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서브컬처 공략"…넥슨 블루 아카이브, 일본 흥행 장기화
서브컬처 수집형 RPG 블루 아카이브가 일본을 기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장기 흥행에 안착하며 K게임 IP의 확장 모델을 재정의하고 있다. 서브컬처 종주국으로 불리는 일본에서 신규 한국 IP가 수년간 매출 상위권을 유지하는 사례가 드문 가운데, 팬 커뮤니티와 2차 창작 생태계를 축으로 한 IP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일본에서 검증된 경쟁력을 바탕으로 PC와 콘솔 등 멀티 플랫폼 확장이 가속되면, 서브컬처 게임 시장 성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블루 아카이브는 넥슨게임즈가 개발한 서브컬처 수집형 RPG다. 2021년 2월 일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출시 후 3년이 넘도록 현지 앱마켓 매출 최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2024년 7월 진행된 일본 서비스 4.5주년 대규모 업데이트 직후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올랐고, 같은 달 30일 한정 캐릭터 출시 당일에도 다시 매출 정상에 복귀했다. 단발성 흥행이 아닌 반복적인 매출 피크를 만들어내며 라이브 서비스 운영 역량을 입증한 셈이다.

특히 블루 아카이브는 일본 현지에서 2차 창작 생태계를 주도하는 IP로 자리 잡았다. 세계 최대 2차 창작 행사로 꼽히는 코믹마켓에서 2023년 102회차부터 인기 IP에만 부여되는 독립 장르 코드를 획득했고, 103회차 이후로는 단일 IP 기준 참여 서클 수 1위를 유지 중이다. 일본 내부 IP들 사이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행사에서 해외 IP가 서클 수 1위를 기록한 것은 블루 아카이브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다.
코믹마켓 참여 서클 수 추이를 보면 성장세가 뚜렷하다. 103회차 1700개, 104회차 1922개, 105회차 2290개, 106회차 1842개로 집계됐다. 전체 부스 수가 직전 회차 대비 약 20퍼센트 줄어든 106회차에서도 블루 아카이브의 서클 비중은 8퍼센트대로 오히려 상승했다. 공급 환경이 축소된 상황에서도 팬덤 기반 창작 열기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다.
온라인 팬아트 플랫폼에서도 IP 파급력이 확인된다. 일본 창작 커뮤니티 픽시브에 등록된 블루 아카이브 관련 팬아트는 10월 31일 기준 92만 건을 넘어섰다. 한국 게임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일 뿐 아니라, 글로벌 인기작으로 꼽히는 원신 약 89만 건, 우마무스메 약 57만 건보다도 많은 수치다. 이용자 참여형 콘텐츠 생산이 활발하다는 점은, 단순 매출 지표를 넘어 장기 IP 가치 측면에서 중요한 지표로 해석된다.
플랫폼 다각화 전략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블루 아카이브는 모바일 중심 서비스에서 나아가 글로벌 PC 플랫폼 스팀에 정식 출시됐다. 스팀에서의 초반 평가는 긍정적이다. 약 1만 5000건의 이용자 리뷰 가운데 91퍼센트가 호평을 남겨 스팀 내 평가 지표인 매우 긍정적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모바일 게임을 PC 플랫폼에 이식할 때 발생하는 조작감 이슈나 최적화 문제를 비교적 원활히 해소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일본에서의 성과가 단순 현지화 성공을 넘어 서브컬처 장르 특화 전략의 결과라고 본다. 일본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기준 2023년 약 480억 달러, 한화 약 69조 원 규모의 세계 3위 게임 시장이자, 서브컬처 장르 이용자층이 특히 두터운 지역이다. 만화,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로 이어지는 서브컬처 소비 패턴이 뿌리내린 만큼, 캐릭터성과 세계관,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한 IP의 완성도를 엄격히 검증받는 시장으로 평가된다.
국내 업계에서는 매년 3∼4종 내외의 서브컬처 게임이 일본에 진출하지만, 서비스 초반 성과 이후 매출과 팬덤을 장기간 유지하는 IP는 극히 제한적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토종 IP들이 강고한 팬층을 가진 데다, 현지 퍼블리싱과 마케팅, 이벤트 운영까지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블루 아카이브의 장기 상위권 유지와 2차 창작 생태계 확장은 한국 IP의 경쟁력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상징적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서브컬처 장르의 성장 잠재력은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 리서치 인텔렉트는 전 세계 서브컬처 게임 및 관련 IP 시장 규모가 2023년 약 209억 달러, 한화 약 30조 원 수준에서 연평균 11퍼센트 성장해 2031년 485억 달러, 약 7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래에셋증권 분석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체 게임 시장의 연평균 성장률이 5.2퍼센트인 데 비해 서브컬처 게임 시장은 16.7퍼센트로 세 배 이상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서브컬처 게임은 캐릭터 수집과 육성, 시나리오 중심 서사 구조를 결합해 이용자의 장기 체류와 반복 결제를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는다. 여기에 2차 창작, 팬아트, 동인지 등 유저 주도형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IP 라이프사이클이 길어지는 특징이 있다. 블루 아카이브가 코믹마켓과 픽시브에서 보여준 지표들은 이런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는 중국과 일본, 글로벌 빅테크 계열 게임사들이 서브컬처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중국계 게임사는 원신, 붕괴 시리즈 등으로 콘솔과 PC, 모바일을 아우르는 크로스 플랫폼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일본 내에서는 우마무스메와 다수의 애니메이션 원작 게임이 여전히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산 신규 IP가 서브컬처 본진인 일본에서 독립 장르 코드와 서클 수 1위까지 기록한 것은, IP 설계와 운영 전략 측면에서 경쟁력을 증명한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책 측면에서 볼 때, 개별 게임 IP의 성공은 한국 게임 산업 전체의 수출 구조에도 의미를 던진다. 게임 수출이 모바일 중심에서 콘솔과 PC, 멀티 플랫폼 IP 비즈니스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캐릭터·애니메이션·굿즈·공연 등 2차 사업과의 연계가 필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디지털 콘텐츠 수출·IP 육성 정책에서도, 블루 아카이브와 같은 서브컬처 성공 사례는 구체적인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용하 넥슨게임즈 총괄 PD는 이용자 만족도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출시 5주년을 앞둔 시점을 언급하며 블루 아카이브가 더 넓은 글로벌 시장에서 사랑받는 IP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개발과 서비스 전반에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산업계는 이 IP가 일본에서 구축한 팬덤과 스팀 등 신규 플랫폼 확장을 통해 향후 어느 정도의 글로벌 파급력을 보여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