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DIZ 무단 진입 유감”…국방부, 중·러 군용기 비행에 외교채널 항의
중·러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 KADIZ 진입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외교 마찰이 다시 불거졌다. 한국군이 영공 침범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지만, 국방부가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에 직접 항의하며 한반도 안보 환경에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국방부는 10일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전날 KADIZ 무단 진입에 대해 외교채널을 통해 양국에 엄중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이같은 조치가 반복되는 중·러 군용기 진입에 대한 경고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광석 국방부 국제정책관은 이날 오전 주한중국국방무관과 주한러시아국방무관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전날 중·러 군용기의 KADIZ 진입에 항의했다. 이 국제정책관은 전화 통화에서 군용기의 사전 통보 없는 방공식별구역 진입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발적 충돌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의 대응 원칙도 재차 강조했다. 국방부는 우리 군은 KADIZ에서의 주변국 항공기 활동에 대해 국제법을 준수하는 가운데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주변국의 방공식별구역 활동에 대해서도 상호 존중과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나왔다. 합동참모본부는 전날 러시아 군용기 7대와 중국 군용기 2대가 동해 및 남해 KADIZ에 순차적으로 진입한 뒤 이탈했다고 발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 영공이 침범되는 일은 없었다고 전했다.
비행 경로 역시 세부적으로 공개됐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러시아 군용기는 울릉도와 독도 방향 KADIZ에 진입했으며, 중국 군용기는 이어도 인근 상공 KADIZ를 따라 비행했다. 중·러 군용기 모두 사전 통보 없이 한국이 설정한 방공식별구역 안으로 들어온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 군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중·러 군용기가 사전 통보 없이 KADIZ에 진입하자, 공군 전투기가 긴급 투입돼 우발상황에 대비하는 기동을 실시했다. 합동참모본부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전투기를 출격시켜 식별과 감시 활동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KADIZ의 법적 성격과 주변국과의 시각 차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은 자국 영공으로 접근하는 군용 항공기를 조기에 식별해 대응하기 위해 설정하는 임의의 선이다. 즉 개별 국가의 주권 사항인 영공과는 개념이 다르다. 이 때문에 방공식별구역 진입 자체가 국제법상 주권 침해로 간주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른 나라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는 군용 항공기는 해당 국가에 미리 비행계획을 제출하고, 진입 시 위치와 시간 등을 통보하는 것이 국제적 관행으로 자리 잡아 있다. 방공식별구역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군사적 신뢰와 긴장 완화 차원에서 일정한 작동 원리가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중·러의 인식은 다르다. 러시아는 한국이 설정한 KADIZ가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에 대한 한국의 통제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는 관행상 통보 의무도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중국 역시 이어도 상공을 둘러싼 방공식별구역 설정 문제에서 한국과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중국 군용기가 진입한 이어도 상공 KADIZ는 한국과 중국이 각각 설정한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되는 공역이다. 한국은 이어도 일대를 우리 KADIZ에 포함하고 있고, 중국은 자국 방공식별구역을 겹치게 설정해 관리하는 구조다. 두 나라가 서로 독자적으로 영역을 설정한 만큼, 중첩 해소를 둘러싼 협의는 수년째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방부의 엄중 항의에도 중·러가 기존 입장을 유지할 경우, KADIZ 진입을 둘러싼 마찰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자칫 한미일과 북중러 간 군사적 대립 구도 속에서 방공식별구역 활동이 상대 진영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군 당국은 향후에도 동일한 상황이 반복될 경우 국제법을 준수하는 범위 안에서 강도 높은 감시와 차단 조치를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외교·국방 채널을 통해 주변국과의 소통을 이어가면서도, KADIZ 내 우발 상황에 대비한 대응 태세를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