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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정원 2000명 증원 강행”…의협, 前정부 상대로 소송전 → 의료정책 신뢰도 흔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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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이 법적 공방 국면으로 번지면서 향후 의료 인력 정책 전반의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가 추진한 대규모 의대 정원 증원과 지역의사제 도입은 데이터 기반 인력 수급 예측과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라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지만, 당사자인 의료계와의 협의 부재가 반복되면서 정책 실행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 인력 부족 해소를 위한 규제와 재정, 지역 배치 전략이 정면충돌한 셈이라 향후 디지털헬스와 바이오 인프라 확충에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주도한 전직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민사와 형사를 포함한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4일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전 복지부 차관, 이관섭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 장상윤 전 대통령실 사회수석 등을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의료계의 우려와 법치주의 원칙을 무시한 채 의대 증원을 강행했고, 그 결과 의료 대란이 촉발됐다며 책임자 지목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소송 방침은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 본격화됐다. 의협은 지난 5월 윤석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 전반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국민감사청구를 제기했고, 감사원은 지난달 27일 결과를 통해 의사 부족 규모 산정 방식과 의사단체와의 협의 절차, 정책 추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이 미흡했다고 결론냈다. 특히 인력 수급 예측과 같은 기초 데이터 산정 과정이 투명하게 검증되지 않은 점은 향후 디지털 기반 보건의료 인력 계획 수립에도 부담 요인으로 남을 수 있다.

 

의협은 감사원 판단을 근거로 전직 정책 결정자들의 책임을 민사와 형사로 나눠 추궁한다는 구상이다. 김 대변인은 민사소송과 관련해 법제팀이 배상액 규모를 검토 중이며, 수억 원대 이상의 청구액이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의료기관과 의사 개인 등 피해 사례를 수집해 공동 소송 형태로 대응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형사소송의 경우 현재 소장 작성 막바지 단계로, 빠르면 다음 주 중 법원에 제출하는 일정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정원 증원과 병행해 추진된 지역의사제 법제화도 새로운 갈등 요인으로 부상했다.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역의사제 법안에 대해 의협은 현장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법안 내용이 구조적으로 부실하다고 지적하며, 어떤 유형의 의사를 어떠한 교육과 수련 과정을 거쳐 양성할지, 어느 지역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 등에 대한 중장기 인력 계획이 불명확하다고 말했다. 수련지를 옮겨야 할 경우 수련 기간을 어떻게 인정할지에 대한 기준도 제시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의협이 특히 우려하는 대목은 의무 복무가 끝난 이후의 진로 불확실성이다. 김 대변인은 일부 지역의 경우 인구 감소와 의료 수요 위축으로 인해 개원의로서 자리를 잡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의무 기간을 마친 의사가 지역에서 진료를 이어가기 어렵다면 다시 대도시로 이동하려는 수요가 커질 수 있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역 인력 유치라는 제도의 목표와 어긋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 보상과 경력 인정 체계, 지역 간 이동 시 기준 등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의사들의 반발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글로벌 차원에서 의료 인력 부족 문제는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바이오·디지털 헬스 기술 확산과 맞물려 주요 정책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영국과 일본 등은 지역 격차를 줄이기 위해 의대 정원 배분 조정과 지역 근무 인센티브를 병행하고 있으며, 미국도 공공병원과 취약지 클리닉에 대한 재정 지원과 비대면 진료 활성화를 통해 공백을 메우는 전략을 펴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단기간에 대규모 정원 증원을 추진하면서도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디지털헬스 인프라 확충,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 등 구조개선 논의가 분절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제도와 현장의 간극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책·규제 측면에서는 이번 소송전이 향후 보건의료 정책 결정 방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감사원이 절차적 정당성 문제를 공식 지적한 만큼, 앞으로는 의사단체와의 협의 구조를 법제화하거나, 인력 수급 예측 모델과 데이터 공개를 의무화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 논의가 뒤따를 수 있다. 다만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장기화될 경우, 원격의료와 인공지능 진단 보조, 바이오 인력 양성 등 다른 보건의료 혁신 정책 추진도 동력을 잃을 우려가 있다.

 

의료계와 정부 간 신뢰 회복 여부에 따라 의료 인력 정책의 향배도 갈릴 전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력 규모 확대 논쟁을 넘어, 지역 기반 의료 인프라와 공공의료 재정, 디지털헬스 기술 도입을 포괄하는 통합 설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계는 이번 분쟁이 향후 보건의료 인력 구조 개편과 바이오·디지털헬스 투자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선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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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윤석열전대통령#조규홍전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