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장벽 직접 뚫는다"…식약처, K푸드 수출동력 키운다
K푸드 수출을 둘러싼 글로벌 규제 환경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국내 규제당국이 중소 식품기업의 사실상 수출 파트너 역할로 나서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은 수출 통관 단계부터 해외 규제기관과의 직접 소통 창구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며, 규제 정보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원 체계를 재편했다. 업계에서는 올 한 해 나온 성과를 두고 K푸드 수출 경쟁력의 숨은 인프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식약처와 해썹인증원은 11일 올해 중소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한 수출 지원 사업 결과를 공개했다. 두 기관은 전국 약 20개소를 대상으로 현장 설명회와 간담회를 열어 업계와 규제기관이 직접 소통하도록 했고, 수출 통관 단계에서 1대 1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했다. 동시에 중소벤처기업부 수출바우처 사업과 연계해 해외 검사와 홍보를 묶은 패키지 지원 모델도 운영했다. 그 결과 15개 업체의 17개 제품이 약 88만달러 규모, 한화 약 12억3000만원 상당의 신규 수출 계약을 맺었다.

이번 지원의 핵심은 통관 단계에 집중된 규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줄이는 데 있다. 식품 수출 과정에서 각국의 잔류농약 기준, 첨가물 허용 범위, 라벨링 의무 등은 수출 기업이 스스로 해석하고 준비해야 하는 고비용 영역이다. 식약처는 각 기업이 목표로 하는 수출국의 안전 기준과 심사 절차, 통관 요건을 분석한 뒤, 업체별로 필요한 준비 사항을 컨설팅 방식으로 제시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개별적으로 현지 로펌이나 컨설팅사를 활용하던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해외 규제기관과의 직접 접점을 넓히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식약처와 인증원은 중국 해관총서, 대만 식약서, 싱가포르 식품청 등 주요 수입국 공무원을 초청한 식품안전 인적자원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초청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 식품안전관리 체계를 직접 소개하고, 상대국의 관리 기준과 비교하는 세션을 통해 상호 이해를 높였다. 단순한 설명회 수준을 넘어 양측 공무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식이어서, 개별 기업이 겪는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해석과 조정이 가능한 채널을 확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기업과 해외 규제기관이 한 자리에 모이는 수출 규정 설명회도 병행됐다. 이 자리에서는 각국의 안전 기준과 심사 절차, 통관 서류 요건, 라벨링 규정 등이 사례 중심으로 공유됐다. 수출 준비 과정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 요인으로 꼽히는 규정 해석 문제에 대해 당사자에게 직접 질의응답을 하는 구조여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실질적인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 특히 중국과 같이 작업장 등록, 제품별 사전 심사 등 구조가 복잡한 국가에 대한 정보 제공은 수출 전략 수립에 바로 반영되는 영역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규제 해석 지원의 효과가 구체적인 수출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냉동만두를 생산하는 성경순만두는 중국 수출 과정에서 복잡한 규정 때문에 통관이 장기간 지연됐다. 성경순 대표는 식약처가 중국 해관총서에 대한 작업장 등록 절차를 지원하면서 병목을 해소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건강기능식품 판매업체 노바락토의 황용진 대표도 통관 단계 지원 사업을 통해 라벨링 제작 비용을 절감했고,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 수출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두 사례 모두 규제 문턱을 낮춘 것이 수출 여력 자체를 확장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글로벌 식품 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안전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가 뚜렷하다. 미국과 유럽은 알레르기 유발 물질 표시와 영양 성분 표기 기준을 세분화하고,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도 자체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특히 기능성 원료, 프로바이오틱스, 대체육 등 새로운 카테고리는 안전성 평가 기준이 잦은 개정을 거치고 있어, 실시간 규제 대응 역량이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되는 구조다. 이번 식약처·인증원 프로그램은 공공 부문이 규제 강도에 맞춰 정보 중개자이자 기술 지원자로 역할을 확대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수출 바우처 사업과의 연계도 중요한 변화로 꼽힌다. 기존에는 마케팅, 전시회 참가, 샘플 발송 등에 바우처 예산이 주로 사용됐다면, 이제는 검역 검사와 라벨 수정 등 규제 대응 비용까지 패키지 형태로 지원받을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이는 수출 준비 과정에서 숨은 고정비로 작용하던 규제 대응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품질관리와 안전성 입증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효과도 있다. 결과적으로 식품기업의 수출 전략이 단순 가격 경쟁에서, 규제 대응과 품질 차별화를 동반한 구조로 재편될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글로벌 K푸드 열풍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개별 프로젝트 수준을 넘어 상시화된 수출 지원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에서 식품안전 기준이 강화될수록, 국내에서는 HACCP 기반 위생관리와 생산공정 디지털화, 추적관리 시스템 도입 등 기술적 투자 요구가 커지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규제기관이 제공하는 정보와 컨설팅을 토대로, 빅데이터 기반 수출국별 규제 모니터링 시스템이나 라벨 자동생성 솔루션 등 민간 디지털 서비스와의 연계도 필요해 보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오유경 식약처장은 올해 성과를 두고 식약처와 인증원이 체계적으로 종합 지원 사업을 추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오 처장은 수출국 규제 정보 제공을 확대하고 통관단계 기술 지원을 고도화하는 한편, 수출 바우처 연계 지원을 강화해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속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에서는 K푸드 수출 붐이 단기 유행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설 수 있을지, 규제기관 주도의 지원 생태계가 어떻게 자리 잡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