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어지럼증은 경고 신호”…세란병원, 2차 위험 차단 강조
고령층 어지럼증이 노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증상이 아니라, 낙상과 골절, 심혈관질환, 약물 이상 반응을 경고하는 신호로 재조명되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진단 보조와 웨어러블 모니터링 기술이 의료 현장에 확산되면서, 어지럼증을 조기 포착해 2차 위험을 줄이려는 디지털 헬스케어 전략도 과제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의료계는 고령층 외래와 응급실 방문의 대표 증상인 어지럼증 관리 수준이 향후 노인 정밀의료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고령층의 일상적 어지럼증 경험률은 10명 중 최대 4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세란병원 신경과에 따르면 상당수 환자가 수면 부족이나 일시적 컨디션 악화로 치부하면서 전문 진료 시점을 놓치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어지럼증 자체보다 이후 발생하는 낙상과 골절, 심혈관계 사건, 뇌혈관질환 등 2차 위험이 훨씬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권경현 세란병원 신경과 과장은 고령층 어지럼증을 단일 질환이 아닌 전신 노화의 집합 신호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전정기능 저하와 시각 기능 약화, 근육과 관절 감각의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균형 유지 능력이 떨어지고, 여기에 심혈관계나 뇌혈관 이상, 약물 부작용이 겹치면 다양한 양상으로 어지럼증이 표출된다는 해석이다.
특히 이석증으로 불리는 양성돌발성체위현훈은 고령층 어지럼증의 대표 원인으로 꼽힌다. 귓속 평형감각을 담당하는 반고리관 내 이석 결정이 제자리를 벗어나면서 머리 위치 변화에 따라 빙 도는 느낌의 회전성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전정신경염과 메니에르병도 노화에 따른 전정기능 퇴화와 관련된 대표 질환으로, 환자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느낌, 걷기 어려운 균형 장애, 체위 변화 시 어지럼 증상이 악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시각 정보의 질 저하도 중요한 변수다. 백내장과 녹내장 등 안과질환이 시야 콘트라스트와 깊이 인지 능력을 떨어뜨리면 뇌가 전정기관과 근골격계에서 오는 신호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커진다. 여기에 뇌혈관 협착이나 미세 뇌경색, 말초신경 손상 같은 신경계 이상이 겹치면 비특이적인 어지럼증과 보행 불안정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 임상의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어지럼증은 심혈관 질환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나 심장 펌프 기능 저하가 발생하면 뇌로 가는 혈류가 순간적으로 감소해 휘청거림, 실신 전 단계 증상, 두근거림을 동반한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 의료진은 고령층에서 돌발성 어지럼증이 발생할 경우 심전도, 심장 초음파, 뇌 영상 검사 등을 연계한 정밀 진단 알고리즘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약물 부작용도 고령층 어지럼증 관리의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고혈압약, 수면제, 항우울제 등은 혈압 조절 기전이나 중추신경계 작용 특성상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 다제 복용이 흔한 고령층에서는 약물 상호작용까지 겹치면서 낙상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에는 전자의무기록과 약물 데이터베이스를 연동해 어지럼증 위험 약물 조합을 사전에 경고하는 임상 의사결정지원 시스템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만성질환 조절 실패 역시 어지럼증의 배경 요인으로 작동한다. 권경현 과장은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는 당뇨 환자에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이 진행하면 발바닥 감각이 둔해져 보행 안정성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여기에 흡연이 더해지면 말초 혈관과 뇌혈관 노화가 가속화돼 심혈관질환과 뇌졸중 위험이 동시에 높아진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특이적 어지럼증은 결국 심뇌혈관계 사건의 전조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는 고령층 어지럼증을 낙상 예측 알고리즘과 연계해 관리하려는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관성 센서가 탑재된 스마트워치와 신발형 웨어러블 기기가 보행 속도, 보폭, 균형 패턴을 상시 수집하고, 인공지능이 낙상 위험을 예측해 경보를 주거나 의료진에게 데이터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일부 해외 병원에서는 어지럼증과 낙상 이력이 있는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이러한 시스템을 적용해 골절과 응급실 방문을 줄이려는 임상 시험이 진행 중이다.
다만 국내에서는 디지털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인허가, 고령층 웨어러블 데이터의 개인정보 보호, 원격 모니터링에 대한 수가 체계 미비가 상용화를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의료계는 어지럼증과 낙상 위험 평가를 노인 정밀의료 패키지에 포함하고, 병원 내 전정기능 검사와 웨어러블 기반 일상 모니터링을 연계하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권경현 과장은 고령층의 균형 능력과 근력이 이미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작은 어지럼증에도 쉽게 넘어져 고관절 골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관절 골절은 수술과 장기 재활을 필요로 하고, 합병증 발생 시 사망률이 크게 높아지는 질환으로 분류된다. 의료계는 어지럼증 단계에서 정밀 진단과 약물 재평가, 생활 습관 개선, 균형 재활 프로그램을 조기에 개입시키는 것이 고관절 골절과 뇌졸중, 심혈관 사건을 줄이는 가장 비용 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와 의료계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어지럼증을 단순 증상이 아닌 디지털 정밀의료의 핵심 관리 지표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어지럼증을 둘러싼 전정기능, 심혈관, 신경계, 약물, 생활 습관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플랫폼 구축 여부가 향후 노인 헬스케어 산업 경쟁력의 시험대가 될 수 있어, 산업계는 실제 현장에서 이 기술들이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