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비트코인 한 달 새 30 급락…연준 속도조절 기류에 위험자산 동반 흔들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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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시장이 한 달여 사이 급격한 조정 국면에 진입하며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비트코인은 12만 달러를 넘보던 사상 최고가에서 30 안팎 밀려나 9만 달러선을 여러 차례 밑돌았고, 시가총액 수천억 달러가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미국 통화정책과 증시 조정이 맞물린 결과로 분석하면서, 이번 흐름이 장기 침체의 전조인지 강세장 속 숨고르기인지에 대해 엇갈린 해석을 내놓고 있다.

 

보도 시점 기준 비트코인은 10월 초 12만6천251달러를 기록한 뒤 내림세로 돌아섰다. 11월 중순 뉴욕증시 개장 전에는 장중 9만 달러선을 하회했고, 11월 19일에는 9만2천548달러까지 내려앉아 올해 누적 상승분 30를 사실상 반납하며 작년 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국내에서는 빗썸 기준 1억3천600만 원 안팎에서 거래되는 등 달러 가격과 연동된 큰 폭의 변동성을 보여 투자 심리를 위축시켰다.

비트코인 30% 급락, 크립토 윈터 신호? 사진 AI제작
비트코인 30% 급락, 크립토 윈터 신호? 사진 AI제작

조정의 배경에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경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연준은 9월과 10월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각각 25bp씩 인하해 연 3.75~4.0 수준까지 낮췄지만,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정례회의를 앞두고 추가 인하보다 동결 쪽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소비자물가지수가 다시 3대에 올라서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부각되자 필립 제퍼슨 부의장과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매파 성향 인사들이 연이어 속도 조절을 주문했고, 최근 공개된 의사록에서도 인하 중단 가능성이 거론됐다. 시장에서는 유동성 공급 기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비트코인을 포함한 위험자산 전반이 흔들렸다.

 

뉴욕증시에서는 인공지능 버블 논란 속에 투자 심리가 빠르게 얼어붙었다. 엔비디아 등 대형 기술주가 연일 조정을 받으면서 나스닥과 S&P 500 지수가 4거래일 이상 약세 흐름을 이어갔다. 기술주 부진 여파는 코스피와 코스닥에도 번져 국내 증시 변동성을 키웠고, 한국형 공포지수로 불리는 VKOSPI 급등으로 투자자의 불안 심리가 확인됐다. 이런 위험 회피 기조는 대표적 고위험 자산인 비트코인으로 직결됐다. 글로벌 가상자산 공포 및 탐욕 지수는 15까지 떨어져 극단적 공포 구간에 들어섰고, 레버리지 포지션을 중심으로 강제 청산이 속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규모 축소도 뚜렷하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코인게코 집계에 따르면 1만8천 개가 넘는 가상자산의 시가총액은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11월 초 이후 약 25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1조2천억 달러가 증발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중 통상 갈등 재점화와 관세 압박 가능성이 부각되자 레버리지 포지션 수십억 달러 규모가 한꺼번에 정리되면서 24시간 동안 14를 웃도는 낙폭이 나타났다. 초고위험 레버리지 거래에 쏠렸던 자금이 청산되며 매도 물량이 일시에 쏟아졌고, 비트코인은 올해 주요 자산군 가운데 가장 부진한 수익률을 기록한 자산으로 밀려났다.

 

기관 자금의 태도 변화도 하락세를 부추겼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에서는 11월 12일부터 17일까지 나흘 연속 순유출이 이어졌고, 이 기간 약 17억2천만 달러가 매도된 것으로 집계됐다. 연준 금리 경로가 다시 안갯속으로 들어가자 기관들은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고 현금과 채권, 방어적 자산 선호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동시에 미국 증시에서 AI 관련주의 고평가 논란이 커지고 빅테크 기업의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성장주와 가상자산이 동반 조정을 받는 흐름이 뚜렷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조정을 둘러싼 전망은 크립토 윈터 진입론과 강세장 조정론으로 나뉜다. 비관론은 장기간 하락과 횡보가 이어지는 이른바 크립토 윈터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상자산 애널리스트 알리 마르티네즈는 비트코인이 기존 박스권을 하향 이탈했다며 8만3천500달러까지 추가 하락 가능성을 제기했다. 디지털 자산 솔루션 기업 헥스 트러스트의 알레시오 콰글리니 최고경영자도 조정이 당분간 이어져 7만 달러 초반, 혹은 일시적으로 그 아래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AI 버블이 현실화될 경우 위험자산 전반의 동반 냉각이 불가피하다는 시각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는다.

 

반면 낙관론은 구조적 강세장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깊은 숨고르기로 해석한다. 매트 호건 비트와이즈 최고투자책임자는 비트코인이 저점에 근접해 있다며 현재 구간을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는 비트코인의 온체인 지표와 공급 구조를 근거로 장기 상승 동력이 유지되고 있다고 보고 2026년까지 강세장이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 반감기 이후에도 일정 기간 조정과 횡보가 반복된 뒤 다시 사상 최고가를 경신해 왔던 사이클 패턴이 이번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치와 규제 환경도 향후 흐름을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행정부 입지 변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가상자산 정책 방향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논의와 함께 규제 기조의 변화 폭에 따라 기관 자금 움직임이 크게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규제 리스크가 부각될수록 가격 변동성은 확대될 수밖에 없고, 장기 투자자와 단기 투기성 자금 간 온도 차도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연준은 12월 회의에서 시장 기대와 인플레이션 부담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미묘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할 경우 비트코인과 가상자산에는 유동성 측면의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물가 재가열 우려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동결 또는 매파적 신호로 선회하면 최근 한 달 새 30 하락을 경험한 비트코인의 추가 조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장에서는 통화정책과 글로벌 증시, 기관 자금 흐름이 맞물려 가상자산 가격 방향성을 결정할 것이라 보고 다음 사이클의 출발 시점을 가늠하고 있다. 당국은 금융 불안이 다른 자산군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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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연방준비제도#가상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