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컴버블 상징주가 25년 만에 복귀”…시스코, 고점 돌파에 AI 인프라 랠리 이어질까
현지시각 기준 10일, 미국(USA) 뉴욕 증시에서 네트워크장비업체 시스코시스템즈(Cisco Systems, 이하 시스코)가 닷컴버블 당시 기록했던 주가 정점을 약 25년 만에 돌파했다. 장기 침체의 상징으로 꼽혀 온 종목이 사상 최고 수준을 다시 시험하면서,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붐을 축으로 한 기술주 지형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시스코는 10일 뉴욕 나스닥 시장에서 전 거래일보다 0.93% 오른 80.2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2000년 3월 27일 기록했던 종가 79.375달러를 넘어선 수준으로, 닷컴버블 붕괴 이후 약 25년 만에 최고가를 새로 썼다.

시스코는 2000년 3월 27일 주가 급등세를 앞세워 나스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당시 시가총액은 연간 매출의 38배 수준까지 치솟으며 과열 논란이 집중됐다.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약 600% 폭등한 뒤, 같은 해 연말에는 11달러 안팎으로 추락해 버블 형성과 붕괴를 상징하는 대표 사례가 됐다.
이런 전력이 누적되면서 시스코는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닷컴버블 시기 과도한 성장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된 전형으로 회자돼 왔다. 장기간 주가가 제자리를 맴돈 탓에 “영원히 고점을 회복하지 못하는 버블주”의 상징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자산운용사 SLC 매니지먼트의 데크 멀라키 이사는 이번 회복을 두고 “버블에서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회복을 진행해 온 일본(Japan) 주식시장을 비슷한 예로 들며, 시스코 사례가 장기 조정 국면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멀라키 이사는 동시에 최근 시스코 주가 흐름을 “신뢰의 신호”라고 규정했다. 그는 “비록 회사가 혁신기업보다는 유틸리티 기업에 가까워졌지만 아마도 그것이 투자자들이 원했던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 고성장 대신 안정적인 인프라·서비스 기업으로 체질을 바꾸는 과정이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랠리의 직접적인 동력은 지난달 13일 발표된 실적 가이던스였다. 시스코는 2026회계연도(내년 7월 종료) 매출 전망치를 최대 610억달러로 제시했다. 이는 월가 컨센서스를 웃도는 수준이자, 회사가 이전에 제시했던 전망을 약 10억달러 상향한 수치다. 발표 이후 이날까지 시스코 주가는 8.5% 올랐고, 연초 이후 상승률은 36%에 달한다.
시스코 경영진과 시장은 AI 인프라 투자를 새로운 성장 축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네트워크 인프라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하는 흐름 속에서, 시스코는 네트워크 장비와 관련 솔루션을 중심으로 AI 인프라 수요를 흡수하는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스위치·라우터 공급을 넘어 데이터 처리·보안·클라우드 연계 솔루션 비중을 키우는 방향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구상이다.
투자은행 UBS의 데이비드 보트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시스코 투자의견을 ‘매수’로 상향 조정했다. 그는 투자의견 변경 배경으로 AI 인프라 관련 제품에 대한 수요 확대를 제시하며, 시스코가 데이터센터와 고성능 컴퓨팅 수요 증가에 동반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증시는 최근 몇 년 새 반도체와 클라우드, AI 플랫폼 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 축을 형성해 왔다. 이런 가운데 한때 과열의 상징이었던 시스코가 실적 기반의 주가 회복에 성공하면서, 과거 버블 종목들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인프라·네트워크 분야 종목군에 대한 관심도 다시 부각되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시스코의 장기 회복이 투자자 심리에 던지는 메시지에도 주목하고 있다. 일본 증시와 마찬가지로, 거품 붕괴 이후에도 구조조정과 사업 전환을 통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닷컴버블과 같은 과열 국면 이후에도 실질적인 기술·인프라 수요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실화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시스코가 과거의 고성장 기대를 그대로 되살리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네트워크 장비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가운데, 향후 성과가 AI 인프라 수요의 지속성과 경쟁사 대비 기술 우위를 얼마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다.
장기 조정의 아이콘이던 시스코가 AI 인프라 붐을 타고 새 국면에 진입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번 주가 회복이 글로벌 기술주 지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국제 금융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