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조원 수의계약, 투명성 강화 필요”…권익위, 공공기관에 퇴직자와의 계약 전면 금지 권고
공공기관 수의계약 관행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대규모 계약 규모를 근거로 제도 개선을 요구하면서, 예산 집행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놓고 정치권과 공공부문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9일 331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수의계약 제도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안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4년까지 공공기관이 체결한 수의계약은 69만 건, 금액으로는 73조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권익위는 수의계약이 공공조달 과정에서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관리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권익위는 "수의계약의 투명성·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예산 낭비나 특혜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일부 부적절하게 운영되는 사례가 확인돼 제도 개선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특정 업체와의 반복 계약, 퇴직자와의 거래 등을 둘러싼 이해충돌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권익위가 제시한 권고안의 핵심은 이해충돌 방지와 절차 투명성 제고다. 우선 공공기관 퇴직자와의 수의계약을 전면 금지하도록 했다. 퇴직 인맥을 통한 사실상 전속 계약이나 특혜 시비를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또한 기관별로 수의계약 사유를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규정하도록 요구했으며, 사유서 작성 항목도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검증이 가능하도록 세분화하라고 권고했다.
절차 관리 강화 방안도 포함됐다. 계약 금액 2천만 원을 초과하는 수의계약에 대해서는 전자시스템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오프라인이나 수기 방식으로 진행되던 일부 계약도 정보시스템을 통해 이력과 내용을 남기게 돼 사후 점검과 감사가 한층 수월해질 전망이다. 아울러 동일 업체와의 반복적인 수의계약 관행을 제한하는 내용도 권고안에 담겼다. 특정 업체 쏠림 현상을 줄이고 경쟁 입찰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정치권과 공공기관의 반응도 주목된다. 여당은 그간 공공부문 지출 구조의 효율성과 도덕성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제시해온 만큼,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며 권익위 조치를 뒷받침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일부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소규모 사업이나 긴급한 상황에서 수의계약이 실무적으로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을 수 있어, 구체적인 기준 설정과 예외 규정 마련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의계약 자체를 전면적으로 축소하기보다는, 이해충돌을 차단하고 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73조원 규모의 예산이 비교적 제한된 경쟁 절차 속에서 집행된 만큼, 관리 체계가 미흡할 경우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소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권익위 권고는 각 공공기관의 내부 규정 정비와 조달 관행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정부는 권고 수용 여부와 이행 점검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이며, 국회 역시 공공계약 관련 법·제도 개선 필요성을 놓고 논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