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폴립까지 잡는다…서울아산, 대장암 조기차단 시험 가속
AI 기반 대장내시경 기술이 대장암 조기 발견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이 시험 운용 중인 AI 내시경 시스템은 의료진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쉬운 미세·편평 폴립까지 실시간으로 찾아내고, 암으로 진행할 위험도를 분석해 알려준다. 반복 검사로 피로도가 높아진 시간대에도 일정한 성능을 유지해 인간의 집중력 한계를 보완하는 점에서, 업계는 소화기내시경 분야 AI 경쟁 구도의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60대 남성 정모씨는 가족력과 복부 불편감으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검사 시작 15분가량 지났을 때 정상 점막과 거의 차이가 없는 5밀리미터 크기의 편평 폴립이 화면에 스쳤다. 이때 AI 시스템이 병변 위치에 노란색 테두리를 표시하며 의료진에게 위험 부위를 알려줬다. 의료진이 확대 관찰을 진행하자 AI는 몇 초 안에 샘종폴립 가능성을 92퍼센트로 제시했고, 즉시 내시경 절제술이 시행됐다. 조직검사에서 전암 병변인 샘종폴립으로 확진되면서, 향후 대장암으로 진행될 씨앗을 제때 제거한 사례가 됐다.

서울아산병원 AI 대장내시경 시스템의 핵심은 두 가지 기능이다. 첫째는 CADe로 불리는 컴퓨터 보조 검출 기능이다. 이 기능은 내시경 카메라가 촬영하는 영상을 프레임 단위로 분석해, 크기가 작거나 편평해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폴립도 실시간으로 감지해 화면에 표시한다. 둘째는 CADx라 불리는 컴퓨터 보조 진단 기능이다. 감지된 폴립의 형태·색조·표면 구조를 딥러닝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샘종폴립 같은 전암 병변인지, 절제 대상이 아닌 증식폴립 같은 비전암 병변인지 확률 형태로 제시한다.
해외 44개 무작위 비교 연구를 종합 분석한 결과도 AI 보조 내시경의 효과를 뒷받침한다. 일반 대장내시경의 샘종 발견율은 36.7퍼센트 수준이었지만, CADe를 적용한 대장내시경에서는 44.7퍼센트로 유의하게 높아졌다. 폴립을 많이 찾을수록 향후 대장암으로 진행될 위험을 더 많이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임상적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AI는 의료진의 컨디션과 무관하게 일정한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기존 연구에서는 오전보다 오후 시간대 대장내시경에서 폴립 발견율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보고됐다. 반복 시술로 의료진 피로도가 쌓이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돼 왔다. 반면 AI 내시경 시스템은 시술 횟수나 시간대에 관계없이 학습된 알고리즘에 따라 동일한 정확도로 병변을 탐지한다.
변정식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CADe의 역할을 안전장치에 비유했다. 변 교수는 CADe가 애매한 폴립 병변을 놓치지 않고 잡아주는 데 도움이 되며, 특히 집중도가 떨어진 시점이나 많은 시술로 피로도가 높을 때도 일정 수준 이상의 대장내시경 품질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료진의 숙련도와 당일 컨디션에 따라 널뛰기하는 폴립 발견율을 AI가 하한선을 끌어올려 주는 보완 장치로 작동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적 효과도 주목받는다. AI 도입 초기에는 폴립 탐지율 상승으로 내시경 절제술 건수가 늘어나 단기 의료비가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전암 폴립을 조기에 제거하면 이후 발생 가능한 대장암 치료 비용, 입원비,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장기적으로는 의료 재정 부담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동시에 CADx 기능으로 비전암 폴립을 정확히 구분하면 불필요한 절제술을 줄여 출혈, 천공 같은 합병증 위험과 그에 따른 추가 의료비를 감소시킬 여지도 있다.
변 교수는 전암 폴립을 제때 발견하고 절제해 대장암 진행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증식폴립 등 비전암 병변에 대한 과잉 절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AI 활용 전략을 제시했다. 환자 입장에서는 재검사 주기 설정이나 추적 관찰 계획 수립에서도 보다 정밀한 리스크 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대장내시경 보조 AI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 AI 시장의 성장 축 중 하나로 부상한 상태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식품의약국과 의약품청 레벨의 인허가를 받은 CADe 기기가 상용화되고 있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임상 적용 범위를 넓히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인허가 체계가 정비되면서, 내시경 영상 분석 AI의 SaMD 등록과 보험 수가 논의가 향후 상용화 속도를 가를 변수로 거론된다.
향후 기술 발전 방향은 대장 폴립 탐지를 넘어 보다 포괄적인 장질환 평가로 확장되는 쪽에 맞춰지고 있다. 조기 대장암의 침윤 깊이와 진행 정도를 영상 기반으로 정량 평가하거나,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등 염증성 장질환의 감별진단과 활성도 평가에 AI를 적용하려는 연구가 국내외에서 병행되고 있다. 고해상도 이미지와 병리 결과, 장기 추적 데이터를 결합해 학습시키는 통합 알고리즘 개발 경쟁도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변 교수는 앞으로 대장 관찰 시간이 충분했는지 자동으로 감시하는 기능, 장 정결 상태를 자동 평가하는 기능, 내시경 검사 결과지를 자동 생성하는 기능 등 워크플로우 전반을 지원하는 기능이 더 정교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위내시경과 췌담도내시경까지 AI 기능이 확대될 경우, 상하부 소화관 전체에서 진단 정확도를 높이고 치료 전략 수립을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의료 패러다임이 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대장내시경 AI가 실제 보험 체계와 병원 수익 구조 속에 얼마나 빠르게 안착하느냐에 따라 의료 AI 시장 성장 경로가 결정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의료현장의 수용성과 규제, 데이터 품질 관리가 균형을 이룰 때 소화기내과 영역에서 AI가 새로운 표준 장비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산업계는 이번 기술이 대장암 조기 진단 체계를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