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 부족 현상 현실화 전망”…사상 최고가 속 미국 관세 변수에 글로벌 공급난 우려
현지시각 기준 1일, 영국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구리 가격이 t당 1만1천294.5달러를 기록하며 장중 기준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글로벌 공급 차질과 미국(USA)의 관세 부과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적 수요 확대가 맞물리며 국제 원자재 시장 전반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세계 전기화·에너지 전환 과정의 핵심 소재로 떠오른 구리를 둘러싼 수급 불균형이 본격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지시각 1일, LME에서 구리 현물 가격은 장중 최대 0.9% 상승한 뒤 한국시간 1일 오후 1시 24분 현재 t당 1만1천246.50달러, 전일 대비 0.5% 오른 수준에 형성됐다. 지난달 28일 2.3% 급등 이후 오름세를 이어가며 강세 흐름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거래되는 구리 선물도 같은 날 1.6% 급등해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블룸버그 통신은 구리 가격 급등 배경으로 광산업계의 생산 확대 난관과 미국의 관세 부과 가능성을 동시에 지목했다. 광산 업체들이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생산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관세 위험을 우려한 미국 내 수요처들이 구리를 미리 들여오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국제 공급난이 심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조치는 주변국에도 원자재 조달 비용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구리 공급 여건 악화 신호는 최근 국제 행사에서도 재확인됐다. 지난주 중국(China) 상하이에서 열린 주요 구리 관련 콘퍼런스에서는 올해 계획에 없던 광산 가동 중단 사례가 잇따라 보고됐다는 점이 공유되며, 공급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이 부각됐다. 구리 제련업체들은 광산업체들과의 연간 구리 광석 공급 계약 협상에서 필요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고, 이 과정에서 연간 프리미엄도 크게 뛰어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스위스계 원자재 트레이더 머큐리아에너지그룹(Mercuria Energy Group)은 전반적인 공급 여건과 수요 전망을 고려할 때 내년 구리 시장에 실질적인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올해 들어 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가격은 약 30% 상승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 등 전기화·에너지 전환 과정이 가속화되면서 구리가 케이블, 배터리, 변전 설비 등 각 단계의 필수 소재로 자리 잡은 점이 가격 상승의 구조적 배경으로 꼽힌다.
미국의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가격 변동성을 키우는 또 다른 요인으로 지적된다. COMEX 기준 현재 구리 선물 가격 수준은 하루 동안 약 20% 폭락했던 지난 7월 30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당시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50% 관세가 구리 광석 등 원료가 아니라 구리 반제품과 파생 제품에만 부과되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시장이 급락한 바 있다. 이후 세부 관세 범위가 정리되자 단기적인 안도감이 형성됐지만, 관세 정책 방향에 대한 불확실성은 남아 있었다는 평가다.
최근 시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실제로 구리 관련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관측 확대와 함께 미국 내 구리 가격은 런던 시장 가격을 웃도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 수입업체와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선제 재고 비축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관세 부과 시점을 앞두고 물량을 미리 들여오려는 움직임이 심화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실물 수급 개선과 동시에 글로벌 시장 공급 압박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머큐리아 금속 부문 대표 코스타스 빈타스는 관세 변수와 재고 비축 움직임을 고려할 때 내년 1분기 중 50만t을 웃도는 구리가 미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 같은 규모의 조기 유입이 현실화될 경우, 유럽(Europe)과 아시아(Asia) 시장에서 현물 구리 확보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주요 구리 생산국의 생산 차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로의 수입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경우, 국제 가격이 추가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각국 정부와 기업의 대응도 당분간 구리 시장 방향에 영향을 미칠 변수로 꼽힌다. 주요 금속 소비국인 중국은 경기 부양과 부동산 조정 과정에서 산업용 금속 수요를 어떻게 관리할지 고민을 이어가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에너지 전환 투자 확대와 제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주요국의 산업 정책과 보호무역 조치가 맞물릴 경우, 구리를 포함한 전략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진단이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구리 가격을 경기 선행지표나 산업활동 바로미터로 해석하는 시각도 여전하다. 일부 국제 투자은행과 원자재 리서치 기관들은 최근 구리 강세를 세계 제조업 경기 회복 신호로 보는 한편, 공급 제약이 겹친 결과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경기 순환 국면과는 다른 양상이라고 분석한다. 향후 미국의 관세 정책, 광산 증설 속도, 전기차·재생에너지 확대 속도가 어떤 조합으로 전개될지가 구리 가격의 중장기 흐름을 가를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국제사회와 글로벌 투자자들은 구리 시장의 구조적 공급 부족 우려가 실제 생산 차질과 어떻게 맞물릴지,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통상·산업 정책이 어떤 선택을 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구리 가격 급등이 향후 국제 원자재 시장과 에너지 전환 전략에 어떤 변화를 초래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