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울린 비상 문자”…일본 강진 소식에 다시 꺼내 든 재난 체크리스트
요즘 휴대전화에 재난 문자가 울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남의 나라 일처럼 느꼈던 먼바다 지진도 이제는 내 삶의 안전과 바로 연결된 문제처럼 다가온다. 사소해 보이는 진동과 경고음 속에, 우리가 재난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8일 밤, 일본 아오모리현 앞바다에서 규모 7.6의 강한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글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과거 쓰나미 영상을 다시 찾아보며 불안감을 털어놓았고, 또 다른 이는 집에 구비해 둔 비상용 생수와 손전등을 무심코 다시 점검했다고 고백했다. 먼 도시에 사는 타인의 재난이지만, 화면 속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는 ‘우리 동네에서 이런 일이 나면’이라는 가정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은 아오모리시 동쪽 133km 해역, 깊이 54km 지점에서 발생했다. 진원의 위치는 바다였지만 흔들림은 육지의 일상을 강하게 뒤흔들었다. 진원과 가까운 아오모리현 하치노헤시에서는 진도 6강, 오이라세초와 하시카미초에서는 진도 6약 수준의 강한 진동이 감지됐다. 홋카이도 하코다테시에서도 진도 5강의 흔들림이 전해졌고,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진도 3의 진동이 기록됐다. 집 안의 가구가 크게 흔들리고, 선반 위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질 수 있는 수치다.
지진 직후 일본 기상청은 아오모리현, 이와테현, 홋카이도 등지에 쓰나미 주의보를 발령하며 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반복적으로 해안가 대피를 당부했다. 바닷가 CCTV 화면에는 갑작스레 속도를 높이는 차량과, 서둘러 높은 곳을 향해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과거 거대한 쓰나미를 겪은 이들은 저마다 “진동이 멈추는 순간 곧장 TV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고 표현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를 틈도 없이, 곧장 정보를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이 지역 주민들의 몸에 밴 일상 습관이 된 셈이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이번 지진으로 이와테현 구지항에서는 최대 70cm, 홋카이도 우라카와초 50cm, 아오모리현 무쓰오가와라항 40cm 높이의 쓰나미가 관측됐다. 파고 자체는 비교적 크지 않았지만, 밤사이 반복된 경보와 경계 태세는 생활 리듬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9일 오전 6시 20분, 일본 기상청이 아오모리현과 이와테현, 홋카이도에 내려졌던 모든 쓰나미 주의보를 해제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불안과 피로가 뒤섞인 긴 밤을 보내야 했다.
부상 소식도 이어졌다. 이번 지진으로 현재까지 중상 1명, 경상 8명, 부상 정도를 알 수 없는 사람 4명 등 총 13명이 다친 것으로 보고됐다. 집 안에서 떨어진 물건에 머리를 부딪힌 사람도 있었고, 대피 과정에서 넘어져 다친 이들도 있었다. 주택 한 채에서는 화재까지 발생해, 진동이 멈춘 뒤에도 안전 점검과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지역 주민들의 긴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재난 일상화 시대의 피로’라고 부른다. 지진, 폭우, 폭염 같은 자연현상이 이제는 해마다 되풀이되면서,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늘 비상 버튼이 반쯤 눌려 있는 상태가 유지된다. 재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 일본 학자는 “지진의 본질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생활의 중단에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삶의 흐름이 갑자기 정지되거나 흔들리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사람들은 무심코 재난 대비 물품을 구비하고, 집 구조를 점검하고, 대피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국내 온라인 공간에서는 “내진 설계 한 번 더 확인하고 싶다”, “괜히 식탁 밑에 숨을 자리부터 눈에 들어온다”는 솔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과장이라고 웃어넘기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지구 반대편의 뉴스가 곧 자신의 불안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반복되는 재난 소식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음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 어떤 이는 가정용 비상 가방을 준비하고, 다른 이는 가족 단톡방에 ‘지진 났을 때 만날 장소’를 저장해 둔다.
실제로 재난을 겪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작은 습관 하나가 생존을 가른다는 이야기가 자주 회자된다. 문 가까이에 가벼운 슬리퍼를 두어 깨진 유리 조각을 밟지 않도록 한다거나, 침대 옆에 손전등과 휴대전화 보조 배터리를 상비해 두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준비를 지나친 불안이 아니라 ‘나와 가족을 지키기 위한 생활 기술’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감각이 있을 때, 재난 뉴스에 휩쓸리는 감정의 파고도 조금씩 잦아들기 때문이다.
밤사이 일본 해안에 내려졌던 쓰나미 주의보는 모두 해제됐고, 도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흔들린 책장과 금이 간 벽, 쉽게 잠들지 못했던 어젯밤의 기억이 오래 남을 것이다. 멀리서 전해진 한 번의 강진 소식이지만, 우리 역시 오늘 집에 돌아가며 창틀을 한 번 더 살피고 비상용 손전등의 위치를 떠올리게 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