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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의사 영상까지 위조…식약처, 가짜 의약품 광고에 칼 빼들어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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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기반 생성형 기술이 식품 온라인 광고의 판을 바꾸고 있다. 문제는 이 기술이 의료 전문가를 사칭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며 소비자 피해를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규제 당국은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일반식품이 AI로 만든 가짜 의사 영상과 함께 의약품처럼 홍보되는 상황을 식품·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의 위험 신호로 보고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향후 AI 활용 마케팅 전반에 대한 기준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온라인에서 AI로 생성한 의사 등 전문가 영상을 이용해 식품을 광고하거나, 일반식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혼동하게 한 사례를 적발해 수사의뢰 등 조치를 했다고 15일 밝혔다. 식약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확인된 식품판매업체 16개소를 적발해 관할 기관에 행정처분을 요청하고, 문제 게시물에 대해서는 접속 차단에 나섰다.  

이번 점검은 10월 28일부터 12월 12일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진행됐다. 온라인 쇼핑몰과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식품 부당광고 게시물을 모니터링한 뒤, 해당 업체를 상대로 현장조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수행됐다. 디지털 채널 전반을 겨냥한 점검 방식으로, 전통적인 오프라인 단속과는 다른 접근이다.  

 

점검 결과 AI가 생성한 전문가 영상 등을 활용해 부당광고를 한 업체는 12개소로, 이들이 판매한 식품 규모는 약 84억원에 달했다. 질병 치료 효과를 내세우거나, 의약품과 유사한 작용 기전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매출을 끌어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위반 유형을 세부적으로 보면 질병 예방·치료 효능을 내세운 사례가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일부 업체는 방광염 완치, 전립선 비대증 회복 가능 등 표현을 사용해 식품이 질환 치료에 직접 효과가 있는 것처럼 광고했다. 또 다른 업체들은 일반식품을 두고 위고비와 같은 작용 기전, 염증성 지방부터 먼저 녹여 등 표현을 사용해 소비자가 의약품 또는 건강기능식품으로 오인하도록 만들었다. 세포 자체 회복 능력을 올려줌, 피부가 깨끗해짐 등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효능을 과장한 광고도 4개 업체에서 확인됐다.  

 

일반식품을 의약품과 유사하게 모방한 광고도 적발됐다. 해당 업체 4곳은 약 30억원 상당의 제품을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비만치료제 위고비와 유사한 명칭을 쓴 제품에 GLP-1 자극 등 표현을 붙여, 실제 의약품이 사용하는 작용 기전 용어를 차용했다. ADHD 치료제 콘서타를 연상시키는 이름의 제품에는 몰입도 증가, 두뇌 활성 같은 표현을 더해 인지능력 개선 효과가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 여드름 치료제 이소티논을 떠올리게 하는 명칭의 제품에는 포 아크네, 여드름용이라는 문구를 넣어 사실상 피부질환 치료용 제품처럼 포지셔닝한 것으로 드러났다.  

 

식약처는 이번에 적발된 제품이 모두 의약품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허가되지 않은 일반식품이란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 광고에서 내세운 효능·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소비자가 부당광고에 현혹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AI로 생성한 의사와 전문가 영상이 등장할 경우, 실제 의료인인지, 제품이 정식 허가를 받은 것인지 소비자가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안의 배경에는 생성형 AI 기술의 급속한 상용화가 있다. 텍스트 프롬프트만으로도 의사 가운을 입은 전문가 영상과 음성을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소규모 업체도 비용 부담 없이 신뢰감을 주는 광고 콘텐츠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기술 자체는 합법이지만, 이를 활용해 의학적 근거가 없는 효능을 암시하거나 의약품으로 오인하게 만들 경우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소지가 커진다. 디지털 헬스케어 이미지와 결합한 마케팅이 실제 치료 행위로 오해될 수 있어 규제 리스크가 커지는 구조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유사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건강보조식품과 다이어트 제품 광고에 AI로 만든 가짜 의사·연구원 영상이 등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의료인을 연상시키는 표현과 복장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손질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법과 식품표시광고법, 온라인 플랫폼 책임 논의가 교차하는 영역이어서, 향후 복합 규제 체계가 논의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단속이 식품 광고에 국한된 조치라기보다, AI 기반 디지털 마케팅 전반의 규범 형성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본다. 향후 디지털 치료제, 원격의료 플랫폼, 헬스케어 앱 분야에서도 유사한 광고 관행이 문제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규제 당국의 기준이 명확해질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 활용 범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다.  

 

식약처는 앞으로도 불법 광고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고 건전한 식품 유통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관계기관, 업계, 소비자단체 등과 협력해 AI를 포함한 불법·부당광고의 생성과 확산을 신속히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다. 위법 행위자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게 유지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산업계는 AI 기술 활용과 광고 윤리, 규제 준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작업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조치가 실제 시장에서 어떤 선례를 남길지 주시하고 있다.

이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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