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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민의 정당한 분노 수용”…이재명, 박진경 국가유공자 취소 검토 지시 후폭풍 진화할까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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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양민학살 책임자로 지목돼 온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여부를 둘러싸고 청와대와 제주 지역 사회가 맞붙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보훈부에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하자, 제주도와 4·3 관련 단체들은 연이어 환영 입장을 내며 진상 규명과 역사 왜곡 차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자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가보훈부에 박진경 대령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한 결정을 다시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박진경 대령은 제주4·3 당시 양민학살 책임자라는 비판을 받아 온 인물로,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은 그동안 제주 사회에서 지속적인 갈등 요소였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15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대통령 지시를 환영했다. 오 지사는 글에서 “제주도민의 정당한 분노를 수용하고 신속하게 취소 지시를 내린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주권정부에 제주도민 모두와 함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의 결정이 제주도민 여론을 신속히 반영한 조치라고 평가한 셈이다.

 

오 지사는 또 국가보훈부와의 그간 경과를 설명했다. 오 지사는 “지난 10일 국가보훈부가 박진경에 대한 국가유공자 증서를 발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권오을 장관이 직접 제주를 찾아 4·3 영령과 유족께 사과했지만 도민사회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권오을 장관에게는 제주도민을 대표해 서훈 취소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달라고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제도적 차원의 역사 정리에도 나섰다. 오 지사는 “제주도는 오늘 박진경 추도비 옆에 4·3의 객관적인 사실을 담은 ‘진실의 비’를 세운다”고 언급하며 “제주도는 언제나 제주4·3을 왜곡하려는 시도에 굳건히 맞서고, 4·3의 진실을 밝히는 데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지역 정부 차원에서 기념 공간과 안내를 통해 역사 해석의 기준을 분명히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제주 지역 4·3 단체들도 대통령 지시를 두고 강한 찬성 입장을 내놓았다.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은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지정 논란의 책임 소재를 거론하며 “국가보훈부에서 검토를 못 했든, 실수든, 대통령 결재 사항이니 대통령이 당연히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앞으로 이런 사례가 없도록 정부가 제도적 법적으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사한 서훈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집행위원장 역시 대통령 지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강 집행위원장은 “당연한 조치”라고 한 뒤 “제주도가 4·3 역사를 제대로 알린다며 박진경 대령 행적을 알리는 안내판을 추모비 옆에 설치하는 데 즉각적인 무공훈장 서훈 취소와 함께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경 대령에 대한 서훈 취소와 병행해, 현장 안내와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주도는 이날 오후 제주시 소재 박진경 추모비 옆에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토대로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바로 세운 진실’ 안내판을 세울 예정이다. 행정은 추모비와 나란히 배치되는 안내판을 통해 박진경 대령의 행적과 제주4·3의 역사적 맥락을 함께 제시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대통령 지시와 제주도의 후속 조치가 향후 국가보훈 체계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군과 경찰 지휘관에 대한 서훈을 둘러싸고 민간인 희생과 인권 침해 논란이 반복돼 온 만큼, 국가보훈부와 청와대는 관련 기준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제주4·3 단체들은 대통령 지시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어, 정부와 국회가 향후 보훈 관련 법령 정비 논의에 착수할지 주목된다. 정치권은 박진경 대령 유공자 지정 취소 문제를 계기로 국가폭력 피해에 대한 기억과 보훈 체계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이어갈 전망이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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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오영훈#제주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