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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P1로 성인비만 장기치료”…WHO, 접근성 격차 경고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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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을 만성적이고 재발하는 질병으로 보는 인식이 국제 보건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가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 GLP1 계열 약물을 성인 비만의 장기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는 첫 공식 지침을 내놓으면서다. 당뇨병 치료에서 출발한 이 약물군이 비만 관리의 핵심 축으로 부상한 가운데, WHO는 약물 효과와 함께 공정한 접근성과 보건의료체계 준비 수준을 동시에 점검할 것을 각국에 요구했다. 업계와 보건 당국은 이번 지침을 비만 치료 패러다임이 생활습관 교정보다 약물 기반 만성질환 관리 체계로 이동하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WHO는 1일 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GLP1 요법을 비만 치료에 활용하는 내용을 담은 첫 지침을 발표했다. 지침은 GLP1 약물을 건강한 식단, 규칙적인 신체 활동, 보건의료 전문가의 지원을 포함한 포괄적 관리 전략의 일부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임산부를 제외한 성인 비만 환자에게 장기 처방이 가능하다고 조건부 권고했다. 대상은 체질량지수 BMI 30 이상 성인으로 한정됐다.

이번 지침에 포함된 약물은 세마글루타이드, 터제파타이드, 리라글루티드 등 세 가지 성분이다. 세마글루타이드는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오젬픽, 터제파타이드는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리라글루티드는 빅토자와 삭센다 등으로 시판되고 있다. 이들 약물은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 효과가 임상에서 입증돼 이미 전 세계적으로 처방량이 급증한 상태다.

 

GLP1 계열 약물은 인크레틴 호르몬의 하나인 GLP1의 작용을 모방하거나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GLP1은 음식 섭취 후 장에서 분비돼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글루카곤 분비를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약물로 이를 강화하면 혈당 상승을 억제하는 동시에 위 배출을 지연시키고 식욕 중추에 작용해 포만감을 높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기전 덕분에 기존 생활습관 교정 대비 체중 감소 폭과 대사 지표 개선 정도가 훨씬 크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특히 최근 개발된 세마글루타이드와 터제파타이드는 주당 1회 투여만으로 10에서 20퍼센트에 이르는 체중 감소를 보여 기존 비만 치료제와 차별화됐다. 일부 임상 연구에서는 지방간, 심혈관질환 위험 지표 개선 효과도 보고됐다. WHO가 이번에 GLP1을 비만 성인을 위한 첫 효과적인 약물 치료 옵션으로 명시한 배경이다.

 

다만 WHO는 권고 수준을 조건부로 제한했다. 약물의 단기 효과는 명확하지만, 수년 단위의 장기 투여 시 안전성과 효과 유지 여부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장기간 사용에 따른 위장관 이상반응, 췌장 관련 질환, 특정 암 발생 위험 등은 여전히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영역으로 분류된다. 또한 투약을 중단했을 때 체중이 다시 증가하는 경향이 보고돼 평생 관리 개념의 치료 전략 수립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지침은 약물 단독 처방이 아닌 행동 중재와의 결합을 강조한다. WHO는 GLP1 요법을 받는 성인 비만 환자에게 건강한 식단 재교육, 신체 활동 계획, 심리적 지원을 포함한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병행 제공할 것을 권고했다. 약물이 식욕과 대사 조절을 돕더라도 생활습관이 개선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체중 유지와 합병증 예방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번 지침이 비만을 평생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GLP1 의약품이 수백만 명의 환자가 질환 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약물만으로 비만 문제 전체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비만을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닌 사회적·구조적 요인과 연결된 공중보건 과제로 재규정한 셈이다.

 

동시에 WHO는 GLP1 접근성에 대한 형평성 문제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현재 GLP1 약물은 고가 약가와 제한된 생산량 탓에 주로 고소득 국가와 사보험 가입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별도의 정책介입 없이 시장에 맡겨둘 경우 기존 건강 불평등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다. WHO는 생산 확대뿐 아니라 약가 부담 완화, 공적 급여체계 편입, 1차 의료기관의 처방·관리 역량 강화 등을 병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WHO는 공동구매, 국가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 가격 책정, 특허권자의 자발적 라이선스 제공 등 메커니즘을 국제사회가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런 장치는 백신과 항레트로바이러스제 등 다른 필수 의약품 접근성 확대에 활용된 선례가 있다. 그럼에도 WHO는 현재와 같은 생산·공급 구조가 유지될 경우 2030년까지 GLP1 요법에 실질적으로 접근 가능한 비만 환자가 전체 잠재 수혜자의 10퍼센트에 못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전 세계적인 수요 급증은 또 다른 위험도 키우고 있다. 부족한 합법 공급량을 틈타 위조 약물과 기준 미달 제품이 급속히 확산되는 것이다. WHO는 GLP1 관련 위조 제품이 환자 안전을 직접적으로 위협할 뿐 아니라 의료 시스템 전반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효성분 함량이 불충분하거나 불순물이 혼입된 제품이 유통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과 치료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WHO는 품질을 보장하기 위해 자격을 갖춘 의료인의 처방과 규제된 유통 채널만을 통한 공급, 국가 규제당국의 강력한 감독, 환자 대상 교육을 필수 조건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국가 간 정보 공유와 공조 수사를 포함한 국제 협력이 위조 의약품 차단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WHO 지침이 각국의 비만 관리 정책과 보험 급여 기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GLP1을 비만 치료의 표준 옵션으로 편입할지, 어느 수준까지 공적 재정을 투입할지에 따라 보건재정과 제약 시장 구조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고가 약물을 둘러싼 제약사의 가격 전략과 특허 보호 정책에 대한 재검토 요구도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비만을 만성질환으로 정의하고 약물 치료를 제도권 관리에 편입시키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려운 변화로 보인다. 다만 WHO가 지적하듯 공중보건 전략과 가격·공급 체계, 품질 관리와 규제 감독이 함께 정비되지 않으면 기술 발전이 오히려 새로운 불평등과 안전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산업계와 각국 정부는 GLP1 기술의 잠재력이 실제 환자에게 고르게 전달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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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glp1#비만治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