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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통화로 내란 공모 어렵다"…법원, 추경호 영장 기각 후폭풍 예고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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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혐의를 둘러싼 갈등과 사법부 판단이 정면 충돌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6개월 동안 이어진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내란 수사가 분수령을 맞았고, 정치권은 특검과 법원을 동시에 겨냥한 공방전에 돌입하는 분위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정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일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에서 혐의 및 법리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밝히며, 특검이 제시한 정황과 법적 구성 요건 사이의 간극을 문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추경호 의원이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민의힘 의원총회 장소를 세 차례 변경하고,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장 집결을 요구했음에도 응하지 않았다고 보고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혐의를 적용했다. 또한 추 의원의 표결 불참과 통화 기록 등 일련의 정황을 내란 가담의 단서로 제시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런 정황만으로 추경호 의원이 계엄 해제 표결을 고의로 방해하고 사전에 계엄 모의에 가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정재 부장판사는 영장 심사 과정에서 추 의원을 상대로 계엄 포고령의 위법성을 인식하고 있었는지, 계엄군의 국회 진입과 경찰의 출입 통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등을 직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엄 포고령 이후 국회 출입을 통제하던 경찰과 국회에 진입한 계엄군을 목격한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표결을 회피했다면 특검 측 논리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제였다. 그러나 추 의원은 포고령 내용을 급히 이동하느라 제대로 읽지 못했고, 경찰의 출입 통제는 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로 여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회에 들어온 군인을 본 뒤에는 문제가 있다고 인식했지만, 원내대표실 밖에서 군인과 보좌진이 대치하는 상황 탓에 개의 이후 표결에 물리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또한 계엄 당일 오후 11시 22분께 윤석열 전 대통령과 추 의원 사이에 오간 2분가량의 전화 통화에 주목해 왔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에 협조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고, 이를 계기로 추 의원이 표결 방해에 나섰다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통화 녹취 등 구체적 내용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특검의 추론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법원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재 부장판사는 특검 측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추경호 의원의 사전 논의가 없었다면 2분 남짓한 통화만으로 내란 공모가 가능하냐고 되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사전 모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 없이 짧은 통화 기록만으로 내란 가담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점을 정면으로 제기한 셈이다.

 

앞서 추 의원은 해당 통화에 대해 윤 전 대통령이 담화 내용을 미리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만 했을 뿐, 계엄 협조 요청은 없었다고 주장해 왔다. 그는 특검이 명백한 반대 증거를 무시한 채 관심법식 해석을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법원은 계엄 선포 직후 국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수차례 의원총회 장소를 변경했다는 추 의원의 해명이 일정 부분 설득력을 갖는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직 국회의원 신분인 피의자에 대한 구속 필요성도 영장 기각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크지 않고, 혐의 다툼의 여지가 상당하다는 점을 들어 불구속 수사 원칙을 적용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법원의 결정으로 내란특검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은석 특검팀은 지금까지 내란 의혹과 관련해 윤석열 전 대통령,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추경호 의원 등 6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가운데 법원이 구속 필요성을 인정한 인물은 윤 전 대통령, 이상민 전 장관, 조태용 전 원장 등 3명이다.

 

박성재 전 장관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도 모두 기각된 점을 고려하면 특검의 영장 청구 성과는 절반에 못 미친다. 내란 범죄의 중대성과 정치적 파장을 고려할 때 특검 수사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도 커질 전망이다.

 

정치권의 공방은 더 거세질 조짐이다. 야당은 법원의 영장 기각을 근거로 특검과 여권의 내란 수사가 야당 탄압이었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1일 당 회의에서 추경호 의원 영장 기각이 대반전의 신호탄이 될 것이고 지긋지긋한 내란 몰이가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민주당을 향한 국민 분노가 폭발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추 의원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이 같은 공세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법원의 잇단 영장 기각을 정면으로 문제 삼을 태세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박성재 전 장관에 이어 추경호 의원 영장까지 기각되자, 사법부가 내란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당 일각에서는 내란 사건을 전담할 재판부 설치와 종합특검 도입의 필요성을 한층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앞서 여당은 3대 특검을 통한 진상 규명 작업이 지연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 사법부의 잇따른 영장 기각을 지목해 왔다. 내란 의혹의 핵심 피의자 가운데 일부만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면서, 향후 본안 재판에서 사실관계와 책임 범위를 둘러싼 공방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조은석 특검팀은 남은 열흘 안팎의 수사 기간 동안 그동안 조사한 관련자들에 대한 신병 처리와 기소 여부를 정리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이은 영장 기각으로 수사 동력이 약화된 데다 구체적 물증 확보의 한계를 드러낸 만큼 추가 수사를 확대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날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국회와 정치권은 내란 특검 수사, 사법부 판단, 향후 재판 전략을 놓고 또 한 번 거센 논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내란 전담 재판부와 종합특검 설치 여부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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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윤석열전대통령#내란특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