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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규제 ‘차별 금지’ 명문화”…한미 합의로 미국 기업 부담 완화, 국내 기업 역차별 우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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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디지털 서비스 규제와 데이터 이동을 둘러싼 갈등이 대통령실의 공식 발표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14일 대통령실은 ‘조인트 팩트시트’에서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해 미국 기업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디지털 무역 자유화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양국 정부의 합의가 발표되면서 국내외 ICT 업계의 이해관계가 다시 충돌 양상을 보였다.

 

조인트 팩트시트에 따르면 “망 사용료, 온라인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 있어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규정이 명확히 담겼다. 이어 미국과 한국은 “위치·재보험·개인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과 “세계무역기구(WTO) 내 전자적 전송물 관세 모라토리엄의 영구화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한국의 망 사용료와 온라인 플랫폼법 등 규제 환경을 지속적으로 지켜봐왔고, 이번 내용은 자국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망 사용료는 콘텐츠 제공 사업자(CP)가 발생시키는 트래픽에 대해 인터넷 서비스 공급자(ISP)에 지급하는 비용을 말한다. 구글, 넷플릭스 등 미국계 빅테크는 과도한 비용 부담을 비판해 온 반면, 국내 여론은 이들 글로벌 사업자의 ‘무임승차’ 문제를 지적해왔다. 전문가들은 한미 합의문이 ‘차별 금지’ 요구를 명시함으로써 유럽연합 등 타 경제권과 비교했을 때 미국 기업에 비교적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편 온라인 플랫폼법의 경우, 대형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 수수료 및 계약 투명성 강화 등이 골자다. 미국은 자국 ICT 대기업의 규제 가능성에 대해 꾸준히 우려를 공식 표명해왔으며, 한미 합의 이후 관련 법안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데이터 이동 부문 역시 쟁점이다. 실제로 구글은 2007년 이후 수차례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이전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안보적 우려를 이유로 거부하거나 조건부 검토로 선회해왔다. 이번 합의가 비군사·상업용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전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나, 군사·안보 민감 데이터는 국내법 우선 적용이 유지될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한미 합의가 국내 기업에 미치는 파장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 ICT 분야 교수는 “문구만 보면 미국 측에 유리하지만, 실무적으로 큰 특혜는 없을 것”이라며 “양국의 실질적 협상은 상호 양보 구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또 다른 전문위원은 “국내 기업에 불리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지만,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 집행력이 국내 기업에 비해 약한 현실”을 언급하며 역차별 방지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 정치권과 업계에서는 정부가 이번 합의 이후 규제 집행 과정에서 국내외 기업 간 형평성을 어떻게 구현할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한미 간 디지털 무역 질서를 최대한 준수하는 동시에, 국내 기업이 불필요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련 법령 및 규제 집행 방안을 다각도로 점검할 방침이다.

강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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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한미디지털합의#망사용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