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바이오 미국 생산기지 본격 가동…관세 리스크 무력화로 CDMO 판도 변화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미국 생산기지 전략이 가시적인 운영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관세와 생물보안 규제 리스크를 피해 현지에 공장을 두는 방식으로 글로벌 제약사의 위탁생산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빅파마의 특허 만료와 파이프라인 공백을 메우기 위한 인수합병과 기술 거래 수요가 겹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에는 생산 수주와 기술 수출을 동시에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미국 내 물량 확보 경쟁과 M&A 시장이 맞물리며 K바이오의 존재감을 한 단계 끌어올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달 글로벌 제약사 GSK와 체결한 미국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 인수 절차를 올해 1분기 안에 마무리할 계획이다. 미국 메릴랜드주 락빌에 위치한 휴먼지놈사이언스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을 약 2억8000만 달러에 인수해 미국 현지 첫 생산 거점을 확보했다. 이 공장은 기존 바이오의약품 생산 경험과 인력을 갖춘 상업용 생산 시설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생산 중인 제품에 대한 계약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대규모 위탁생산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회사는 중장기 수요와 가동률을 감안해 추가 설비 투자도 검토하는 중이다.

셀트리온도 미국 내 생산 거점을 본격 가동할 채비에 들어섰다. 셀트리온은 지난해 9월 일라이 릴리와 약 4600억원 규모로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소재 생산시설 인수 계약을 체결했으며, 올해부터 CMO 제품 공급과 미국 수출용 제품 생산 준비에 본격 나선다. 이 공장 인수를 통해 셀트리온은 미국 관세 리스크를 줄이는 동시에 생산 거점 다변화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고, 현지 CMO 사업 기회 확대를 노릴 수 있게 됐다. 회사는 5년에 걸쳐 6만6000리터 규모 증설을 추진해 대형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다.
셀트리온의 현지 생산 전략은 단순 생산 능력 확대를 넘어 마케팅과 영업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미국 내 생산기지가 없는 경쟁사의 경우 향후 관세 부과 시점에 약가 인상 압박과 가격 경쟁력 약화를 겪을 수 있어, 셀트리온이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자체 미국 공장에서 현지 판매 제품을 직접 생산하면 제조원가 개선을 통해 가격 전략을 보다 유연하게 짤 수 있고, 물류와 운송비 절감도 동시에 기대된다. 여기에 미국 생산거점을 활용한 위탁개발생산 전략도 병행된다. 설비와 인프라 구축은 셀트리온과 미국 자회사가 담당하며, 공장을 활용한 CDMO 영업 관리는 지난해 설립된 CDMO 전문 자회사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가 전담하는 구조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3년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큅으로부터 미국 뉴욕 시러큐스 공장을 인수해 가동하고 있다. 시러큐스 바이오 캠퍼스 내에서 2023년부터 증설해온 ADC 생산 시설은 지난해부터 본격 상업 가동을 시작했다. ADC는 항체에 세포 독성 화합물을 결합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차세대 항암제 플랫폼으로, 고난도 공정을 요구해 전문 CDMO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는 분야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기존 단백질 의약품 생산과 더불어 ADC 분야까지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면서 미국 빅파마를 대상으로 한 복합 CDMO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중국 바이오 기업과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를 제한하는 생물보안법이 공식 발효된 점도 국내 CDMO 기업에 우호적 변수로 거론된다. 중국 기업과의 생산 및 연구 협력을 제한하는 규제가 구체화되면서, 미국 제약사들은 대체 생산 파트너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직접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롯데바이오로직스 등 한국 기업이 이 공백 수요의 주요 수혜 후보군으로 지목되는 배경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공장 인수를 통해 향후 발생 가능한 관세 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 것이 수주와 마케팅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관세와 생물보안법을 동시에 피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해 글로벌 고객사와의 신뢰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한다.
신약 개발과 관련해 글로벌 기술 거래와 인수합병 역시 확대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블록버스터 의약품의 특허 만료 시점이 다가오면서 빅파마가 바이오텍의 신약 파이프라인에 더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의 지난해 기술 수출 규모는 20조원을 넘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제약업계 M&A의 건수는 지난해 3분기 기준 78건으로 전년보다 줄었지만, 대형 거래가 잇따르며 총 거래가치는 약 746억 달러로 210퍼센트 급증했다. 개별 거래당 규모가 커졌다는 의미다.
인수 프리미엄도 높아지는 추세다. 화이자와 노보 노디스크가 미국 바이오텍 멧세라 인수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사례, 룬드벡과 앨커미스가 아바델 인수를 놓고 벌인 경쟁 등은 리스크와 웃돈을 감수하면서까지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려는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전문 행사에서 빅파마의 조급함이 바이오텍 기업 가치와 인수 프리미엄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내부 연구개발 비중이 높았던 화이자, 노바티스, 로슈 등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부 파이프라인 확보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어, 중소 바이오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수출이나 전략적 파트너십 기회를 모색할 여지가 넓어지는 구조다.
다만 글로벌 금리 수준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만큼, 대형 M&A 시장이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업계에서는 2026년 전후로 대외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되고 금리 인하 기조가 자리 잡을 경우, 바이오텍 주가지수와 함께 M&A 거래량이 본격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신약 후보물질과 플랫폼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바이오텍의 기술 수출과 지분 투자, 중견 제약사의 스핀오프 및 합작법인 설립 등 다양한 형태의 거래가 활발해질 여지도 점쳐진다.
결국 K바이오의 미국 진출 전략은 생산기지 확보와 기술 거래 확대를 동시에 겨냥하는 쌍두마차 전략으로 요약된다. 미국 현지 공장을 기반으로 한 관세 회피와 생물보안 규제 대응은 CDMO 수주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고, 빅파마의 구조적 파이프라인 공백은 국내 기업에 기술 수출과 M&A 파트너로서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러한 전략이 실제 매출 성장과 기업 가치 개선으로 이어질지, 또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공급망과 규제 환경이 어떻게 재편될지에 따라 K바이오의 다음 성장 단계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