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글로벌 OTA 공세전…야놀자, 3대 대표 교체로 승부수
인공지능 전환과 글로벌 온라인여행사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야놀자가 소비자 플랫폼과 B2B 클라우드, 지주사까지 핵심 리더십을 동시에 교체했다. 지난해 말 B2C 사업을 분사한 데 이어 조직과 기술, 투자 축을 한 번에 재정렬하며 글로벌 트래블 테크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모바일 중심 성장 국면을 넘어 AI와 데이터 중심 경쟁으로 판이 바뀌는 시점에 나온 초강수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야놀자는 3일 소비자 플랫폼 법인 놀유니버스와 B2B 솔루션 법인 야놀자클라우드, 지주사 야놀자홀딩스 대표에 각각 새로운 수장을 선임했다고 밝혔다. 놀유니버스 대표에는 야놀자 최고마케팅책임자 출신 이철웅, 야놀자클라우드 대표에는 최고기술책임자인 이준영을 앉혔다. 동시에 야놀자홀딩스에는 대표 직책을 새로 만들고 그룹 최고투자책임자를 맡아온 최찬석을 선임했다.

이철웅 놀유니버스 신임 대표는 아고다, 클룩 등 글로벌·로컬 온라인여행사에서 동북아 사업 조직을 이끌었던 OTA 전문가다. 2022년 야놀자 CMO로 합류해 국내외 마케팅과 브랜드 전략을 총괄해왔고, 이번 인사를 통해 소비자 비즈니스 전체를 책임지게 됐다. 야놀자는 이 대표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확대, 데이터 기반 초개인화 서비스 도입, 트렌드 기반 마케팅 전략 고도화, 사용자 경험 개선, 상품 경쟁력 강화 등 플랫폼 전반을 재정비해 국내외 경쟁력을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준영 야놀자클라우드 신임 대표는 그룹 핵심 기술 경쟁력과 연구개발 조직을 이끌어온 CTO로, 이번에 B2B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사업까지 총괄하게 됐다. 그는 인공지능, 클라우드, 호텔·레저 운영 솔루션 고도화와 글로벌 비즈니스 확대를 동시에 책임지며, 야놀자가 표방하는 글로벌 여행 테크 기업 전략의 기술 축을 맡는다. 야놀자는 AI 기반 수요 예측과 객실 가격 자동화, 운영 프로세스 최적화 등 고도화가 필요한 영역을 중심으로 솔루션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SaaS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구상이다.
기존 수장인 배보찬 전 놀유니버스 대표와 김종윤 전 야놀자클라우드 대표는 그룹 고문으로 역할을 전환한다. 두 사람이 맡고 있던 그룹 최고재무책임자와 최고전략책임자 업무는 모두 새로 선임된 최찬석 야놀자홀딩스 대표에게 일원화됐다. 지주사 대표 직책이 처음으로 만들어지면서, 빠르게 커진 사업 포트폴리오를 하나의 투자·전략 축으로 묶는 구조가 갖춰진 셈이다.
최찬석 대표는 벤처캐피털, 투자은행, 산업계를 두루 거친 25년 경력의 투자·재무 전략 전문가다. 과거 넷마블 기업공개, 북미 게임사 카밤과 코웨이 인수 등 대형 거래를 주도했고, 2021년 야놀자 합류 이후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17억 달러 규모 투자를 이끌어냈다. 인터파크, 고글로벌트래블, MST트래블 등 글로벌 기업 인수에도 깊이 관여하며 야놀자의 해외 확장 기반을 넓혀왔다. 앞으로는 야놀자 코퍼레이션 리더로서 각 사업 부문의 성장을 지원하고, 글로벌 확장 지속, 신성장 동력 발굴, 중장기 기업 가치 제고 전략을 총괄할 예정이다.
야놀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모바일 중심 성장 단계를 넘어 AI 전환 시대로 접어드는 시점에 맞춰 고객 가치 중심 사고와 기술 혁신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AI 전환은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방식 전반을 바꾸는 흐름이기 때문에, 소비자 접점과 B2B 솔루션, 투자와 지배 구조를 동시에 손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OTA 공세가 거세지는 시점에 리더십을 한꺼번에 바꾼 점이 업계의 관심을 끈다. 야놀자는 놀유니버스를 통해 B2C 사업의 전략 프레임을 숙박과 여행을 넘어 레저와 일상 여가 전반으로 넓히고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야놀자클라우드는 호텔·레저 사업자의 운영 시스템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환시키는 B2B 솔루션을 제공하며 전 세계 호텔·여행 인프라를 묶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한 뒤 리더십을 바꾸면 대응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아고다와 클룩 출신인 이철웅 대표 선임은 이러한 맥락에서 분사 효과를 실행력으로 연결하려는 카드로 읽힌다. 소비자 접점이 앱과 검색, 소셜, 오프라인으로 다층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글로벌 OTA가 쌓아온 수요 데이터 활용 경험을 국내 플랫폼 전략에 접목하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여행, 여가, 일상이 하나의 소비 흐름으로 묶이는 상황에서 사용자 경험 구조를 누가 먼저 설계하느냐가 승패를 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OTA와 메타서치 기업들은 아시아를 차세대 성장 축으로 삼고 공격적인 투자와 프로모션 전략을 준비해왔다. 아직 공세가 정점에 이르진 않았지만, 야놀자가 리더십 교체 타이밍을 앞당긴 배경에는 본격적인 가격·마케팅 경쟁이 시작되기 전에 사용자 경험과 데이터 기반 구조를 선점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초기 고객 기반을 탄탄히 다져놓지 못하면 이후에는 글로벌 자본이 투입되는 공세를 방어하기 어렵다는 위기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AI 전환도 이번 인사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호텔과 레저 운영 솔루션 시장은 이미 객실 가격 자동 산정, 예약 패턴 분석, 인력 배치 최적화 등 핵심 기능이 AI 모델 기반으로 재편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영역에서는 모델의 정확도 못지않게 도입 속도와 현장 적용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야놀자가 B2B 비즈니스 수장을 CTO 출신인 이준영 대표로 교체한 것은 기술 중심 운영 체계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AI 고도화에 필요한 운영 데이터와 수요 데이터는 솔루션 기업의 핵심 자산이다. 호텔·펜션·리조트 등 다양한 사업자의 예약·정산·객실 운영 데이터가 클라우드 플랫폼에 축적될수록 수요 예측 모델과 가격 최적화 알고리즘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야놀자는 이러한 데이터 자산을 자체적으로 통제·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강화하지 않으면 글로벌 클라우드 기반 숙박 솔루션 기업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직 구조 측면에서는 빠른 외형 확장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내부 병목을 사전에 줄이려는 의도도 읽힌다. 그동안 야놀자는 투자와 인수합병, 신규 법인 설립을 통해 포트폴리오를 빠르게 넓혀왔지만, 이를 통합 조율하는 컨트롤타워는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지주사에 전담 대표를 신설한 것은 각 사업의 현장 의사결정 속도는 유지하되, 투자 우선순위와 리스크 관리를 중앙에서 끌고 가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국내외 트래블 테크 시장에서는 OTA와 호텔 관리 시스템, 채널 매니저, 수익관리 솔루션 등 다양한 영역이 하나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통합되는 추세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클라우드 기반 호텔 운영 시스템과 OTA, 메타서치 서비스를 묶어 제공하는 사업자가 등장하며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야놀자는 이번 리더십 개편을 통해 아시아 시장에서 유사한 통합 구조를 선점하고, 이후 글로벌 확장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AI 전환과 글로벌 확장은 규제·정책 환경에도 영향을 받는다. 각국의 개인정보 보호 규제와 데이터 국경을 둘러싼 요구가 강화되면서, 맞춤형 추천과 수요 예측에 활용되는 고객 데이터의 수집·저장·이전 방식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트래블 테크 기업들은 데이터 활용 범위를 투명하게 고지하고, 알고리즘 편향과 설명 가능성 문제에 대응하는 기술적 장치를 갖춰야 한다. 야놀자 역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만큼, 데이터 거버넌스와 AI 윤리 기준을 사업 모델에 어떻게 녹여낼지가 향후 과제가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AI와 글로벌 경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선제 조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속도에서 한 번 늦어지면 회복이 쉽지 않다며 야놀자의 리더십 교체 시점은 상당히 공격적인 선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뒤처지기 전에 먼저 움직이겠다는 판단이 작동한 것으로 읽힌다며 고객, 기술, 조직 세 축을 동시에 재정렬해 다음 경쟁 국면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트래블 테크 산업이 글로벌 자본과 AI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야놀자의 이번 승부수가 실제 시장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산업계는 AI 전환과 글로벌 확장, 데이터 규제 대응이라는 세 가지 변수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야놀자의 조직 재편이 얼마나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