요가 큰 영역에서 중국 내 허가와 유통 네트워크를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일양약품 사례가 중국 합자법인 중심의 해외 진출 전략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대규모 자본 투입과 장기간 투자가 전제되는 제약 산업 특성상, 이익 배당과 지배구조 이슈가 사업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변수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 법원이 외국인 주주 보호 원칙을 재확인한 만큼, 법적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기업에는 새로운 협상 여지가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승소로 재무적 숨통을 튼 일양약품이 중국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재도전할지, 그리고 그 선택이 국내 제약사의 글로벌 전략 전환에 어떤 신호를 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