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도 하나의 국가" 64% 동의…정동영 "두 국가 관계 지지는 통일 포기론 아니다"
남북관계 인식 지형을 둘러싼 갈등과 통일부가 맞붙었다. 통일보다 평화 공존을 중시하는 여론이 수치로 확인되면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두 국가 관계 발언을 둘러싼 정치권 논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통일부는 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천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79.4퍼센트는 "남북한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통일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매우 동의 37.1퍼센트, 어느 정도 동의 42.2퍼센트로, 통일보다 현실적인 평화 공존을 우선하는 인식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남북이 사실상의 두 국가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해야 한다는 이른바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관계 구상에 대해서도 찬성이 높았다. 해당 구상에 대해 매우 찬성한다 22.5퍼센트, 대체로 찬성한다 47.3퍼센트로, 전체 69.9퍼센트가 찬성 입장을 밝혔다. 남북 관계의 법적 통일보다 제도화된 공존 질서를 지지하는 응답이 우세한 셈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흐름을 인용하며 여론이 두 국가 관계 구상에 힘을 싣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압도적 국민 다수가 평화 공존의 두 국가 관계를 지지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한 뒤, "평화적이라는 표현은 빼고 통일 포기론이다, 두 국가가 웬 말이냐고 왜곡하는 건 너무 정치적인 곡해"라고 지적했다. 두 국가 관계 논의를 둘러싼 정치권의 공세에 대해 여론 수치를 근거로 반박한 셈이다.
북한의 국가성 인식과 관련해서도 태도 변화가 확인됐다. "북한도 하나의 국가"라는 의견에 대해 응답자의 64.6퍼센트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매우 동의 22.7퍼센트, 어느 정도 동의 41.8퍼센트로, 북한을 독자적인 정치 실체로 인정하는 시각이 과반을 크게 웃돌았다.
그럼에도 북한을 바라보는 기본 인식은 복합적 양상을 보였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로는 협력 대상이라는 응답이 42.6퍼센트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계 대상 23.8퍼센트, 적대 대상 22.6퍼센트, 지원 대상 8.4퍼센트 순으로 나타났다. 협력 여지를 인정하면서도 안보 위협과 적대 인식을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남북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62퍼센트가 통일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매우 필요 32.0퍼센트, 약간 필요 30.0퍼센트로, 평화 공존을 우선시하는 인식과 별개로 통일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은 다수 의견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화 공존을 거치면서 장기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이중적 인식이 드러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대한 인지도와 평가도 조사됐다. 응답자 10명 중 8명은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알고 있다고 답해 높은 인지도를 보였다. 또 77.8퍼센트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남북 공존 자체에 대한 지지는 높지만, 상대를 적대 시하는 북한의 논리는 명확히 선을 긋는 모습이다.
이날 통일부 여론조사는 한국갤럽이 통일부 의뢰로 이달 2일부터 8일까지 진행했다.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천5명을 대상으로 전화 인터뷰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95퍼센트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3.1퍼센트포인트다.
정치권에서는 정동영 장관의 두 국가 관계 발언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에서 확인된 평화 공존 선호와 통일 필요성 인식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가 확인된 만큼, 향후 국회 논의와 정당별 남북 정책 경쟁도 보다 구체적인 로드맵과 현실적 방안을 둘러싼 방향으로 전환될지 주목된다. 정부는 향후 조사 결과를 토대로 남북관계 전략과 대국민 설명을 정교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