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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컬처 팬덤 집결한 AGF 2025…게임 IP 산업, 코스프레로 확장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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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애니메이션 IP가 결합한 서브컬처 페스티벌 AGF 2025가 코어 팬덤 중심의 체험형 플랫폼으로 자리 잡으며 게임 산업 내 마케팅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고 있다. 지스타가 신작 라인업과 서비스 계획을 공개하는 비즈니스·홍보 무대라면, AGF는 이미 형성된 팬덤을 대상으로 IP 소비를 확장하는 얼리어답터 장으로 기능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행사를 서브컬처 팬층을 겨냥한 IP 유통과 2차 창작 생태계 경쟁의 분기점으로 해석하는 시선도 나온다.

 

국내 최대 애니메이션·게임 페스티벌로 성장한 AGF 2025는 5일부터 7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전시장에서 열렸다. 6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는 기간을 3일로 늘리고 71개사가 1075개 부스를 열어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규모 자체가 커진 만큼 현장에서는 팬 참여형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워 기업과 사용자 간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게임 속 캐릭터를 현실로 구현한 코스어들이 관람객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블루아카이브의 키사키로 분장한 코스어는 푸른 헤어스타일과 하얀 의상 조합으로 원작의 분위기를 살렸고, 사진 요청에 능숙하게 응하며 캐릭터의 표정과 제스처까지 세밀하게 재현했다. 코스어들은 자신을 살아있는 팬아트라고 부르며 2차원 캐릭터를 3차원 공간으로 불러내는 역할을 자임했다.

 

지스타와 비교되는 행사 성격도 뚜렷하다. 닉네임 아사네로 활동하는 코스어는 두 행사를 모두 경험한 뒤 AGF가 코스어 활동에 더 적합하다고 평가했다. 미호요의 원신 캐릭터 플린스로 분장한 쁘약 역시 지스타는 게임사가 신작 출품과 홍보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AGF는 팬들이 직접 콘텐츠를 소비하고 재창조하며 행사의 주체로 서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팬덤 기반 참여도가 높을수록 장기적인 IP 가치가 커진다는 점에서, 게임사 입장에서는 마케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셈이다.

 

현장에서 확인된 코스프레 IP 스펙트럼은 현재 서브컬처 게임 시장 구성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시프트업의 승리의여신니케에서 미하라로 분장한 코스어는 흰색과 검은색 의상에 대형 소총 소품을 더해 게임 내 캐릭터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 놓았고, 하이퍼그리프의 명일방주에서 젠리로 참여한 코스어는 정장 스타일 의상과 귀 모양, 특수 소품을 통해 의료·전술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같은 게임의 텍사스로 분장한 코스어는 붉은 셔츠와 검은 재킷, 독특한 귀 모양과 헤어스타일로 캐릭터의 상징 요소를 강조했다. 나란히 선 원신 속 최고 심판관 느비예트 코스어는 단정한 정장풍 의상과 디테일을 살린 소품으로 원작의 이미지를 재해석했다. 이처럼 복수의 IP가 한 공간에 모이면서 각 게임사의 캐릭터 설계 방향과 팬덤 규모, 이용자층 특성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비교되는 효과도 발생했다.

 

코스프레는 단순한 복장 놀이를 넘어 팬덤 문화의 총체로 기능했다. 넷마블의 페이트 그랜드 오더 부스에서는 코스프레 페스티벌이 열려 약 80명의 관람객이 객석을 채운 가운데 무대에 오른 코스어들을 카메라와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고 의상을 잘 구현했다는 평가가 현장에서 수시로 오갔다. 대기 공간에서는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코스어들이 서로의 의상 주름, 소품 위치, 헤어스타일을 점검하며 디테일을 맞추는 장면이 연출됐다.

 

코스어 전용 촬영 구역은 사실상 또 하나의 메인 무대였다. 배경판 앞에는 팬들이 긴 줄을 섰고, 코스어들은 자신이 구현한 캐릭터의 대표 포즈와 표정을 연달아 선보였다. 한 관람객은 게임 속에서만 보던 캐릭터를 실제 인물로 마주한 경험을 신기하다고 말하며 코스어들의 준비 과정과 몰입도를 높이 평가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게임 IP를 단순 플레이를 넘어 현실과 연결된 문화 자산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음악과 공연 요소도 팬덤 결집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DJ Kazu 무대에서는 약 150명의 관람객이 펜스 안에서 야광봉을 흔들며 J POP 리듬에 맞춰 함께 점프와 율동을 선보였다. 구호를 맞춰 외치는 응원 문화는 일본 아이돌·애니메이션 현장 응원 형식을 수용한 것으로, 게임과 애니메이션, 음악 IP가 융합된 서브컬처 생태계 특징을 드러낸다. 승리의여신니케 부스에서 진행된 서브컬처 밴드 덕후찌개의 미니 콘서트에서는 게임 OST가 흘러나오자 관람객들이 떼창으로 화답하며 앵콜 요청을 이어갔다.

 

이 같은 현장은 게임 IP 비즈니스가 단순 매출 중심에서 IP 라이프사이클 전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출시 전 단계에서 기대감을 조성하던 기존 게임쇼 중심 전략에서, 출시 이후 팬덤이 자발적으로 만든 2차 콘텐츠와 공연, 코스프레, 음악 활동까지 포괄해 장기 운영 수명을 늘리는 전략으로 재편되는 흐름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게임 안팎에서 동일 IP를 여러 방식으로 소비할 수 있어 체류 시간이 늘고, 기업 입장에서는 충성 고객을 중심으로 한 수익 다각화 모델을 설계하기 수월해진다.

 

AGF 2025의 스폰서 구성도 이 같은 전략 변화를 뒷받침한다. 메인 스폰서 스마일게이트를 비롯해 넥슨, 넷마블, NHN, 네오위즈 등 국내 주요 게임사가 대거 참여했고, 원신을 보유한 미호요와 명일방주를 서비스하는 하이퍼그리프 등 해외 기업도 합류했다. 엔씨소프트는 올해 처음으로 참가해 신작 리밋 제로 브레이커스 부스를 선보이며 서브컬처 팬덤과의 접점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각 사는 부스에서 시연과 현장 이벤트뿐 아니라 굿즈, 한정판 아이템, 캐릭터 포토존 등 복합적 체험 요소를 배치해 팬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유도했다.

 

행사를 주최한 애니플러스와 대원미디어 측은 AGF를 애니메이션, 게임, 웹툰을 아우르는 종합 팬덤 콘텐츠 페스티벌로 규정했다. 두 회사 관계자는 코어 팬덤 기반 IP를 중심에 두고 다른 게임쇼와는 다른 고유 정체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하며, 향후에도 행사 운영 방식을 발전시켜 팬들과의 접점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기적인 관람객 수나 매출 지표보다 장기적인 IP 자산과 팬덤 관리 역량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전략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게임 IP를 중심으로 한 복합 엔터테인먼트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게임에서 출발한 캐릭터가 애니메이션, 소설, 실사 영상, 공연으로 확장돼 하나의 프랜차이즈를 형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AGF와 같은 서브컬처 특화 행사는 게임사가 단순 퍼블리셔를 넘어 IP 운영 사업자로서의 역량을 키우는 실험 무대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용자가 체감하는 재미와 몰입도가 높아지는 만큼, 저작권 정책과 2차 창작 허용 범위, 팬 커뮤니티 관리 방식이 장기 성장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본다. 기업은 팬덤의 자발적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할 경우 IP 확산 속도가 떨어질 수 있고, 반대로 규칙 없이 방치할 경우 상업적 이용과 콘텐츠 품질 저하로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팬 참여형 페스티벌에서는 이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AGF 2025가 보여준 현장은 게임사가 기술 경쟁을 넘어 문화 산업 전반과 결합해 IP를 운영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조정해야 함을 시사한다. 서브컬처 팬덤을 중심으로 한 코스프레와 공연, 2차 창작 생태계가 어느 수준까지 제도와 비즈니스 모델 속으로 편입될지가 향후 업계 경쟁 구도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다. 산업계는 AGF가 보여준 팬덤 중심 구조가 실제 수익과 글로벌 확장으로 이어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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