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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개혁법안 처리 정면충돌”…여야, 3박 4일 필리버스터 대결 돌입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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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국회 막판 갈등이 연말 임시국회로 이어지며 여야가 다시 정면으로 맞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사법개혁 법안을 포함한 쟁점 법안의 연내 처리를 추진하자, 국민의힘은 3박 4일간의 필리버스터에 돌입하며 격돌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회는 12월 11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형사 사건의 하급심 판결문 공개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법안을 시작으로 은행법 개정안,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을 순차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사실상 모든 안건을 대상으로 무제한 토론을 신청하며 의사진행 저지에 나섰다.  

이날 상정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확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의 판결문까지 열람·복사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중심으로 판결문 공개가 이뤄지고 있으며, 하급심 판결문은 극히 제한적인 조건에서만 일부 열람이 허용되고 있다. 법안 논의 초기에는 여야 간 쟁점이 크지 않은 사법개혁 과제로 분류됐지만, 여야 대치 국면이 심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사법개혁 법안 묶음을 견제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비쟁점으로 여겨졌던 법안까지 포함해 전면적인 필리버스터 방침을 세웠다. 쟁점 법안뿐 아니라 비쟁점 법안 처리까지 차단하겠다는 전략이다.  

 

필리버스터의 첫 토론 주자로 나선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판결문 공개 확대가 개인정보보호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재산, 친밀관계 등 민감한 정보, 기업 비밀이나 경영상 빌미 등이 판결문 안에 존재한다"며 "이를 공개했을 때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곽규택 의원은 사법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의도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이 행정권과 입법권을 넘어 사법권까지 장악하려는 속내를 이제 더는 숨기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여권이 사법부 전반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공식 반박 입장은 이날 본회의장에서는 별도로 제시되지 않았다.  

 

국회법에 따라 필리버스터는 개시 후 24시간이 지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종결할 수 있다. 다만 안건마다 종결 표결을 따로 진행해야 해, 현재 여야 의석 분포를 고려하면 하루에 실질적으로 법안 1건만 처리하는 구조가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제도적 한계를 전제로, 11일부터 14일까지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상정하고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 종결 표결을 거쳐 처리하는 방식을 반복할 계획이다. 우선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은행법 개정안과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순차 처리하는 이른바 ‘살라미식’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어 더불어민주당은 21일부터 24일까지 다시 본회의를 열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핵심 사법개혁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여야 모두 사법개혁 법안을 정국 주도권과 직결된 핵심 이슈로 보는 만큼, 이 기간 동안 양측의 충돌 수위도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날 필리버스터 초반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민의힘 사이에 의사진행을 둘러싼 신경전도 이어졌다. 국민의힘은 12월 9일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우원식 의장이 필리버스터 도중 나경원 의원의 발언이 의제에서 벗어났다며 마이크를 끄도록 한 조치를 두고, 편파 진행이며 국회법 위반이라고 반발해왔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필리버스터 개시 전 발언을 통해 자신의 조치는 정당했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의장의 조치를 권한 남용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어떤 주장이나 행동도 본분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정당성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장 권한 행사가 국회법과 의사진행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사과하세요"라는 고성과 함께 거세게 항의했다. 국민의힘은 우원식 의장이 국회 다수당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진행을 하고 있다며 사과와 시정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여당은 의장의 중립적 권한 행사를 강조하며 야당의 문제 제기가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여야의 연말 입법 전쟁은 사법개혁을 둘러싼 갈등이 방아쇠 역할을 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개혁 법안을 정권 견제 장치 확립을 위한 필수 과제로 규정하며 연내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을 포함한 패키지를 여권의 사법 장악 시도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향후 본회의에서는 각 법안별로 필리버스터 신청과 종결 표결이 이어지며 장시간 회의가 반복될 전망이다. 정국은 사법개혁 법안 처리 여부와 속도, 필리버스터 공방의 향배에 따라 요동칠 수밖에 없다. 국회는 연말까지 이어질 임시국회에서 남은 본회의 일정을 조율하며, 각종 쟁점 법안에 대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국회는 법안 처리 과정에서 불거질 갈등을 조정하는 한편, 이후 회기에서 추가 법안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조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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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우원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