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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개인정보위 예산 729억…RND 확대으로 데이터규제 전환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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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데이터 경제 확산이 디지털 산업 전반의 규칙을 다시 쓰는 가운데,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내년 예산을 대폭 늘려 AI 시대 개인정보 보호·활용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높인다. 사후 제재 중심이던 개인정보 규제 패러다임을 기술 기반 사전 예방 체계로 옮기면서, 보안과 연구개발, 국제협력, 마이데이터 생태계 조성까지 전 영역에 걸쳐 예산을 재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업계에서는 향후 데이터 활용과 프라이버시 보호 간 균형을 둘러싼 정책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개인정보위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은 총 729억 원으로 확정됐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정부안보다 24억 원이 증액됐고, 올해보다 70억 원이 늘었다. 특히 기술 개발과 RND 관련 예산이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증가해, 개인정보 정책의 무게추가 규제 집행에서 기술·인프라 투자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먼저 개인정보 침해와 유출을 막기 위한 예방·보안 분야 예산은 109억 원으로 편성됐다. 지난해 104억 원과 비교해 4.8퍼센트 늘었다. 세부적으로 개인정보 침해방지에 77억 원, 개인정보 사고조사 지원에 24억 원, 위원회 송무지원에 8억 원이 배정됐다. 특히 침해방지 항목 안에 기술 분석 센터 구축·운영 20억 원, 다크웹 대응체계 구축 4억 원이 신규로 포함됐다. 불법 유통, 랜섬웨어 협상 등 개인정보가 암거래되는 다크웹 영역에 직접 대응할 기술·인력 체계를 갖추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AI 시대를 겨냥한 개인정보 보호·활용 RND 예산은 133억 원으로, 올해 89억 원에서 49.4퍼센트 증가했다. 개인정보 안전활용 선도기술 개발에 61억 원, 글로벌 개인정보보호 표준개발에 15억 원, 개인정보 보호·활용 전문인력 양성에 30억 원, 신뢰·AI 기반 개인정보 보호·활용 기술개발에 27억 원이 각각 책정됐다. AI 학습 과정에서 필수인 대규모 데이터셋을 어떻게 비식별화하고, 차등 프라이버시 같은 기술로 재식별 위험을 줄일지, 또 국제 표준과 정합성을 맞추는지가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국제 협력과 글로벌 규제 대응을 위한 예산은 14억 원 수준이다. 개인정보보호 국제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6억 원, 글로벌 규제 대응에 5억 원, 국제협력 지원에 3억 원이 배정됐다.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과 AI법, 미국과 일본의 데이터 이전 규범 등 주요국 규제 환경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고 국경 간 데이터 이전 협상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이다. 개인정보위는 이를 통해 AI 시대 프라이버시 거버넌스를 선도하고, 데이터 이전 협력 체계의 전략적 구축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 데이터 자기결정권 강화를 위해 마이데이터 인프라에도 상당한 재원이 투입된다. 정보 주체가 자신의 데이터를 직접 확인하고, 필요 시 제3자에게 전송할 수 있는 권리를 제도화하기 위해 개인정보 전송요구권 보장 사업에 54억 원이 배정됐다. 여기에 마이데이터 지원 플랫폼 구축 및 지원 사업에 62억 원이 더해져, 관련 예산은 총 116억 원 규모다. 금융을 중심으로 시작된 마이데이터 모델을 헬스케어, 공공, 통신 등 다른 영역으로 확산하기 위한 기반으로 활용될 전망이다.

 

개인정보의 안전한 활용을 지원하는 인프라 예산도 눈에 띈다. 가명처리 원스톱 지원체계 구축과 가명정보 활용센터 운영을 위한 안전한 데이터 활용 지원 사업에 65억 원이 투입된다. 이 가운데 개인정보 이노베이션존 클라우드 구축 사업에 29억 원이 신규 편성됐다. 이는 클라우드와 연계 허브를 도입해 가명정보를 보관·분석하는 환경을 표준화하고, 공공·민간이 규제 리스크를 줄이면서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공공기관과 민간사업자 등 실제로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현장의 보호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자율환경 조성 예산도 37억 원이 책정됐다. 개인정보 처리방침 평가, 개인정보 보호수준 평가, 개인정보 영향평가 등을 통해 기업과 기관의 관리체계를 점검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가이드라인을 고도화하는 방식이다. 글로벌에서는 자율 규제와 공동 규제 모델이 확산되는 만큼, 국내에서도 인증과 평가를 통한 인센티브 설계 논의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번 예산 구조가 단기적인 제재 강화보다는 기술·인력·인프라에 대한 선제 투자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본다. AI와 클라우드, 초연결 환경에서는 규제 집행만으로는 사고를 막기 어렵고, 알고리즘 설계 단계부터 개인정보 보호를 내재화하는 프라이버시 바이 디자인 접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다크웹 대응, 가명정보 클라우드 구축 등 하드 기술 투자와 글로벌 표준·인력 양성이 병행된 점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렬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AI 시대 안전한 개인정보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와 균형적 개인정보 보호·활용으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개인정보 보호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내년 예산을 토대로 설계될 세부 사업과 가이드라인이 실제 시장에서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면서도 규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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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위#ai개인정보rnd#마이데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