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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하라·불법이다 분명히 들었다"…조지호 증언에 윤석열 측 "명백한 거짓" 반발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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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핵심을 겨냥한 내란 혐의 재판에서 경찰 수뇌부와 전직 대통령의 진술이 정면으로 엇갈렸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서 "체포하라", "불법이다"라는 표현을 분명히 들었다고 증언했고, 윤 전 대통령 측은 "명백한 거짓"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속행 공판에서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증인으로 출석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전후 상황을 상세히 진술했다.

조 전 청장은 특히 이보다 앞선 12월 3일과 4일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과정에서 국회의원 체포와 관련된 지시를 어떻게 들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조 전 청장이 1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재판에서 밝힌 이른바 월담 의원 체포 지시 관련 진술을 다시 캐물었다.

 

변호인단은 "수사기관에서의 기존 진술과 법정에서의 증언이 달라졌다"며 "상황과 맞지 않는 진술이라 증언을 준비하면서 바꾼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조 전 청장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체포하라', '불법이다' 이 두 가지"라고 답했다.

 

그는 다만 해당 발언이 문자 그대로 월담 행위와 직접 연결됐는지에 대해선 "월담이 전제된 것이냐는 점은 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통화에서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분명히 '체포하라', '불법이다'라는 취지로 들은 적이 있다"고 거듭 진술했다.

 

체포 지시가 내려온 구체적인 맥락을 묻는 질문에는 "어느 통화에서 무슨 말씀이었는지 기억 없지만 그런 말씀을 했고 기억한다는 취지"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체포하려면 할 수 있는 위치, 대상이 월담하는 사람들밖에 없지 않나. 기본적으로 월담하는 의원들 체포로 받아들여서 그렇게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계엄 하에서 실질적으로 물리적 진입을 시도하는 의원들만이 현행범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덧붙인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은 곧바로 별도 입장문을 통해 조 전 청장 진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2024년 12월 3일부터 4일 사이 조 전 청장과 윤 전 대통령이 주고받은 통화 시간대와 당시 국회 상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현장의 객관적 상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조 전 청장과 윤 전 대통령은 3일 밤 다섯 차례, 4일 세 차례 통화를 나눴다. 변호인단은 "통화가 이뤄진 시각에는 이미 국회 출입이 허용되고 있거나 본회의장에서 계엄 해제 표결이 진행 중이었다"며 "월담하는 의원이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의원을 체포하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가 없다"며 "어떤 시기의 통화에서도 월담하는 의원을 잡아들여 체포하란 말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법정에선 군 방첩 조직의 정치인 체포 준비 정황도 새로 드러났다. 조 전 청장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12월 3일 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으로부터 정치인 동향 파악과 체포 지원을 요청받았다고 증언했다.

 

조 전 청장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군이 진입할 예정이다', '정치인 15명을 체포할 텐데 위치추적을 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 전 사령관에게 "위치 추적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하는 데 그게 지금은 안 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이분이 수사에 대해 잘 모르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수사 절차와 영장주의에 대한 기본 이해 없이 계엄을 근거로 정치인 위치 추적을 요구했다는 취지다.

 

조 전 청장은 경찰 내부 보고 체계와 대응 지시도 공개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로부터 "국군방첩사령부가 체포조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나, 실제 집행 단계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준비만 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혀 물리적 강제력 동원까지는 제동을 걸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 전 사령관에 대한 조 전 청장의 개인적 평가도 진술에 포함됐다. 그는 계엄 이튿날인 12월 4일 오전 6시 박현수 당시 행정안전부 경찰국장과 통화하면서 여 전 사령관을 "미친놈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재확인했다. 윤승영 전 경찰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 측 변호인이 "정치인 위치 추적 도움을 요청하는 여 전 사령관을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맞느냐"고 묻자, 조 전 청장은 "그렇다. 박 국장과는 격한 표현도 많이 쓴다"고 답했다.

 

다만 그는 헌법 위반 논란과 별개로 당시 자신이 놓여 있었던 법 집행자의 위치를 강조했다. 조 전 청장은 "당시에는 계엄이 위헌·위법이라는 전제로 행동하지 않았다"며 "설령 내 신념과 다르더라도 법령에 있으면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 전 사령관 전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법령에 따른 것이라면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은 계엄 선포와 국회 탄압 시도 전반을 둘러싸고 검찰과 변호인단이 정면 충돌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검찰은 군·경 조직이 정치인 체포를 준비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하려 했다는 점을 내란 실행의 핵심 정황으로 보고 있고, 윤 전 대통령 측은 법령에 근거한 위기관리 조치였으며 불법 체포 지시는 없었다고 맞서고 있다.

 

재판부는 30일 같은 재판부에 계류 중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조지호 전 경찰청장 등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사건을 윤 전 대통령 사건과 병합해 심리하기로 했다. 이날은 김용현 전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도 진행될 예정이어서, 군 수뇌부와 치안 책임자들의 진술이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따라 재판 향배가 상당 부분 가늠될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군·경 최고위직 증언이 상호 모순을 빚고 있는 만큼 통신기록, 당시 국회 상황, 지휘 문건 등 객관적 자료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향후 추가 증인신문과 증거조사를 거쳐 내란 혐의의 성립 여부를 다각도로 검토할 방침이며, 정치권도 재판 진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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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호#윤석열#여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