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셀프 수사무마 의혹 규명해야"…김건희특검, 직권남용 공모 입증이 최대 분수령

신도현 기자
입력

정치적 충돌 지점은 대통령 가족에 대한 사법 리스크 수사이고, 핵심 기관은 김건희특검팀이다. 김건희 여사의 이른바 셀프 수사무마 의혹을 둘러싼 책임 소재를 놓고 특검 수사와 정치권의 긴장이 동시에 고조되고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건희 여사가 지난해 5월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상황을 문의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검찰 수사팀 인사와 관련한 이른바 지라시를 전달한 정황이 내란특별검사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해당 지라시에는 대통령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은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 항의 차원에서 김 여사에 대한 신속 수사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수사팀 지휘부가 교체됐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명품백 수수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김 여사를 둘러싼 형사사건 수사가 본격화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김 여사가 박 전 장관을 매개로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검찰 인사와 수사 라인에 대한 정보가 오간 만큼, 단순한 경과 문의를 넘어선 수사 무마 시도인지가 향후 쟁점이 될 전망이다.

 

조은석 내란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김 여사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와 윤 전 대통령, 박 전 장관 3인을 정치적 운명 공동체로 보고 있다. 그러나 내란특검팀은 김 여사 수사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을 받은 피의자로 박 전 장관만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고, 김 여사에게 대한 직권남용 여부 판단은 민중기 특검팀에 넘겼다.

 

민중기 김건희특검팀은 내란특검으로부터 문자 내역과 통신기록 등 관련 자료를 이첩받는 대로 본격 수사에 착수할 계획이다. 특검팀은 김 여사가 공무원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직권남용죄 적용 가능성을 우선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형법상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를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민간인인 김 여사에게 직권남용 공범 혐의를 적용하려면 공무원과의 공모 관계가 입증돼야 한다. 이에 따라 수사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이나 박 전 장관이 김 여사와 함께 직권 행사를 계획하고 실행했는지가 핵심 관문이 된다.

 

법조계에서는 이미 유사한 전례가 존재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에서 민간인 신분이던 최서원 씨는 박 전 대통령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공모해 직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2020년 대법원에서 징역 18년 등 중형이 확정됐다.

 

당시 최서원 씨가 연루된 직권남용 사건 9건 가운데 대기업을 상대로 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 한국관광공사 산하 공기업에 장애인펜싱팀 창단과 특정 업체와의 매니지먼트 계약을 요구한 행위, 삼성그룹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을 요구한 행위 등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이 과정에서 법원은 민간인의 요구가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의 공식 권한 행사로 이어졌는지, 직무 범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여부를 세밀하게 따졌다.

 

김 여사의 경우에도 직무상 권한이 전혀 없는 만큼, 윤 전 대통령이나 박 전 장관이 검찰총장이나 수사팀에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그 지시가 수사팀의 권리 행사 또는 의무 이행을 어떻게 제약했는지 입증하는 작업이 수사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특검이 직권남용 공범 구조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김 여사가 주도적 역할을 했는지, 또는 윗선이 따로 존재했는지부터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특검팀은 김 여사가 연루된 직권남용 행위를 설계·지시한 윗선의 범위를 특정하는 데서 수사를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윤 전 대통령이 박 전 장관을 통해 검찰 지휘 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또는 김 여사가 박 전 장관과 직접 교감하며 수사팀 의견을 변경하도록 유도했는지 여부가 수사 대상이다.

 

다만 법원은 직권남용 관련 사건에서 직권의 존재와 범위, 실제 행사의 유무, 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해왔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통화에서 "법리상 김건희 여사가 검찰과 법무부에 단순한 압박을 가한 수준을 넘어, 자신에 대한 수사가 완전히 다른 결론에 이르도록 만들었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직권남용 공범 성립을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 여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공모해 박성재 전 장관을 경유하거나, 또는 직접 박 전 장관과 공모해 일선 수사팀의 기소 의견을 불기소로 바꾸도록 했다는 정황과 인과 관계가 입증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수사팀 의견서, 내부 보고 문건, 인사 기록, 통신 내역 등 객관적 자료가 직권남용 입증의 핵심 증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검팀이 직면한 시간 제약도 변수다. 김건희특검법에 따라 특검 수사 기간은 다음 달 28일 종료된다. 남은 기간이 약 4주에 불과해 주요 피의자 조사와 보강 수사를 모두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거물급 인사들을 상대로 공모 구조와 구체 행위를 규명해야 하는 만큼, 수사팀의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김 여사를 정점으로 한 윗선의 범위와 정체가 드러나면, 반대로 권리 행사를 방해당한 검사나 수사관 등도 특정될 수밖에 없다. 이때 김 여사의 수사에 관여한 공무원들이 고의로 직무를 유기했는지, 김건희특검법 2조 1항 12호·14호·15호에서 규정한 사건 전모가 어디까지 밝혀질지도 관심사다.

 

김건희특검법 2조 1항 12호는 김 여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위나 대통령실 자원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는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규정했다. 14호는 공무원 등이 직무를 유기하거나 직권을 남용해 김 여사에 대한 수사를 지연·은폐·비호했다는 의혹, 15호는 윤 전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수사를 방해했다는 의혹을 다루고 있다. 이번 직권남용 공모 의혹은 세 조항과 직결될 수 있는 만큼 특검 수사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뒤따른다.

 

특검팀은 현재까지 알려진 일정에 따라 김 여사를 다음 달 4일과 11일 두 차례 소환 조사한 뒤, 그동안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도 17일 불러 조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당사자 조사 결과에 따라 박성재 전 장관에 대한 추가 소환이나 관련 검사·수사관 조사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향후 국회와 정치권 역시 특검 수사 진척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직권남용 공모 의혹이 어느 수준까지 입증되느냐에 따라 향후 추가 입법 논의나 책임 공방이 확산될 수 있어서다. 특검팀이 남은 기간 수사 성과를 어디까지 내놓을지에 따라, 국회는 내년 회기에서 특검법 개정 또는 후속 사법개혁 논의를 본격화할 계획이다.

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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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특검#윤석열#박성재전법무부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