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 40퍼센트 약가인하"…제약업계, 3조6천억 쇼크 경고 파장
제네릭 의약품 가격을 오리지널 의약품의 40퍼센트 수준으로 낮추는 정부 약가 인하 방안이 제약업계 반발에 직면했다. 업계는 해당 안이 시행되면 연간 최대 3조6천억 원 규모의 매출 감소가 발생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전반의 연구개발과 설비투자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과 약가 합리화를 목표로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분위기지만, 산업계는 제네릭 중심 수익구조가 붕괴되면 국산 의약품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정책 재설계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향후 정부와 업계 간 협의 과정이 제약산업 경쟁력과 보건의료 재정 사이의 균형점 설정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는 12월 22일 서울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비대위는 정부가 신규 제네릭의 상한 가격을 오리지널 대비 40퍼센트 수준으로 설정하고, 이미 등재된 기등재 품목 중 인하 대상 약제 역시 3년간 순차적으로 40퍼센트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건당국은 특히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이후 별도의 약가 조정 없이 최초 산정가인 오리지널 대비 53점55퍼센트 수준에서 유지돼 온 제네릭 의약품을 주요 조정 대상으로 보고 있다. 다만 국가 필수의약품 등 안정적 수급이 반드시 필요한 품목은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함께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제도 설계 방향상 결과적으로 다수 제네릭 약가가 40퍼센트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본다. 윤웅섭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은 회견에서 약가 개편안이 명목상으로는 고가 제네릭과 일부 품목을 우선 인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신규 등재 약가 인하와 주기적 약가 조정 기전이 결합되면 시장 전체가 40퍼센트 수준으로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가 제시한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총 약품비 26조8천억 원 가운데 제네릭이 차지하는 비중 53퍼센트를 기준으로, 현행 53점55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인하될 경우 약가 인하율 25점3퍼센트를 적용해 연간 최대 3조6천억 원 규모 매출 감소가 발생할 수 있다.
제약업계가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수익구조 악화가 연구개발과 품질 투자 축소로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국내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4점8퍼센트, 순이익률이 3퍼센트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당시와 비교해 이미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추가 대규모 인하가 이뤄질 경우 신약 개발과 생산설비 투자 여력이 급속도로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윤 이사장은 국내 제약산업의 현금창출 기반이 여전히 제네릭 사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제네릭 수익이 해외 기술수출, 신약 연구개발, 생산시설 고도화 등으로 재투자되는 구조가 자리 잡은 만큼, 제네릭 약가가 과도하게 떨어지면 산업 전반의 성장 동력이 끊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기업 수익이 1퍼센트 줄어들 때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1점5퍼센트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을 제시하며, 약가 인하 강도가 커질수록 R&D와 품질 혁신 투자가 선제적으로 삭감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현재 상장 제약사 169곳의 평균 연구개발비 비중은 매출 대비 12퍼센트 수준이며, 정부가 지정한 혁신형 제약기업 49곳의 경우 R&D 비중이 13점4퍼센트에 이른다. 업계는 연구개발 집중도가 높은 이들 기업조차 제네릭 수익 감소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본다. 지난 24년간 약가 인하로 절감된 누적 약품비 규모가 63조 원 수준에 달한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된다.
업계는 이번 약가 개편이 단순한 이익 감소를 넘어 국내 의약품 공급망 안정성에도 구조적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비대위는 약가 인하가 계속될 경우 국내 생산 비중이 점차 줄면서 해외 완제품과 원료의존도가 높아지고, 이 과정에서 필수·저가 퇴장방지의약품의 채산성이 악화돼 생산 포기가 잇따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 기반이 여전히 취약한 상황에서 저수익 품목의 생산 중단이 늘어나면 특정 성분 중심의 품절 사태가 반복되며 환자 치료 공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고용 측면에서도 부정적 파급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출과 이익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 구조 조정이 불가피해질 경우 생산직뿐 아니라 연구개발, 임상, 품질관리 인력까지 감축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비대위는 제약바이오 5대 강국 도약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운 상황에서, 이번 약가 개편이 장기 산업정책과 상충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며 재검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약가 인하 논의가 반복될 때마다 업계가 강하게 문제를 제기해 정부가 업계를 과장된 위기감을 조성하는 존재로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재 업계가 체감하는 경영상 어려움은 2012년 일괄 인하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가 재정 절감 목표만 앞세운 일방적 추진보다는, 산업계와의 충분한 사전 협의와 영향 분석을 거쳐 제도 설계를 다시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소·중견 제약사들은 대형사보다 사업 포트폴리오가 제한적인 만큼, 제네릭 약가 인하에 더 취약하다고 호소한다. 중견 제약사를 운영 중인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은 제네릭 가격이 40퍼센트대로 떨어질 경우 상당수 중소사는 영업이익을 내기 어려워 버티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품목부터 생산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특정 약제의 품절 문제는 구조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 관리 차원에서 약가 구조 개편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인하 속도와 대상, 예외 기준 설정 과정에서 산업계의 반발을 어느 수준까지 수용할지가 향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 주요국에서도 신약 가치 기반 약가와 제네릭 절감 기조를 함께 가져가고 있지만, 필수의약품 공급망과 자국 제약산업 경쟁력 유지 차원에서 별도의 지원제도나 인센티브를 병행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국내에서도 약가 인하 외에 제네릭 품질 고도화, 허가 특허 연계 제도 정교화, 신약과 개량신약에 대한 가치 기반 보상 체계 설계 등 입체적 정책 조합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재정 효율화 목표와 산업 경쟁력 강화, 환자 접근성 보장이라는 세 가지 축을 어떻게 조율할지가 향후 제약바이오 산업 정책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산업계는 이번 약가제도 개편이 실제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 안착할지, 그리고 정책 설계 과정에서 산업 구조와 공급망 안전성이 얼마나 반영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