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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치료 표준화로 WHO 인정”…자생, 전통의학 디지털 전환 속도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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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학과 디지털 헬스 기술을 결합한 한의학 표준화 움직임이 글로벌 보건의료 패러다임 변화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의 자생한방병원이 세계보건기구 WHO로부터 전통의학 영역에서 과학적 근거와 기술 융합, 사회적 기여도를 동시에 인정받으면서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한의학의 데이터 기반 검증과 국제 규격 표준화, 나아가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과의 연계 경쟁이 한층 가속화되는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나온다.  

 

자생한방병원은 WHO 글로벌 전통의학센터 GTMC가 주관한 건강·문화유산 혁신기관 Health & Heritage Innovations에 최종 선정됐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전 세계 전통의학 관련 기관 가운데 과학·기술·사회 측면에서 혁신성을 갖춘 선도 기관을 발굴해 육성하는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전통의학의 현대적 재해석과 보건의료 산업 기여도를 핵심 평가 축으로 삼는다.  

GTMC가 추진하는 건강·문화유산 혁신기관 프로젝트는 전통의학의 과학·기술적 한계를 넘기 위해 디지털 기술, 임상 데이터, 규격화된 진료 프로토콜 등을 적극 도입한 기관을 대상으로 한다. WHO는 특히 전통의학과 정보기술, 정밀의료 개념을 결합해 건강 형평성을 높이고, 지역별 의료 격차를 줄이는 모델을 주요 선정 기준으로 제시했다.  

 

공모는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됐으며 전 세계 1175개 기관이 참여했다. WHO는 유럽, 아메리카, 서태평양 등 6개 권역에서 각 3개 기관, 글로벌 영향력이 높은 3개 기관을 별도 선정해 총 21곳을 혁신기관으로 발표했다. 최종 명단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2차 WHO 전통의학 글로벌 서밋에서 공개됐고, 부산자생한방병원 김하늘 병원장과 의료진이 현장에서 발표와 네트워킹에 참여했다.  

 

건강·문화유산 혁신기관으로 이름을 올린 기관들은 앞으로 WHO로부터 멘토링, 지속가능성 강화 전략 수립 지원, 글로벌 파트너십 연계, 연구 협력 기회 등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받게 된다. 전통의학 데이터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임상 연구 형식으로 구조화하고, 디지털 헬스케어와 연동하는 과정에서 WHO의 가이드라인과 컨설팅을 제공받을 수 있어 향후 글로벌 진출의 관문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자생한방병원은 한의통합치료의 과학화와 표준화, 국제 확산 플랫폼 구축 등 주요 평가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WHO는 자생이 척추·관절 중심 한의 치료를 근거기반 모델로 정교화하고, 이를 디지털 형태의 프로토콜과 교육 커리큘럼으로 전환해온 과정에 주목했다. 의료 사각지대 해소,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통한 진료 접근성 제고 등 건강 불평등 해소 측면의 기여도도 주요 평가 요소가 됐다.  

 

기술·연구 측면에서 자생한방병원의 핵심 기반은 자생척추관절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임상 데이터를 표준화해 한의통합치료 프로토콜을 개발하고, 추나 치료, 약침, 한약 처방 등을 포함한 복합 치료의 작용 기전을 규명하는 데 연구 역량을 집중해왔다. 자생은 현재까지 SCI와 SCIE급 국제학술지에 290편이 넘는 논문을 게재해 한의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단계적으로 검증한 상태다. 이는 전통의학 분야에서 흔치 않은 수준의 데이터 기반 임상 축적 사례로, WHO의 평가 과정에서 과학성의 근거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연구 성과는 전통의학의 디지털 전환에도 직접 연결되고 있다. 다기관 임상 자료와 영상, 설문 데이터를 구조화해 근골격계 질환별 표준 치료 경로를 제시하는 알고리즘 개발, 치료 효과를 수치화하는 평가지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향후 전자의무기록 EMR, 원격 모니터링, 의료 AI와 결합될 경우, 한의학 기반의 통합의학 모델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에서 활용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교육과 네트워크 측면에서 자생한방병원은 자생메디컬아카데미 운영을 통해 미국, 중동 등 해외 의료기관과 협력 체계를 확대해왔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유일하게 ACCME 미국평생의학교육인증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보수교육기관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ACCME 인증은 미국 의료진의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부여되는 규격으로, 커리큘럼의 근거기반성, 평가 체계, 윤리 기준 충족 여부를 동시에 검증한다. 자생은 이 플랫폼을 활용해 해외 의사와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한의통합치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전통의학을 국제 의료교육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WHO의 이번 선정은 글로벌 전통의학 경쟁 구도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중국의 중의학, 인도의 아유르베다처럼 거대 국가 중심의 전통의학 시스템이 주도해온 시장에서, 한국 한의학이 과학적 검증과 국제 규격 교육을 앞세워 차별화된 포지션을 만들 수 있는 신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는 통합의학과 비약물 요법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근거기반 한의학 모델이 디지털 치료제,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 등과 연계될 여지도 커지고 있다.  

 

다만 규제·제도 환경은 여전히 핵심 변수로 남아 있다. 각국 보건당국의 의료기술 평가, 보험 등재, 데이터 표준 규격과 상호 인증 체계가 정교하게 뒷받침돼야만 전통의학 기반 서비스가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WHO 혁신기관 선정이 곧바로 임상 현장의 제도 변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가이드라인 논의에서 한의학의 존재감을 높일 수 있는 통로가 열린 점은 업계에서 주목하는 대목이다.  

 

이진호 자생한방병원 병원장은 자생한방병원의 WHO 건강·문화유산 혁신기관 선정이 한국 전통의학의 혁신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도 근거중심 한의학과 통합의학 발전, 글로벌 보건의료 산업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연구와 교육,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자생의 사례가 전통의학과 첨단 IT, 데이터 과학을 결합한 새로운 헬스케어 모델의 시험대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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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한방병원#who#한의통합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