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AI 데이터 센터 투자에 균열 조짐”…오라클發 충격에 뉴욕증시 기술주 급락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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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현지시각 기준 미국(USA) 뉴욕증시에서 인공지능(AI) 설비투자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부각되며 주요 지수가 일제히 하락했다. 오라클의 AI 데이터 센터 투자 차질 소식이 전해지자 기술주 중심 매물이 쏟아졌고, AI 랠리를 이끌던 반도체주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경계 심리가 커지고 있다.

 

뉴욕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28.29포인트(0.47%) 떨어진 47,885.97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78.83포인트(1.16%) 내린 6,721.43을 기록했다. 기술주 비중이 큰 나스닥종합지수는 418.14포인트(1.81%) 급락한 22,693.32로 장을 마쳤다.

뉴욕증시, ‘오라클 쇼크’에 나스닥 1.81% 급락…필라델피아 반도체 3%대 하락
뉴욕증시, ‘오라클 쇼크’에 나스닥 1.81% 급락…필라델피아 반도체 3%대 하락

시장의 급락을 촉발한 것은 오라클이 미국 미시간주에 건설 중인 1기가와트 규모 AI 데이터 센터 프로젝트에서 핵심 재무 투자자가 이탈했다는 보도였다. 해당 프로젝트는 오라클과 오픈AI가 체결한 3천억달러 규모 투자 협약의 일환으로 추진돼 왔으며, 대규모 AI 인프라 확충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업으로 평가돼 왔다.

 

오라클은 그동안 사모신용펀드 블루아울캐피털과 투자 구조를 협의해왔고, 블루아울은 자기자본 투입과 함께 수십억달러 규모의 부채를 조달해 프로젝트를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방대한 AI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대출 기관들이 데이터 센터 관련 부채에 한층 강화된 조건을 요구했고, 이로 인해 협상 구도가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블루아울은 대출 조건이 엄격해질 경우 미시간 데이터 센터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투자에서 발을 빼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라클은 데이터 센터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투자 차질이 실제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 둔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기술주 전반에서 매도세가 출회됐다. AI 및 반도체 관련 비중이 큰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3% 넘게 하락했다. 지수를 구성하는 30개 종목이 모두 약세를 보였고,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TSMC는 4% 안팎의 낙폭을 기록했다. ASML과 AMD, 램리서치는 5% 이상 떨어지며 변동성이 한층 커졌다.

 

오라클 자체는 나스닥에 상장돼 있지 않지만, 글로벌 AI 테마 대표주 가운데 하나로 분류돼 온 만큼 이번 투자 이슈가 나스닥 내 관련 기술주 전반으로 파급됐다. 시가총액 1조달러를 웃도는 대형 성장주 가운데서도 알파벳과 테슬라는 3% 이상 밀리며 지수 하락 폭을 키웠다. 오라클 주가는 5.40% 급락해 작년 9월 기록했던 최고가 대비 절반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다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등은 AI 사업 비중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종목으로 분류되며 보합권에서 버티는 모습을 보여 나스닥 지수의 추가 하락을 일부 제한했다. 제이콥스투자운용의 라이언 제이콥스 설립자는 “AI 주식과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일의 상당 부분은 오라클의 데이터 센터 구축과 연관돼 있다”며 “AI 시장에 다소 불안감이 생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라클 관련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회사의 신용 리스크 지표도 급등했다. 오라클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이날 150bp 수준까지 치솟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한 구간에 근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AI 투자 붐의 선단에 서 있던 기업의 신용 스트레스가 가시화될 경우, 고위험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파급 효과가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업종별로는 기술주가 2.19% 떨어지며 가장 큰 폭의 조정을 받았고, 산업, 통신서비스, 임의소비재 업종도 1% 이상 밀렸다. 반면 에너지 업종은 국제 유가 반등에 힘입어 2.21% 상승, 뚜렷한 차별화를 보였다. 기술주가 크게 밀리는 동안 전통 산업주와 가치주로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다우지수 하락 폭은 다른 지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한됐다.

 

다우 구성 종목 가운데서는 홈디포, 프록터앤드갬블, 맥도널드가 1% 이상 오르며 방어적 성격의 종목 선호 현상을 반영했다. 셰브런 등 정유 관련 종목도 유가 반등 기대에 강세를 나타냈다. 재크투자운용의 브라이언 멀버리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확실히 대형 성장주에서 대형 가치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내년에 일어날 일에 대비해 보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책 변수도 일부 업종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사주 매입과 배당금 지급을 제한하고, 임원 보수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행정 명령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방산주가 약세를 보였다. 헌팅턴잉걸스와 RTX는 이날 2% 안팎의 조정을 받았다. 기업의 자본 배분과 보수 체계를 겨냥한 정책 리스크가 부각되자, 방산·중공업 등 정부 조달 의존도가 높은 종목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해석된다.

 

금리 기대와 변동성 지표 역시 시장의 경계 심리를 반영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은 내년 1월 연방준비제도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을 약 75.6% 수준으로 반영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장보다 1.14포인트(6.92%) 오른 17.62에 마감해 위험자산 회피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국제 금융시장은 이번 오라클발 충격을 AI 투자 사이클의 분기점으로 볼지, 일시적 조정으로 볼지 가늠하려 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리 고점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자본 조달 비용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가 수익성과 재무 건전성의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라클의 프로젝트 재조정 여부와 함께, 주요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들의 설비투자 계획이 어떻게 수정될지에 따라 뉴욕증시와 글로벌 IT·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미칠 영향이 가늠될 전망이다. 국제사회는 AI 투자 열기가 조정 국면에 접어들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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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나스닥#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