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는 자녀 권리”…성인 자녀도 청구 가능해 가족법 쟁점 부각
양육비를 장기간 지급하지 않은 부모에게 성인이 된 자녀가 직접 과거 양육비를 청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최근 한 상담 사연을 통해, 어린 시절 외도로 집을 떠난 뒤 15년 넘게 연락을 끊은 아버지에게 이제 막 성인이 된 자녀가 법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가 구체적으로 제기됐다. 가족 구조 변화와 이혼 증가로 양육비 분쟁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양육비의 법적 성격과 소멸시효, 성년 이후 부양 의무에 대한 해석이 향후 유사 분쟁의 기준점이 될 전망이다.
문제의 사연은 20대 초 대학생 A씨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가 이혼한 뒤, 7살 무렵 아버지가 집을 떠나면서 가족과 완전히 연락이 끊긴 상황에서 출발한다. A씨와 어머니는 그 이후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차례의 양육비나 학비 지원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계는 전적으로 어머니가 책임졌고, 낮에는 식당 일을,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자녀를 키워온 구조가 지속됐다.

A씨는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대를 접고 살아왔지만, 대학 진학 후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현실적인 경제 압박을 체감하게 됐다. 어머니의 어깨만 더 무거워지는 상황에서 과거 양육 책임을 회피한 아버지가 과연 아무런 법적 부담 없이 살아도 되는지, 어머니가 대신 감당해 온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도 법적으로 청구할 수 있는지 고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이에 A씨는 성인이 된 지금이라도 과거에 받지 못한 양육비를 아버지에게 청구할 수 있는지 법률 상담을 요청했다.
법무법인 신세계로의 박선아 변호사는 양육비의 법적 성격을 우선 짚었다. 박 변호사는 양육비는 부모 간의 채무가 아니라 자녀가 가지는 고유한 권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양육비를 받을 권리는 자녀에게 귀속되며, 과거에 부모가 합의로 양육비를 정했거나 지급 약정을 했더라도 실제 채권의 실질적인 귀속 주체는 자녀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과거 지급되지 않은 양육비에 대해서는 성년에 도달한 이후 자녀가 직접 채권자로서 청구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소멸시효는 청구 가능 기간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박 변호사는 과거 양육비 채권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성년에 도달해 법적인 양육 의무가 종료되는 시점부터 10년으로 기산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법에서 통상 성년은 만 19세로 보며, 양육 의무는 자녀가 성년에 도달할 때 종료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그 시점부터 10년 동안 과거 양육비 청구권이 유효하게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 일반적인 경우 자녀는 만 29세가 되기 전까지는 미지급 양육비 전액에 대해 법원에 청구를 제기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같은 해석에 따르면 A씨와 같이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양육비를 받지 못한 사례에서도, 자녀가 성인으로서 법적 판단을 직접 구해볼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다만 실제 소송에서는 과거 양육비 약정이나 이혼 당시 판결문, 조정조서 등에서 정한 금액과 기간, 상대방의 지급 태만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따지게 된다. 명시적인 양육비 약정이 없는 경우에도, 자녀 양육에 통상 소요되는 비용과 부모의 경제력, 양육 공백 기간 등을 토대로 법원이 양육비 수준을 산정할 수 있다.
집행 수단도 구체적이다. 박 변호사는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으면 이를 근거로 강제집행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방이 근로소득이 있는 직장인이라면 급여 채권을 압류해 일정 부분을 직접 지급받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예금 계좌를 압류하거나 부동산·차량 등 재산에 강제경매를 신청하는 절차도 가능하다. 다만 이런 집행은 상대방에게 실제 추심 가능한 재산이 존재해야 실질적인 회수가 이뤄진다.
성년 이후의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문제는 양육비와는 법적 근거가 다르다. 원칙적으로 양육비 지급 의무는 자녀가 성년에 이르면 종료되므로, 대학 재학 기간에 들어가는 비용은 통상의 의미의 양육비 범주를 벗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변호사는 경제적 자립이 어려운 성년 자녀에 대해서 부모의 부양 의무를 인정한 판례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부양 의무는 민법상 직계혈족 사이에 발생하는 생활 유지 책임으로, 소득이 부족한 성년 자녀가 학업 중이고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일정 수준의 등록금과 생활비 분담을 부모에게 청구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실무에서 법원은 성년 자녀의 부양 청구에 대해 부모의 소득과 재산, 자녀의 학업 상황, 아르바이트 가능 여부, 다른 가족 부양 부담 등을 입체적으로 고려해 인정 범위를 정해왔다. 대학 등록금 전액을 일률적으로 인정하기보다, 교육의 필요성과 부모의 경제력, 기존 부양 행태 등에 따라 일부만 책임을 부과하는 판결도 적지 않다. 따라서 A씨 사례처럼 아버지가 장기간 사실상 양육을 회피한 경우라면, 그간의 태도와 경제 상태가 부양 청구의 인정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족법 전문가들은 양육비와 부양 의무 논의가 개인 갈등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흐름에 주목한다. 이혼 증가와 비양육 부모의 양육비 미지급이 반복되면서, 국가 차원에서는 양육비 이행 관리원 설치, 운전면허 제한, 출국금지 등 강제 수단을 도입해 왔다. 그럼에도 실제 미지급 비율이 여전히 높고, 경제력이 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아, 양육비를 자녀의 권리로 명확히 인식시키고 소멸시효 내 적극적인 청구를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특히 성년 자녀가 직접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이 향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양육비 분쟁이 이혼 당사자인 부모 사이의 문제로만 인식된 측면이 강했다. 이제는 성년 자녀가 스스로 법적 지위를 자각하고 소송을 통해 권리 구조를 재정립하는 흐름이 강화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양육비와 부양 의무를 둘러싼 법적 기준이 구체화될수록, 부모의 경제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한층 선명해질 것이라고 본다.
가족법 제도는 자녀 보호를 전제로 설계돼 왔지만, 현실에서는 이혼 절차 이후 양육 책임 분담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사례가 누적되고 있다. 법원 판결과 강제집행, 행정 제재가 결합된 현행 틀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음에도, 피해를 입은 자녀 입장에서는 시간과 비용, 정서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산업계에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통해 복잡한 문제를 정밀하게 다루듯, 가족법 영역에서도 정교한 제도 설계와 집행이 요구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양육비와 부양 의무를 둘러싼 논쟁은 개인 간 분쟁을 넘어, 국가와 사회가 자녀의 기본 생활과 교육 기회를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소멸시효 내 청구권 보장뿐 아니라, 정보 제공과 공공 지원을 강화해 취약 가정의 권리 행사를 돕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술과 법 제도, 개인의 삶이 뒤섞인 이 문제에서, 책임과 권리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향후 사회 신뢰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논의가 가족법과 사회 안전망, 그리고 데이터 기반 복지정책 설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