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도 AI가 감시한다”…충북도 연애문구 사고가 던진 숙제
충청북도에서 발송한 공식 공문에 연애 상담으로 추정되는 사적인 메시지가 그대로 포함되는 황당한 사고가 발생하면서, 공공기관 문서 관리 체계 전반에 IT 기반 검수 시스템 도입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디지털 행정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단순 휴먼에러가 신뢰도 하락과 정보 유출 우려로 이어질 수 있어, 인공지능과 전자문서 보안 기술을 결합한 자동 점검 솔루션 도입이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가 공공부문의 디지털 전환이 여전히 ‘사람 손’에만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문제가 된 공문은 23일 충청북도가 도내 시군 축산 담당 부서에 발송한 2026년 솔루션 중심 스마트 축산장비 패키지 보급 사업 모델 변동 사항 알림 문서다. 도지사 직인이 찍힌 공식 공문으로, 통상 예산 편성·사업 일정·장비 사양 등의 실무 정보가 담기는 유형이다. 그러나 해당 문서의 붙임 파일 하단에 연인 사이 대화로 보이는 장문의 개인 메시지가 함께 포함돼 배포된 사실이 26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사적인 메시지는 담당자가 메신저로 전송하려고 미리 작성해 둔 문구가 공문 작성 과정에서 복사·붙여넣기되며 문서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해당 글자가 흰색으로 지정되면서 전자문서 화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고, 기안·검토·결재 단계에서도 누구도 이 내용을 발견하지 못한 채 최종 발송됐다. 실제 내용은 일부 시군의 내부 공유·인쇄 과정에서 출력물로 노출되며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례는 전자문서 환경에서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는 ‘레이어·서식’ 기반 오류 유형을 그대로 드러낸다. 화면상 비가시화된 텍스트, 숨은 주석, 수정 이력 등이 결재 과정에서 인지되지 못한 채 외부로 발송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행정기관 문서의 경우 표준 양식, 다단 구성, 여러 개의 첨부 파일을 병합하는 과정이 반복되기 때문에 복사·붙여넣기 오류와 서식 충돌이 상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IT 업계에서는 이런 사고를 막기 위한 AI 기반 문서 검수 기술이 이미 상용화 단계에 올라와 있다고 설명한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해 문서 내 문체·어휘·대화체·비속어 등을 자동 식별하고, 공적 문서에 부적절한 표현이 섞여 있을 경우 경고를 띄우거나 최종 발송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연애 상담처럼 특정 인칭을 반복 사용하는 대화체 문장은 기존 행정 문서의 서술형 패턴과 통계적으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기계학습 모델이 비교적 높은 정확도로 자동 탐지할 수 있다.
문서 포맷 차원에서도 메타데이터와 숨은 텍스트를 스캔하는 보안 솔루션이 등장하고 있다. 전자결재 시스템에 필터를 연동해, 눈에 보이지 않는 색상의 텍스트·주석·코멘트·개인 메모가 존재하면 발송 전에 알람을 띄우거나 일괄 삭제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해외 공공기관 가운데서는 전자문서가 외부 발송되기 전 전용 서버에서 한 번 더 ‘클린 복제본’을 생성해, 원본 내 잠재적인 개인정보와 불필요한 메타데이터를 제거하는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공공부문에서 이런 기술 도입이 더딘 이유로는 예산 제약과 함께 규제·보안 우려가 꼽힌다. AI 검수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공문서 원문이 알고리즘 분석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내부 행정 정보가 추가로 복제되거나 외부 서버를 거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개인정보가 포함된 복지·보건·세무 문서의 경우 AI가 내용을 읽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지자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반대로, 수작업 검토 체계만으로는 오히려 보안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문서량이 많은 지자체는 하루 수백 건의 공문이 결재선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결재자별로 꼼꼼한 내용 점검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사 이동·야근·병행 업무 등 환경 요인이 겹치면 사람이 발견해야 할 단순 실수를 반복적으로 놓치게 되고, 이번처럼 조직 전체의 신뢰도에 영향을 주는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행정 IT 시장에서는 이미 문서 작성 보조와 검수 단계에 AI를 결합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북미와 유럽 일부 지방정부는 전자결재 시스템에 자동 맞춤법 교정, 민감 정보 탐지, 비격식 표현 경고 기능을 붙여 사용 중이다. 특정 키워드나 표현 목록을 미리 등록해 두고, 내부 규정상 공문에서 사용이 금지된 표현이 등장하면 결재 진행이 되지 않도록 막는 방식도 도입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앙 행정기관을 중심으로 유사 솔루션 도입 검토가 진행되고 있으나, 지방자치단체로의 확산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번 사고는 행정 기강 문제와 IT 시스템 부재가 얽힌 이중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네티즌들은 담당자의 사적 메시지 관리 부주의뿐 아니라, 여러 단계의 결재자가 문서 내용을 사실상 형식적으로만 확인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동시에 전자문서 시스템이 서식 오류와 숨은 텍스트를 기계적으로라도 걸러주는 최소한의 방어막 역할을 했다면, 해당 문구는 발송 전 자동 탐지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측면에서는 공공부문의 디지털 전환 전략에 문서 검수 자동화와 보안 기능 고도화가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을 전망이다. 행정안전부와 각 지자체가 공동으로 전자문서 표준 규격을 개편하고, 결재 시스템에 적용 가능한 공통 AI 검수 모듈을 개발·배포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특히 숨은 텍스트·비표준 서식·사적 대화체 탐지 등은 개별 지자체가 각자 해결하기보다는, 중앙 차원에서 공통 엔진을 만들어 배포하는 편이 비용·보안 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디지털 행정의 신뢰도를 좌우하는 요소가 단순한 전산화율이 아니라, 사람과 시스템이 동시에 실수를 줄여주는 이중 안전장치 설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공기관이 AI 기반 문서 검수와 보안 솔루션을 얼마나 적극 도입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내부 기강 강화가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