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도약 원년 예고…협회, 글로벌 경쟁전략 강조
AI와 데이터 기술이 바이오의약품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가운데, 업계가 2026년을 K바이오 도약의 분기점으로 조준하고 있다. 글로벌 금리와 투자 환경이 요동치고 각국이 의약품 공급망 자립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한국 바이오 업계는 AI 기반 신약개발, 바이오시밀러, 위탁개발생산과 첨단바이오 파이프라인을 주된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산업계는 규제 과학 고도화에 맞춘 제도 정비가 향후 글로벌 시장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석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장은 30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2026년을 K바이오의 도약기로 규정했다. 그는 2026년 병오년을 언급하며 붉은 말이 상징하는 역동성과 추진력이 바이오의약품 산업에 투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을 위기이자 기회로 해석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그간 쌓아온 기술과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성장 궤도를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이 회장은 먼저 2025년을 전환과 재편의 시기로 정리했다. 글로벌 금리 수준 변화와 투자 심리 위축, 국가별 의약품 공급망 자립 정책 강화, 그리고 규제 과학 수준의 고도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산업 구조에 상당한 압력이 가해졌다는 평가다. 규제 과학 고도화는 임상 설계, 품질관리, 허가 심사에서 요구되는 기준이 한층 정교해지는 흐름을 뜻한다. 단기적으로는 개발 기간과 비용 부담을 키우지만, 장기적으로는 제품 신뢰도와 글로벌 허가 확장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양면적 요소로 해석됐다.
그는 이러한 환경에서도 구체적인 성과가 도출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AI 기반 신약 개발에서 실질적인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바이오시밀러와 위탁개발생산 분야에서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대형 계약 체결과 생산 캐파 확대를 통해 경쟁력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첨단바이오의약품 파이프라인이 확장되면서 세포유전자 치료제, 면역세포치료, 표적 항암 신약 등에 대한 국내 기업의 존재감이 해외 학회와 글로벌 임상 현장에서 더 분명해졌다고 평가했다.
협회는 이러한 기술 축적의 중심에 AI와 데이터가 있다고 본다. 연구개발 전 과정에 AI를 적용하는 흐름이 본격화되면서 후보물질 탐색, 독성 예측, 임상 성공 가능성 분석 등에서 효율성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사람과 실험 장비에 의존하던 반복 시뮬레이션 단계에 머신러닝 모델이 도입되면서, 후보물질 선별 속도를 단축하는 동시에 실패 확률을 줄이는 방향으로 프로세스가 재구성되는 추세다. 이 회장은 신약개발 패러다임 자체가 데이터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장 관점에서 보면 국내 기업들은 바이오시밀러와 CDMO를 양대 수익원으로 삼아 글로벌 레퍼런스를 빠르게 쌓아가는 모습이다. 바이오시밀러는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의 특허 만료 이후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시장을 넓히고 있고, CDMO는 대규모 생산설비와 공정기술을 활용해 다국적 제약사 프로젝트를 수주하며 안정적인 매출원을 확보하는 구조다. 여기에 세포유전자 치료제와 면역항암제 등 첨단 분야 파이프라인이 상업화 단계에 근접할수록, 단일 항목당 매출 규모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기대도 작용하고 있다.
글로벌 경쟁 구도는 한층 치열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자국 내 생산기지 확충과 공급망 리스크 완화를 위해 바이오 제조 설비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일본과 중국도 자국 중심의 CDMO 육성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한국 바이오 기업들은 이미 항체의약품, 백신, 세포치료제 생산에서 일정 수준의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았지만, 생산 효율과 품질 관리, 규제 대응, 가격 경쟁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다층적 경쟁에 직면해 있다. 이 회장의 발언에는 이런 격화된 경쟁 환경에서 한 번 더 도약하지 못하면 성장 궤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내포돼 있다.
정책과 제도 측면에서 협회는 규제 과학 고도화에 맞춘 산업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허가 심사 기준이 정밀해질수록 임상 데이터 품질과 실사용데이터 연계, 장기 추적조사 체계 확보 같은 요소가 필수 요건으로 부상한다. 동시에, 각국이 의약품 공급망 자립을 앞세운 정책을 강화하는 만큼 한국 역시 핵심 원부자재 국산화, 생산 거점 다변화, 데이터 인프라 확충 등 종합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회장은 2026년을 산업 도약의 중대 기점으로 내다보면서 협회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가 업계의 요구를 수렴해 정책·제도 개선을 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글로벌 규제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 공유와 교육, 국제 협력 채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AI 기반 신약개발과 첨단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가이드라인과 인허가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향후 K바이오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업계는 향후 1~2년간의 정책 방향과 자본시장 환경,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확대 여부가 K바이오의 도약 범위를 가를 요인으로 보고 있다. 협회가 예고한 대로 2026년이 성장 곡선을 재차 끌어올리는 분기점이 될지, 아니면 조정 국면의 연장선에 머물지에 따라 국내 바이오 생태계의 위상도 달라질 수 있다. 업계는 K바이오가 기술과 규제, 시장 전략을 얼마나 정교하게 조율하느냐가 다음 성장 단계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