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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R&D 기획한다”…정부, 5극3특 자율체계로 전환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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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연구개발 정책 패러다임이 중앙 주도 공모에서 지역 자율 기획으로 바뀌고 있다. 과학기술 역량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역 산업 전환 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가 R&D 설계 권한을 권역 단위로 내려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이번 전환이 지방정부와 지역 대학·연구기관이 주도하는 혁신 경쟁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국정과제인 지역 자율 R&D 강화를 위해 기존 17개 시도별 중앙 공모 중심 지원체계를 5극3특 기반 지역자율형 R&D 체계로 전면 개편해 내년부터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5극은 전국을 5개 거점 경제생활권으로 묶어 수도권에 필적하는 혁신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개념이고, 3특은 제주·강원·전북 등 3개 특별자치도를 뜻한다. 이들 특별자치도에는 지리·행정 여건을 반영한 독자적 발전 모델과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구상이다.

새 체계에서 수도권을 제외한 4개 거점 권역과 3개 특별자치도, 이른바 4극3특을 대상으로 총 789억 원이 투입된다. 예산은 4개 권역에 각 131억 원, 3개 특별자치도에 각 88억 원이 배분된다. 지금까지는 중앙이 과제를 설계하고 17개 시도가 개별적으로 응모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는 권역이 스스로 성장 전략을 짜고 필요한 R&D를 구성하는 구조로 바뀐다.

 

권역별로는 과학기술원,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역거점대학 등 기존에 연구개발 기획 역량을 갖춘 기관을 중심으로 단일 사업단이 꾸려진다. 이 사업단이 권역별 중장기 기술 로드맵을 세우고, 산학연 협력 과제 발굴과 수행, 예산 집행과 성과 관리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는다. 특히 기존처럼 개별 과제 단위가 아니라 권역 단위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어, 지역 산업 구조 전환에 필요한 중대형 프로젝트 설계가 쉬워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각 권역은 이미 수립된 자연과학기술혁신계획과 정부가 발굴 중인 성장엔진 전략을 토대로 타 권역 대비 강점이 있는 중점기술 분야를 정한다. 예를 들어 바이오·헬스, 그린에너지, 반도체·디스플레이, 디지털 전환, 해양·관광 등 지역 특화 산업과 연계된 기술 분야가 대상이 될 전망이다. 선정된 중점기술을 중심으로 4극3특 단위 산학연 협력을 통한 미래 신산업 원천기술 개발, 과학기술원·지역거점대학·특별자치도가 함께하는 협력형 인력 양성 프로그램, 유망기술 사업화 촉진 과제 등이 자율적으로 기획·수행된다.

 

특히 이번 구조 개편은 지역이 단기간 성과에 집중하는 소규모 과제 위주 지원에서 벗어나, 기술 축적과 산업 생태계 조성을 동시에 고려한 장기 프로젝트 설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시도로 평가된다. 과학기술원과 출연연, 지역거점대학이 한 사업단 안에서 움직이면서 기초연구부터 실증, 기업 연계까지 이어지는 수직 통합형 R&D 체계를 갖추려는 의도도 담겼다.

 

과기정통부는 완전한 자율에만 맡기기보다는 중앙의 전략성과 전문성을 일부 결합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지역 정책과 기술별 민간·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중앙컨설팅단을 운영해 중점기술 분야 선정 단계와 사업 기획 단계 등 두 차례에 걸쳐 컨설팅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역별 기술 전략이 국가 차원의 중장기 과학기술·산업 전략과 괴리되지 않도록 조율한다는 계획이다. 지방정부 간 중점 분야가 중복되거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중앙컨설팅단이 중재 역할도 맡게 된다.

 

정부는 내년 처음 시도하는 지역자율형 R&D 사업이 현장에서 혼선을 최소화하며 안착하도록 설명과 소통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오후 서울 더화이트베일에서 4극3특 과학기술혁신지원 사업 설명회를 열고 지방정부, 대학, 출연연,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제도 취지와 사업 구조, 예산 배분 원칙을 공유한다.

 

구혁채 과기정통부 1차관은 수도권 집중 구조를 풀기 위한 장기 개편의 첫 단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도권에 쏠린 과학기술 역량을 지역으로 확산하고, 지역 스스로 혁신을 기획·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사업을 통해 지역 과학기술혁신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연구개발 성과가 지역 산업과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산업계와 연구계는 지역자율형 R&D가 실제로 지역 신산업 성장을 견인할 제도적 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오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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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지역자율형r&d#5극3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