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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불 백신 수출탑"...유바이오로직스, PQ 콜레라로 글로벌 입지 강화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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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용 콜레라 백신 기술이 글로벌 공중보건 시장 판도를 바꾸고 있다. 국내 백신 전문기업 유바이오로직스가 WHO 사전적격성 인증을 획득한 콜레라 백신을 앞세워 국제조달 시장에서 연간 1억 달러 이상 수출을 달성했다. 생산 능력 확충과 파이프라인 다각화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백신을 수입하던 한국이 국제 공급 허브로 이동하는 흐름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수상을 백신 수출 산업화 경쟁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유바이오로직스는 4일 열린 제62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1억 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가 한 해 동안 우수한 수출 실적을 낸 기업에 수여하는 국가 포상으로, 이 회사는 2023년 7월부터 2024년 6월까지 수출액 1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약 38퍼센트 확대된 실적이다.  

수출 성장은 WHO 사전적격성 인증을 획득한 경구용 콜레라 백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WHO 사전적격성은 백신 품질과 생산 공정, 공급 체계가 국제기구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수준인지 검증하는 선행 심사 제도로, 해당 인증을 받아야 유니세프와 가비 등 국제기구 조달 시장에 본격 진입할 수 있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이 요건을 충족한 제품으로 국제 공급망에 편입된 셈이다.  

 

유바이오로직스는 경구용 콜레라 백신의 개발, 생산, 수출 전 과정을 자체 역량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항원 설계와 배양, 정제, 완제 충전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공정을 사내에서 소화해 품질 관리와 생산 유연성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WHO PQ 기준을 충족하는 품질 관리 체계를 구축해, 장기 공급 계약이 중요한 국제 조달 시장에서 안정성을 입증했다.  

 

기술적으로는 항원 생산 공정을 단순화한 경구용 콜레라 백신 유비콜-에스를 중심에 두고 생산 효율을 높였다. 항원 생산 단계를 줄이는 방식으로 공정을 슬림화해 단위 시간당 생산량을 확대한 구조다. 동일 설비 기준 생산량을 늘리면서도 품질 기준을 유지해, 대량 공급이 필수인 저소득·중저소득국 대상 공중보건 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생산 인프라 측면에서는 춘천 2공장 준공으로 연간 약 9000만 도즈 규모 생산 체제를 마련했다. 도즈는 1회 접종 분량을 뜻하는 단위로, 대규모 예방접종 캠페인에서는 수천만 도즈 단위의 물량 공급이 요구된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증설을 통해 국제기구의 대량 주문과 긴급 수요 증가까지 대응 가능한 구조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수요 측면에서 콜레라 백신의 국제 조달 시장은 최근 몇 년간 빠르게 확대됐다. 기후 변화와 도시 슬럼 확산으로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콜레라 유행이 반복되면서, WHO와 가비가 비축 물량과 긴급 접종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이러한 시장 환경에서 안정적인 공급 능력을 바탕으로 국제 조달 사업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이번 수출 실적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콜레라 위기 속에서 이 회사의 공급 역할이 부각된 결과로 풀이된다. 국제기구가 조달하는 백신은 단가뿐 아니라 장기간 안정 공급 능력, 품질 관리, 운송 및 콜드체인 대응 능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된다. 유바이오로직스가 PQ 인증을 기반으로 이들 조건을 충족한 것이 1억 달러 수출 달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글로벌 백신 시장에서는 이미 국제 조달을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이다. 다국적 제약사와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제조사들이 WHO PQ 인증을 획득하며 조달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기업이 경구용 콜레라 백신 분야에서 유의미한 수출 규모를 일군 것은, 국내 백신 산업이 개발도상국 대상 공공 조달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유바이오로직스는 콜레라 백신에 머무르지 않고 파이프라인을 다변화해 중장기 성장 동력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장티푸스 접합백신 유티프씨주와 수막구균 5가 접합백신 유메닌5를 순차적으로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장티푸스와 수막구균은 개발도상국과 일부 선진국에서도 지속적인 백신 수요가 존재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이들 백신이 상용화되면 국제 조달과 상업 시장 모두에서 추가 성장 여지가 생길 수 있다.  

 

차세대 백신 후보에서도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 백신, 대상포진 백신 유에이치지브이, 알츠하이머 백신 등으로 연구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RSV 백신은 고령층과 영유아에서 중증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글로벌 제약사 간 경쟁이 본격화된 분야이고, 알츠하이머 백신은 아직 상용화 사례가 제한적인 고위험 고난도 영역이다. 유바이오로직스는 감염성 질환 중심에서 점차 만성질환과 노인성 질환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규제와 제도 환경도 관건이다. WHO PQ 인증과 각 국가별 허가 절차, 국제기구 입찰 규정 등이 상업화 속도에 직접 영향을 준다. 특히 저소득국 대상 공급은 가격 규제와 재정 지원 프로그램과 맞물리기 때문에, 백신 개발 기업은 비용 효율적인 생산 구조와 장기 공급 계약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공공 조달의 특성상 정치·외교 환경 변화도 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유바이오로직스의 1억 불 수출 탑 수상을 계기로, 국내 백신 기업들의 국제 조달 시장 진출 전략이 더욱 다양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특정 감염병의 단일 품목 수출에 머물기보다, 생산 역량과 품질 시스템을 공통 인프라로 두고 여러 백신을 묶어 포트폴리오 단위로 수출 경쟁력을 키우려는 시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백신 산업 관계자들은 향후 춘천 2공장의 가동률과 신규 백신 상용화 속도가 유바이오로직스 성장 궤적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기구 조달뿐 아니라 개별 국가와 민간 시장으로 판로를 다변화할 수 있을지, 기술력과 공급 안정성을 어떻게 입증할지가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산업계는 이번 수상이 국내 백신 기술이 실제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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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이오로직스#유비콜-에스#who사전적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