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중국 배터리 28.5% 증가”…CATL 독주, 국내3사 점유율 하락→체질전환 분수령
전기차 수요가 일시적 정체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 속에서도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은 중국계 기업에 더 크게 돌아갔고,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으로 구성된 국내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내려앉았다. 기술과 설비, 그리고 지역별 포트폴리오 전략을 둘러싸고 배터리 업계 전반이 전환기의 갈림길에 선 모습이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0월까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신규 등록된 순수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하이브리드차에 탑재된 배터리 총사용량은 377.5GWh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28.5% 늘어난 수치로, 전기차 캐즘 논의에도 불구하고 비중국 시장에서의 전동화 기조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기간 국내 3사의 사용량 합산은 증가했으나, 점유율은 37.6%로 전년 동기 대비 6.3%포인트 하락했다.

개별 기업의 성적표를 보면 성장의 양상은 균질하지 않다.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사용량은 79.2GWh로 1년 전보다 11.4%, SK온은 37.5GWh로 19.0% 증가했다. 반면 삼성SDI는 25.1GWh에 그치며 4.6%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테슬라 공급 물량 둔화에도 불구하고 기아 EV3의 글로벌 판매 확산과 얼티엄 플랫폼이 적용된 쉐보레 이쿼녹스, 블레이저, 실버라도 EV 등 북미 전용 전기차의 판매 확대가 성장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SK온은 폭스바겐 ID.4와 ID.7, 포드 익스플로러 EV 등 주력 고객사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사용량을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사용량 증가에도 점유율 측면에서는 압박이 거세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비중은 같은 기간 24.2%에서 21.0%로 3.2%포인트 떨어졌지만 순위는 2위를 유지했다. SK온은 9.9%로 3위, 삼성SDI는 6.6%로 6위에 자리했다. 단가 경쟁과 플랫폼 전환,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조달 다변화 전략이 겹치며 국내 3사의 영향력은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린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계 업체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졌다. 세계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은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전년 동기 대비 37.6% 증가한 110.1GWh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점유율은 29.2%로, 2위 그룹과의 격차를 크게 벌렸다. 배터리와 전기차를 수직 계열화한 BYD는 28.7GWh로 사용량이 141.2%나 늘며 점유율 7.6%를 기록, 순위 5위에 올랐다. SNE리서치는 BYD가 자사 전기차와 배터리를 결합해 가격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유럽을 중심으로 차급별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점을 급성장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비중국권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일본 파나소닉 역시 존재감을 이어갔다. 파나소닉의 배터리 사용량은 35.9GWh로 26.9% 증가했고, 테슬라 중심 공급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9.5%의 점유율로 4위에 올랐다. 테슬라의 성장 속도가 둔화해도 누적 설치량과 고에너지밀도 기술을 앞세운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이처럼 상위권 판도는 중국과 일본, 한국 업체가 혼재하는 삼각 구도 속에서 중국계의 비중 확대라는 방향으로 서서히 재편돼 가고 있다.
시장 구조를 들여다보면 변화의 축은 단지 전기차 판매량에 그치지 않는다. SNE리서치는 2024년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전기차 수요 변화와 에너지저장장치, 이른바 ESS 수요 확대가 병행되는 구조적 전환기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전기차 전용 생산능력을 키우던 기업들이 이제는 ESS, 상용차, 마이크로 모빌리티 등 다양한 응용처와 지역별 수요 변동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다.
SNE리서치는 이러한 환경에서 배터리 기업들에게 생산 설비의 유연한 운용 능력과 지역별 수요 특성에 맞춘 제품 구성 전략이 핵심 경쟁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늘리는 확장 중심 전략보다, 공급 안정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포트폴리오 조정, 그리고 다양한 응용처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적 완성도가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원가 부담이 크고 정책 변동에 민감한 전기차 시장에서, 고밀도 셀과 장수명 배터리, 안전성 강화를 중심으로 기술 차별화를 이루려는 국내 3사에게 특히 무게감 있는 과제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3사가 단기 점유율 변화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북미와 유럽에서의 현지 생산 체계 고도화와 더불어 ESS, 상용 전기트럭, 재사용 배터리 등으로 수익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에 적합한 셀 포맷과 소재 혁신을 병행해 내연기관과 전동화가 공존하는 과도기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확보하는 전략도 요구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이 한층 복잡한 산포도를 그리기 시작한 가운데, 국내 3사가 구조 전환기에 맞는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