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경계선에 지어도 된다"…이재명, 광역 통합 속도전 주문
정치적 이해와 행정 효율 사이의 충돌이 다시 부각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충남, 대구·경북 등 광역지방자치단체 통합 논의를 점검하면서, 통합을 가로막는 관성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대구시장의 궐위로 대구·경북 통합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보고에 "이럴 때가 찬스"라고 언급해 정치권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8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지방시대위원회 업무 보고에서는 정부가 추진 중인 5극 초광역 3특 특별자치도 전략과 함께 광역 연합·행정구역 통합 추진 상황이 집중 점검됐다. 회의는 지방 균형 발전을 위한 행정구역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각 지역 이해관계가 얽힌 통합 논의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보고에 나선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은 5극 초광역 3특 구상 아래 광역 연합과 행정구역 통합을 병행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행정 통합을 추진하는 시도에는 신속하게 지원할 것"이라며 "통합 이전 단계에서도 공동 경제권, 생활권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면 시도 간 협력체인 광역 연합이 활성화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구체적 사례로는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첫손에 꼽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가 최근 충남에 다녀왔는데 충남과 대전을 통합하는 문제는 법안까지 다 나왔더라"고 언급하며 국회 차원의 입법 논의가 상당 부분 진전됐다고 짚었다. 김 위원장도 "현재 특별법에 있는 각종 특례조항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할지를 협의 중"이라고 밝히며 통합 실무 논의가 구체 단계에 들어섰음을 시사했다.
반면 전북 전주·완주, 전남 목포·신안·무안 등 일부 지역은 통합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은 이들 지역의 통합 추진이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지역 균형 발전은 정말 중요하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한 뒤 "그래도 총력을 다해서 해야 한다. 안 하면 큰일 난다"고 강조했다.
통합 이후 행정 관청 입지를 둘러싼 갈등도 도마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도청이나 시청 등 새로운 관청의 위치를 두고 각 지자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다고 보고하자, 이 대통령은 관행 자체를 문제 삼았다. 그는 "관청 소재지를 반드시 한 곳에만 둬야 한다는 것은 도그마"라며 경직된 행정 관념을 꼬집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도청을 양쪽 경계에 걸쳐 지으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나. 경계선 위에 건물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런 걸로 싸울 필요가 없다. 관청 주소가 두 개일 수도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행정 효율과 주민 편의를 중심에 두고, 기존 행정구역 틀과 관청 입지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대구·경북 통합 문제도 핵심 논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김 위원장은 대구시장 궐위 상황 탓에 대구·경북 통합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이럴 때가 찬스"라며 공백기를 활용해 오히려 신속하게 통합 논의를 추진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특정 정치 세력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점을 활용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이 대통령은 광역 통합과 광역 연합 논의가 정치권에서 반복적으로 좌초돼 온 현실도 지적했다. 그는 "행정구역 통합 문제든 광역 연합 문제든 꼭 마지막에 정치적 이해 관계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하며, 통합이 정치 공방의 도구가 되는 구조를 비판했다. 이어 "정치가 문제일 때 길게 보고 거기에서 벗어나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는 지역 균형 발전과 행정 효율 제고라는 목표 아래 광역 통합 필요성이 재확인된 자리였다. 그러나 각 지역의 이해관계, 특히 관청 입지와 정치 일정까지 얽히면서 향후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함께 나온다. 정부는 지방시대위원회를 중심으로 대전·충남 통합 특별법 논의와 대구·경북을 포함한 광역 통합·연합 과제를 점검하며, 관계 지자체와의 추가 협의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