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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판결문 더 넓게 본다”…국회, 하급심까지 공개 확대 형소법 개정안 통과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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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 판결문 공개 범위를 둘러싼 입법 공방과 여야 전략이 정면 충돌했다. 판결문 열람·복사 확대를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긴 가운데, 여야는 곧바로 은행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다시 필리버스터 대치를 예고하며 정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회는 12일 본회의를 열고 형사 사건 하급심 판결문 공개를 확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오후 2시 34분 시작된 국민의힘의 무제한 토론을 약 24시간 만에 표결로 종결한 뒤, 친여 성향 군소 야당과 공조해 표결에 들어갔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확정되지 않은 형사 사건의 판결문까지 원칙적으로 열람·복사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금까지는 대법원 확정판결 위주로 판결문이 공개됐고, 하급심 판결문은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제한적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또한 개정안에는 판결문 검색 방식과 관련한 조항도 포함됐다. 별도의 열람·복사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한, 대법원 규칙에 따라 판결문에 기재된 문자열과 숫자열이 검색어로 기능하도록 했다. 이 조항이 시행되면 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공개 대상 판결문에 한해 특정 단어를 입력해 관련 판결문을 찾고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원의 전산 시스템 정비와 보호 조치 마련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법 공포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개정안을 시행하도록 부칙에 명시했다. 향후 대법원은 세부 규칙 제정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 당사자 인권 침해 방지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처리 직후 본회의에는 금융소비자 부담 완화를 표방한 은행법 개정안도 상정됐다. 은행 가산금리를 산정할 때 보험료·출연금 등을 반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은행 이익 구조의 불투명성을 개선하고 가계 부담을 줄이겠다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은행법 개정안은 애초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와 정무위원회 위원장이 국민의힘 소속이라는 점 때문에 상임위 단계에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이를 우회하기 위해 지난 4월 해당 법안을 신속처리안건, 이른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며 본회의 직행 절차를 밟아 왔다.

 

국민의힘은 은행법 개정안 상정에 맞서 다시 필리버스터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형사소송법에 이어 은행법까지 연속 필리버스터 국면에 진입하면서 여야가 연말 국회에서 정면 대치를 이어가는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연내 사법개혁 법안 처리 방침을 저지하기 위해 합의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쟁점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가동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형사소송법 개정안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가 표결로 차단된 데 이어, 은행법 개정안까지 같은 방식으로 맞서면서 국회가 사실상 장기 토론 전장으로 변하는 양상이다.

 

다만 더불어민주당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에서처럼 표결을 통해 토론을 종결하는 전략을 반복할 경우,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카드가 실질적인 저지 수단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나온다. 반대로 야당 입장에선 여당의 토론 종결 강행이 거대 의석을 앞세운 강행 처리 이미지로 이어질 수 있어, 여론전에선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으로 판결문 공개와 검색 범위가 넓어지면 법조계와 시민단체, 언론계의 활용도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피고인과 증인 등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 재판 독립성과 공정성 침해 가능성 등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되는 만큼, 세부 규칙 논의 과정에서 첨예한 논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국회는 형사소송법과 은행법을 둘러싼 격렬한 공방 속에서도 본회의를 진행했다. 정치권은 연말 정기국회 막판까지 사법개혁과 금융·민생 법안을 놓고 정면 충돌 양상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여야는 다음 회기에서도 필리버스터와 토론 종결 표결을 병행하는 강대강 전략을 이어갈 계획이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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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소송법개정안#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