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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자 해지권 침해 논란"…쿠팡, 탈퇴 절차 설계 정조준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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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플랫폼에서의 계정 삭제가 디지털 기본권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탈퇴 수요가 커진 가운데 쿠팡이 계정 탈퇴 절차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설계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규제 당국이 긴급 조사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가 플랫폼 전반의 서비스 해지 구조를 손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4일 쿠팡의 계정 탈퇴 절차가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행위인 이용자의 해지권을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사실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은 기간통신사뿐 아니라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부가통신서비스에도 이용자 보호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며, 가입보다 해지를 어렵게 만들어 이용자를 사실상 묶어두는 행위를 제재 대상으로 본다.

방미통위가 문제 삼은 부분은 탈퇴 경로의 접근성과 단계 수다. 우선 모바일 앱 이용자의 경우 메인 화면에서 곧바로 회원탈퇴 메뉴를 찾을 수 없다. 사용자는 화면 하단의 사람 상반신 모양 아이콘으로 표시된 개인정보 탭에 진입한 뒤 설정, 회원정보 수정, 비밀번호 입력 순서를 거쳐야 하고, 이후에는 앱이 아닌 PC 화면으로 전환해 다시 탈퇴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앱 환경에서 시작한 해지 요청을 웹 환경으로 넘기는 구조 자체가 이용자의 이탈을 억제하는 설계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PC에서 탈퇴를 진행하는 경로도 간단하지 않다. 마이쿠팡 메뉴에 들어가 개인정보 확인·수정을 선택한 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화면 하단에 배치된 회원탈퇴를 클릭해야 한다. 이후 비밀번호 재입력과 쿠팡 내 주문·이용 내역 확인 단계를 거친 뒤 여러 문항으로 구성된 설문조사까지 완료해야 최종적으로 회원탈퇴 신청이 가능하다. 일련의 과정이 최소 2회 이상의 비밀번호 인증과 다단계 확인, 설문 응답으로 구성돼 있어 이용자가 중간에 이탈하기 쉬운 구조로 설계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지털 서비스 설계 관점에서 보면, 가입과 해지의 접근성은 이용자 경험의 핵심 지표다. 글로벌 개인정보 보호 규범에서 문제 삼는 다크 패턴은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인터페이스나 과도한 클릭·입력을 요구해 특정 선택, 특히 탈퇴나 구독 해지를 회피하도록 유도하는 디자인을 가리킨다. 방미통위가 쿠팡 사례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여부와 함께 이용자 보호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배경이다.

 

이번 조사는 최근 불거진 쿠팡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사고 이후 계정탈퇴 수요가 급증한 시점과 맞물린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노출된 개인정보와 결제 정보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계정을 신속하게 삭제하거나 서비스 이용을 중단할 수 있는 통로가 원활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복잡한 탈퇴 절차와 환경 전환, 반복 인증 요구는 실제 해지 시도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고, 이는 데이터 보유 기간과 범위를 늘려 2차 피해 우려를 키우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이미 계정 삭제 절차를 둘러싼 규제 대응이 본격화됐다. 유럽연합 일반개인정보보호법은 데이터 삭제권과 처리 제한권을 명시하고 있고, 미국·유럽 일부 국가의 감독당국은 구독 취소 버튼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거나 탈퇴를 과도하게 복잡하게 만드는 패턴에 대해 시정명령과 벌금을 부과해 왔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 개정과 함께 서비스 탈퇴 시 보유 데이터의 삭제나 파기 기준을 강화하는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통신사업법을 통한 이용자 해지권 보호가 추가적인 규제 수단으로 부각되는 흐름이다.

 

방미통위는 이번 조사 과정에서 탈퇴 화면 구성, 버튼 배치, 절차 단계 수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유 정책과 실제 삭제 처리 방식까지 함께 점검할 가능성이 있다.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 등 강도 높은 제재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전기통신서비스 전반을 대상으로 유사한 피해 유발 행위를 상시 모니터링하겠다고 예고하면서, 향후 타 플랫폼으로 조사 범위가 확장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용자의 서비스 해지권을 디지털 시대의 기본 소비자권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는 만큼, 플랫폼 기업이 가입 설계만큼이나 탈퇴 경험을 투명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짚는다. 이용자 데이터가 경쟁력의 핵심 자산이 된 상황에서 이탈 장벽을 올리려는 유혹은 커지고 있지만, 규제와 신뢰 리스크를 고려하면 중장기적으로는 가입과 해지 모두를 간단하고 대칭적인 구조로 가져가는 것이 산업 전체의 지속 가능성에 유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계는 쿠팡에 대한 방미통위 조사 결과가 향후 디지털 서비스 설계 기준과 규제 방향을 어떻게 재편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송다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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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전기통신사업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