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반도체우주성능검증시작…E3T1호정상가동으로K스페이스가속
국산 반도체와 전자부품의 우주 성능을 직접 입증하는 시험 무대가 열렸다.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누리호 4차 발사에 실려 올라간 우주검증위성 E3T 1호가 궤도에서 정상 작동하는 것을 최종 확인하고, 국산 소자와 반도체의 본격적인 우주 성능 검증 임무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국내 연구개발 성과물에 우주사용이력, 이른바 헤리티지를 쌓기 위한 첫 상용급 시험이라 산업계에서는 한국형 우주부품 생태계 조성의 분기점으로 보는 분위기다.
E3T 1호는 국산 소자·부품 우주검증 지원 사업의 첫 번째 전용 위성이다. 위성은 지난 11월 27일 누리호 4차에 탑재돼 발사됐고, 12월 4일 지상국과의 양방향 교신에 성공했다. 이후 위성 상태 점검과 탑재체 시운전을 진행한 결과 17일 분석에서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정식 우주 검증 임무에 돌입하게 됐다.

위성의 핵심 목적은 국내에서 개발된 전자 소자와 반도체가 극한 우주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동작하는지를 실사용 조건에서 확인하는 것이다. 지상 시험만으로는 예측하기 어려운 우주 방사선, 온도 변화, 진공 환경에서의 동작 데이터를 실제 운용 과정에서 수집해, 향후 우주용 부품 등급 부여와 상용 위성 탑재를 위한 근거 데이터로 활용하는 구조다. 특히 이번 E3T 1호는 전용 시험 위성인 만큼 시험 대상 부품을 최대한 많이 실어 장기간 반복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E3T 1호는 1U가 10센티미터 정육면체인 큐브위성 표준에 따라 12U 크기로 설계됐다. 고도 약 600킬로미터 저궤도에 투입돼 6개월에서 최대 12개월 동안 운용되며, 이 기간 동안 탑재된 국산 소자와 반도체의 상태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본체 4U는 항우연과 민간 우주기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가 공동 개발했고, 나머지 8U 공간에 시험 대상 탑재체가 실렸다.
탑재체에는 상용 메모리와 연구용 집적회로, 국산 우주급 소자가 고루 포함됐다. 삼성전자의 디램과 낸드 플래시 메모리가 실제 위성 시스템 운용에 사용되는 형태로 탑재돼, 우주 방사선에 따른 비트 오류 발생 빈도, 데이터 보존 특성, 반복 읽기·쓰기 신뢰성 등을 장기간 검증한다. 한국과학기술원 혼성신호 집적회로 연구실에서 개발한 아날로그 디지털 변환기와 디지털 아날로그 변환기 집적회로도 함께 실려, 우주 환경에서의 신호 변환 정확도와 전력 소모 특성을 평가한다.
국내 업체 엠아이디가 제작한 정적 램도 시험 대상에 포함됐다. 여기에 2024년 우주항공청이 국산화를 완료했다고 밝힌 우주급 소자 8종이 추가로 탑재돼, 실사용 조건에서의 내방사선성과 장기 신뢰성을 확인한다. 우주급 소자는 우주 환경에서 요구되는 높은 신뢰성 기준을 충족하도록 설계·제작된 전자 부품을 뜻하며, 이번 임무는 이들 소자의 성능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첫 단계로 평가된다.
특히 이번 위성은 민간과 연구기관, 정부가 한 플랫폼 안에서 협력해 실제 우주 성능 데이터를 확보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내 기업 입장에서는 개발한 반도체와 부품이 우주에서 검증된 실적을 갖게 되면, 향후 통신위성이나 지구관측위성 수주전에서 해외 경쟁사와의 기술 신뢰성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글로벌 위성 제조사들도 일반적으로 방사선 시험 데이터와 레퍼런스 미션 경험을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세계 우주 산업에서는 이미 부품 헤리티지 경쟁이 본격화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위성 부품 업체들은 수십 년에 걸친 우주 운용 이력을 바탕으로 고가의 우주급 부품 시장을 사실상 과점해 왔다. 이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지상 시험 데이터는 갖추고 있지만, 실제 우주 운용 실적이 부족해 고부가가치 시장 진입에 제약을 받아왔다. E3T 1호와 같은 전용 검증 위성은 이러한 격차를 점차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책 측면에서 보면, 국산 부품 우주검증 사업은 향후 한국형 위성 개발 사업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기반 투자에 해당한다. 우주용 부품을 해외 수입에 의존할 경우 수출통제와 공급망 리스크에 쉽게 노출되는 만큼, 정부는 국산 소자의 단계적 우주 검증과 상용 탑재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필요한 시험 데이터를 국가가 공동 인프라로 제공해 중소·중견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
업계와 연구계는 E3T 1호 이후 후속 위성의 지속적인 발사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단발성 검증에 그칠 경우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신뢰성 데이터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친 반복 시험과 다양한 궤도 환경에서의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창헌 우주항공청 우주항공산업국장은 E3T 1호의 임무 시작을 계기로 국산 소자와 부품의 우주사용이력을 단계적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우리 기술로 추진하는 K 스페이스 전략에서 국산 부품 검증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E3T 1호가 쌓게 될 데이터가 향후 한국 위성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