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동맹 잇는 이재명 대통령 손정의와 회동…초거대 인프라 협력 분수령
인공지능이 국가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면서 한일 빅테크 연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을 직접 만나 AI와 반도체 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다. 미국 중심으로 전개되던 초거대 AI 인프라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전략적 거점 역할을 강화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로 떠오른다. 업계에서는 이번 회동이 향후 AI 반도체 공급망과 데이터센터 투자 지형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손정의 회장을 접견하고 인공지능과 반도체, 디지털 인프라 투자 협력 방향을 폭넓게 논의한다. 강훈식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배경훈 과학기술부총리, 김정관 산업부 장관 등 핵심 경제·과학 라인이 배석해 사실상 범정부 차원의 전략 대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단순 의례 방문이 아니라 구체적 투자와 기술 협력 옵션을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구성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한국을 AI 3대 강국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제시해 왔다. 이번 회동에서도 해당 전략을 손 회장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국내 AI 인프라 구축 사업에 대한 소프트뱅크 측의 참여와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학습에 필수적인 고성능 연산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급, 반도체 공급망 협력을 패키지로 논의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소프트뱅크가 주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는 이런 논의를 구체화할 대표 사례로 꼽힌다. 스타게이트는 소프트뱅크가 오라클, 오픈AI 등과 함께 추진 중인 초대형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구상으로,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거점에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단계적으로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대규모 GPU 서버와 고속 네트워크, 저지연 스토리지를 통합한 일종의 글로벌 AI 전력망에 해당한다. 손 회장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AI 시대의 새로운 사회 인프라를 선점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왔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최근 UAE에서 열린 스타게이트 연계 논의에서 존재감을 키웠다. 이재명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 국빈 방문을 계기로 국내 기업이 세계 최대 규모로 평가되는 UAE 스타게이트 AI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메가와트 단위 전력과 냉각, 반도체 수급이 동시에 해결돼야 하는 초대형 설비인 만큼, 한국의 전력 인프라 기술과 반도체 생산 및 패키징 역량이 통합적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다. 이번 손 회장과의 회동에서는 UAE 프로젝트 참여 범위 확대와 추가 협력 모델이 오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술적으로 스타게이트급 초대형 데이터센터는 GPU 중심의 AI 가속기와 이를 연결하는 초고속 네트워크가 관건이다. 기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가 범용 CPU 기반으로 설계된 것과 달리, 초거대 언어모델과 생성형 AI를 위한 인프라는 GPU와 AI 전용 가속기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다. 수만 개에서 수십만 개에 이르는 GPU를 저지연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설계와, 365일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는 전력 인프라가 핵심 차별점으로 꼽힌다. 냉각 효율을 높이기 위한 수랭 기술 채택 여부도 경쟁력 요소다.
소프트뱅크는 데이터센터 건설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 관련 기업 인수와 자체 전력 공급 체제를 병행해 AI 인프라의 수직 통합을 노리고 있다. 반도체 설계와 패키징, 클라우드 인프라 운영을 한 축에서 조율하면 AI 서비스 사업자 입장에서는 비용과 성능을 동시에 최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전력 설비, 건설 기술 등 강점을 패키지로 제안해 글로벌 공급망에서 역할을 키울 여지가 있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 이후 글로벌 AI 리더들과의 연쇄 접촉으로 AI 동맹 외교를 가속해 왔다. 앞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 젠슨 황 엔비디아 CEO를 잇달아 접견했다. 특히 엔비디아와는 전 세계적인 품귀 현상이 이어지는 GPU 26만 장을 한국에 공급받는 약속을 이끌어 내며, 국내 데이터센터와 AI 연구 인프라 확충의 기반을 마련했다. 손정의 회장과의 회동은 이 연쇄 행보의 연장선에서, 금융·AI 플랫폼·반도체를 아우르는 입체적 협력 네트워크를 짜는 과정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초거대 AI 인프라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아마존이 수십조 원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발표했고, 유럽과 중동에서도 자국 주도의 AI 허브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 역시 자국 내 AI 인프라 확충을 위해 엔비디아 등과 협력하고 있어, 한국이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을 경우 동북아 AI 인프라 축이 재편될 수 있다는 관측도 언급된다. 특히 전력과 토지 제약이 상대적으로 덜한 중동과의 연계까지 감안하면, 한국이 동북아 개발 허브와 중동 운용 허브를 잇는 중간 제어 타워를 맡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다만 초대형 AI 인프라 투자에는 규제와 제도 문제가 동시에 따른다.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에 따른 탄소 배출, 개인정보와 국가 핵심 데이터의 국외 이전, AI 모델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권 분쟁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한국 정부는 디지털 인프라 확대와 동시에 전력정책, 데이터 국경, AI 윤리 가이드라인 등을 손질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소프트뱅크와의 협력이 현실화되면 데이터센터 입지 선정과 전력 요금 체계, 각종 인허가 과정에 대한 제도 정비가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동이 단기 투자 발표 여부를 떠나 한국의 AI 인프라 전략 방향을 가늠할 잣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IT 정책 연구자는 초거대 AI 경쟁에서 연산 인프라를 얼마나 빠르게 확보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며 다만 설비 투자와 함께 전력, 규제, 인력 양성까지 패키지로 설계하지 않으면 실질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산업계는 이재명 정부의 AI 동맹 구상이 손정의 회장과의 회동을 계기로 실제 사업과 투자로 연결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