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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벳 희귀질환 겨냥 신약 허가…한국유씨비, 소아 뇌전증 치료전선 확장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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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벳 증후군 전용 치료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정식 허가를 받으면서 소아 난치성 뇌전증 분야 치료 패러다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한국유씨비제약이 개발한 펜플루라민염산염 기반 치료제 핀테플라액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2세 이상 드라벳 증후군 환자의 발작 치료를 위한 부가요법으로 허가를 획득했다. 업계에서는 발작 조절 옵션이 제한적이었던 국내 임상 현장에서 미충족 수요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계기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희귀 소아 뇌전증 영역에서 작용기전이 다른 신약이 추가되면서 향후 정밀의료적 병용 전략과 건강보험 급여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유씨비제약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핀테플라액을 2세 이상 드라벳 증후군 환자의 발작 치료를 위한 부가요법으로 지난 18일 자 허가했다고 22일 밝혔다. 드라벳 증후군은 생후 12개월 전후 발병하는 희귀 난치성 소아 뇌전증으로, 환자의 최대 15퍼센트가 유아기 또는 청소년기에 사망할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신체 경직, 언어 발달 장애, 자폐, 정신지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등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동반질환이 동반되며, 보호자 역시 24시간 상시 돌봄, 경력 단절, 소득 감소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치료 측면에서 드라벳 증후군은 발작 양상이 복합적이고 기존 항경련제에 대한 반응이 제한적이어서 임상의와 보호자 모두 치료 전략 수립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장기간 이어지는 빈번한 발작은 인지 발달 저하, 사고 위험 증가는 물론 돌연사로 불리는 뇌전증 관련 급사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발작 빈도를 낮추거나 무발작 기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이 핵심 치료 목표지만, 현행 치료제만으로는 발작 조절이 충분하지 않고 일부 약제는 오히려 발작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임상 현장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핀테플라는 기존 약물과 차별화된 신경전달물질 조절 기전을 내세운다. 이 치료제는 세로토닌 방출을 증가시켜 다양한 아형의 세로토닌 수용체를 자극함으로써 발작 활동을 억제하도록 설계됐다. 여기에 세로토닌 수용체와 함께 시그마 1 수용체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 기전을 통해 신경세포 흥분성과 네트워크 수준의 과흥분을 줄여 발작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업체 측은 이러한 이중 작용이 기존 염화이온 채널 조절 또는 나트륨 채널 차단 위주 항경련제와 달리, 뇌 전반의 흥분성 회로를 다층적으로 조정하는 새로운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임상데이터에서는 발작 빈도 감소 효과가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됐다. 2세 이상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드라벳 증후군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에서, 스티리펜톨을 병용하지 않은 시험에서 핀테플라 투여군은 위약군 대비 월 평균 경련성 발작 빈도 감소폭이 62.3퍼센트 더 크게 나타나 1차 유효성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이는 같은 기간 위약 대비 상대적 감소율을 의미하며, 발작 조절이 어려운 환자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를 보여준 결과로 해석된다.  

 

스티리펜톨과 병용한 별도 연구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확인됐다. 병용요법 임상에서 핀테플라 투여군은 위약군에 비해 월 평균 경련성 발작 빈도 감소폭이 54퍼센트 더 컸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체감되는 지표인 무발작 기간 중앙값에서도 차이가 뚜렷했다. 핀테플라 투여군의 무발작 기간 중앙값은 25일이었고, 위약군은 9.5일로 나타나 실제 보호자와 환자가 경험하는 안정기간이 상당히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회사 측은 안전성 프로파일 또한 관리 가능한 수준에서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현장 의료진은 이번 허가를 국내 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기점으로 평가한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강훈철 교수는 드라벳 증후군이 유아기부터 반복되는 발작과 발달 지연, 행동 문제 등 복합적 증상이 동반돼 질환 부담이 큰 반면, 그동안 국내에서는 발작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핀테플라 허가를 통해 환자 개별 특성과 병용요법 조합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이 보다 현실화될 수 있다며, 장기 추적 데이터를 통해 인지 기능과 삶의 질 개선 효과를 확인하는 후속 연구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국제적으로 드라벳 증후군 치료제 개발 경쟁은 신약과 희귀의약품을 중심으로 이미 가속화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펜플루라민 제제를 비롯해 나트륨 통로 조절제, 시냅스 조절제 등 다양한 기전의 약물이 허가를 받거나 후기 임상 단계에 진입해 있다. 여기에 유전자 변이를 표적하는 유전자 치료,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 기반 정밀의약 접근도 연구단계에서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유씨비제약의 이번 국내 허가는 국내 환자에게 글로벌 수준의 표준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한편, 향후 국산 신약이나 차세대 플랫폼 기반 치료와의 병용 연구를 촉진할 촉매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치료 접근성을 좌우하는 요인은 허가 이후 제도와 경제성 평가다. 핀테플라가 희귀질환 의약품 특례 등을 통해 건강보험 급여 체계 안으로 얼마나 빠르게 편입되는지가 국내 환자와 보호자의 실질적 혜택을 결정하게 된다. 약가 수준, 투약 기간, 기존 항경련제와의 병용 조합에 대한 급여 범위 설정 과정에서 보건당국과 학계, 환자단체의 의견 조율이 필요하다. 드라벳 증후군 특성상 장기 투약이 일반적이어서 안전성 모니터링 체계와 이상반응 등록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로 꼽힌다.  

 

산업계에서는 소아 희귀 뇌전증 분야가 정밀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가 융합되는 시험무대가 될 가능성에도 주목한다. 환자별 발작 패턴과 유전자 정보, 복용 약제 프로파일을 통합 분석하는 데이터 기반 관리 플랫폼이 확산될 경우 핀테플라와 같은 신약의 임상적 가치는 더 분명해질 수 있다. 발작 빈도와 수면, 행동 변화를 모바일 기기로 상시 모니터링하고 이를 토대로 약물 용량과 병용요법을 미세 조정하는 방식이 현실화될 경우, 신약은 단일 제제에서 벗어나 치료 생태계의 핵심 구성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결국 이번 허가의 성패는 신약 자체의 효능과 안전성뿐 아니라, 국내 의료체계가 희귀 소아 뇌전증을 위한 다학제 진료와 데이터 기반 관리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는 핀테플라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얼마나 폭넓게 활용되고 환자와 보호자의 삶을 얼마나 개선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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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씨비제약#핀테플라#드라벳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