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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강경진압 책임자 유공자 등록 논란” 권오을, 긴급 제주행…보훈부 “제도상 취소 불가”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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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강경진압 책임 공방과 국가보훈 제도의 한계가 맞부딪쳤다. 제주 4·3사건 당시 강경 진압 작전을 지휘한 고 박진경 대령이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사회가 강하게 반발했고, 국가보훈부가 뒤늦게 사과와 해명에 나섰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은 11일 오후 긴급 일정으로 제주를 찾아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한 뒤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무실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권 장관의 제주행은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등록 논란에 대한 후속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

보훈부 관계자는 권 장관의 제주 일정과 관련해 “권 장관과 오영훈 제주특별자치도지사와의 면담을 조율 중이나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권 장관이 4·3 관련 단체를 직접 찾아 유족과 도민 여론을 청취하겠다는 뜻을 밝힌 만큼, 현장에서의 사과와 제도 개선 언급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 10월 서울보훈지청이 박진경 대령 유족이 제출한 국가유공자 등록 신청을 무공수훈을 근거로 승인한 데 있다. 이어 지난달 4일에는 이재명 대통령과 권오을 장관의 직인이 찍힌 국가유공자증이 유족에게 전달됐다. 해당 사실이 전날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제주 지역사회와 4·3단체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당시 제주에 주둔한 국방경비대 9연대장으로 부임해 강경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이다. 4·3 관련 단체와 연구자들은 박 대령이 도민에 대한 무력 진압을 주도해 양민 학살에 책임이 있다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는 부임 한 달여 뒤인 1948년 6월 18일 대령 진급 축하연을 마친 뒤 숙소에서 잠을 자던 중 부하에게 암살당했으며, 1950년 12월 을지무공훈장이 추서됐다.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소식이 알려지자 즉각 성명을 내고 “수많은 희생자의 억울한 죽음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위원회는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를 강하게 촉구하면서, 정부가 4·3 진상 규명과 피해 회복 노력과는 정반대되는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급속히 확산되자 국가보훈부는 입장문을 통해 유감을 표했다. 보훈부는 “제주 4·3과 관련한 논란이 있는 사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해 희생자와 유가족 그리고 제주도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히며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심사 과정에서 4·3 관련 논란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다는 점만을 인정했을 뿐, 결정 자체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보훈부는 국민 여론과는 달리 현행 제도상 취소는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훈부 관계자는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는 현행법상 가능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무공훈장과 같은 훈장이 유지되는 한, 이를 전제로 한 국가유공자 등록 역시 법적으로 취소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 관계자는 “권 장관은 4·3희생자유족회 등에 신중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논점은 박진경 대령의 과거 공적을 인정해 부여된 무공훈장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4·3 희생에 대한 국가 책임 인식과 충돌하는 보훈 시스템을 어떻게 손볼 것인가로 모이고 있다. 무공훈장 서훈 자체를 재검토하지 않는 한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는 불가능하다는 보훈부의 해석은 향후 국회와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 논의를 자극할 전망이다.

 

제주 지역사회에서는 국가보훈부의 사과와 별개로 박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위 유지 여부를 놓고 법 개정이나 재심 절차 착수 요구가 더 거세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치권 역시 4·3 특별법 개정 논의와 맞물려 보훈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 필요성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권오을 장관의 제주 방문을 계기로 정부와 4·3 관련 단체 간 대화가 이어질지, 그리고 국회가 국가유공자 심사·취소 요건을 둘러싼 제도 개선에 착수할지 주목된다. 정치권은 4·3 강경진압 책임자 논란과 국가유공자 제도 문제를 놓고 한동안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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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을#박진경#제주4·3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