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민간 농축·재처리 조속 이행 요구”…김진아, 방미 계기 한미 원자력 협력 압박

윤지안 기자
입력

한미 정상 회담 이후 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외교 라인이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를 두고 한국과 미국이 다시 한 번 외교 무대에서 맞붙는 구도다.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은 10일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덜레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뒤 취재진과 만나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에 명시된 한국의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관련 합의의 조속한 이행을 미국 측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김 차관은 지난 10월 말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후속 조치를 점검하기 위해 방미했다.

김 차관은 “우리가 농축과 재처리와 관련해서 미국과 합의한 바가 있기 때문에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미국 측에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준비됐으니까 미국도 카운터파트를 만들어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하겠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이 정상 차원의 합의를 실무 협상 단계로 끌어내려는 구상이다.

 

김 차관은 이날 미 국무부의 제이콥 헬버그 경제 담당 차관과 제10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SED를 진행한다. 회의에서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경제 안보 분야 후속 조치 이행 상황을 전반적으로 점검하고, 조선, 에너지, 첨단과학기술, 핵심 광물 등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미국 국무부는 이번 SED에 대해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의 평화, 안보, 번영의 핵심축인 한미동맹 내에서 미래지향적 의제를 증진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을 강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원자력 협력은 이번 방미 일정의 핵심 의제다. 김 차관은 “미국이 이제 원자력 부흥 르네상스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이루려면 한국이 중요한 파트너이고 양측이 윈윈하는 것이라는 점을 얘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SMR 소형모듈원자로를 비롯해 여러 미래 협력 이슈들도 다 함께 논의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원전 산업 확대 전략과 한국의 기술 및 공급망 역량을 연계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핵추진 잠수함, 이른바 핵잠과 관련한 핵연료 논의는 선을 그었다. 김 차관은 미국이 승인한 한국의 핵잠 건조 관련 핵연료 문제와 관련해 “연료 같은 경우 한미원자력협정 개정과는 별개로 추진한다. 그래서 핵잠보다는 조선 협력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겠다. 그건 군사적 이슈”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이번 방미 일정에서는 핵잠 연료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상선 조선 및 민간 원자력에서의 협력에 방점을 두겠다는 뜻을 드러낸 셈이다.

 

이에 따라 핵잠 핵연료 관련 현안은 다음 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미국 측과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원자력 협력 중에서도 민수와 군사 영역을 분리해 접근하는 이원화 전략이 가시화되는 모양새다.

 

김 차관은 경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 팩트시트와 대미 투자 양해각서 MOU 후속 이행 방향도 중점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공동 팩트시트와 대미 투자 양해각서가 나왔기 때문에 이제부터 어떻게 이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라며 “대미 투자 현황, 앞으로 추진 방향 등에서 양측의 입장을 다시 확인하고, 앞으로 추진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한미 경제 안보 파트너십을 실제 투자와 공급망 재편으로 연결하기 위한 실행 논의가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인력 이동 문제도 테이블에 오른다. 김 차관은 “궁극적으로 이 대미 투자를 하려면 비자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의 미국 입국 비자 문제 해결 방안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달라고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의 미국 내 투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기술 인력과 가족 동반 비자 등에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짚겠다는 취지다.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조치의 해제 문제도 언급했다. 김 차관은 “항상 강조하는 부분인데 우리가 기술협력에서 미국에 상당한 협조를 해왔고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적인 관심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기본적으로 얘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이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만큼, 수출 통제 및 기술 이전과 관련한 규제 완화를 재차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김 차관은 SED에 이어 오는 12일 미 국무부 주최로 열리는 팍스 실리카 서밋에도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이 회의에서는 유사 입장국 간 인공지능 AI 경제 실현을 위한 주요 공급망 안정화 방안이 논의된다. 한미를 포함한 동맹·우방국들 사이에서 반도체와 AI 인프라를 둘러싼 전략적 공조 구도가 재점검될 전망이다.

 

앞서 지난주에는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이 미국을 방문해 팩트시트 이행을 놓고 미국 측과 협의를 진행했다. 이어 김진아 차관,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의 방문이 잇따르면서 한미 간 고위급 소통은 사실상 매주 이어지는 형국이다. 외교부와 대통령실이 경제 안보와 전통 안보 현안을 분담해 미국 측과 맞대응하는 구조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SED와 팍스 실리카 서밋을 계기로 민간 우라늄 농축·재처리, 원전·조선 협력, 첨단 공급망, 비자 제도 등 복합 현안에서 한미 간 이해를 조정하겠다는 구상이다. 외교부는 후속 협의를 통해 공동 팩트시트와 투자 양해각서가 구체적인 사업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미국 정부와 협상을 이어갈 방침이다.

윤지안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진아#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sed#팍스실리카서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